<해방일기> 작업의 중간점검 기회로 삼으려 한다. 1년간 탈 없이 끌고 왔으니 완주 전망은 확실해졌는데, 지금까지의 페이스와 스타일을 남은 2년 동안 그대로 끌고 가서 안 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1년간의 성과를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버릴 것과 지킬 것을 가려야 하는데, 이번 강연에서 지킬 것을 챙겨봐야겠다.

도입부에서 이 작업의 특징을 제시함으로써 청중의 동정심을 유발해야겠다. 불쌍한 인간, 어쩌다가 저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고생을 "사서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루저'라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잘 나가는, 내지 잘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의지에 따라 골라서 하는 일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잘난 척도 좀 해야겠다. (起)

해방공간에 뭔가 중요한 게 있으니까 저런 멀쩡한 인간이 저렇게 죽자고 달려드는 게 아니겠나 하는 인상을 일단 심어주면 그 뒤는 얘기 풀어가기가 쉬울 것 같다. 새로 바짝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인식하도록 우선 통념을 뒤집는 관점을 몇 가지 잘 골라서 제시한다. 함의가 큰 사안이면서 통념을 극적으로 뒤집고, 그러면서도 쉽게 납득이 갈 만한 포인트를 골라야겠다. (承)

시간이 절반쯤 지났다. 이쯤에서 휴식시간. 많은 청중들이 "이 강연 생각 외로 짭짤하네?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잘 들어야지." 생각하고 있으리라는 자기최면을 열심히 건다.

이제 큰 그림을 보여준다. 내인론과 외인론, 국제주의와 국가주의, 극좌-극우의 적대적 공생관계 등 전체를 새로 바라보는 시각을 펼쳐준다. 휴식시간 전에 제시한 통념의 전환을 연장하면 이런 그림에 이를 수 있다는 인상을 지켜나가고 '남 탓, 내 탓' 등 상식 차원의 비유를 최대한 활용한다. 해방공간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던 사람도 시야를 넓히거나 초점을 얻는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준다. (轉)

지금까지의 얘기로 한 편의 강연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게 했지만 시간은 아직도 15분 가량 남아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새로 포착한 해방공간의 의미가 '오늘'에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덧붙이는 이야기 같으면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두 가지 길이 가능할 것 같다. 하나는 도덕성과 민족의식 등 정신적 측면의 문제를 지적하며 '전통의 힘'을 강조하는 길. 또 하나는 패권주의의 또 하나 형태로서 신자유주의의 위협에 집중하는 길. 어느 길이 좋을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結)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