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에 의식이 혼미하신 상태를 적고 나서 며칠 후 회복하신 사실을 덧글로 올리고 꼬박 보름 동안 어머니 소식을 적지 않았다. 변소 가기 전과 뒤가 마음이 다른 꼴일까, 자책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억지로 적을 틈을 내려 애쓰지 않고 지내봤다.
아내가 보호자 노릇을 완전히 넘겨받은 상태에서 기록하겠다고 나서는 것조차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아내는 거의 매일 가서 점심식사를 도와드리고, 나는 1주에 두 번 정도 저녁무렵에 가 뵙는 방식이 습관화된 지 꽤 되었는데, 보름 전 어머니가 의식을 회복하실 무렵 아예 책임을 맡겨버렸다. "이제부터 당신이 보호자 하세요. 나는 옆에서 도와줄게." 이미 실질적으로 넘겨받아 놓은 책임이니 순순히 받아준다. "내 시어머님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당신은 글이나 열심히 쓰세요."
잠깐 의식이 약해졌다가 회복하신 후 아주 기분이 좋아지셨다. 지난 3월 병원 신세 지기 전의 상태를 되찾으셨다. 문영이 일도 있고 해서 예전 계시던 자유로병원 쪽으로 옮겨드릴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 두 주일 보여주신 모습이라면 옮길 필요가 없겠다. 그 상태가 안정되어 보여서 오래 유지하실 것 같다.
며칠 만에 나타나든 내가 나타날 때는 크게 자극 받으시는 기색이 없으시다. 지난 몇 차례는 언제나 누운 채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을 굴리는 표정이신데, 내 얼굴이 보이면 눈길을 돌리고 손을 가볍에 들어 보이신다. 혼자 누웠을 때도 오른손으로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버릇이 생기셨는데, 불경을 읽거나 노래를 불러드리면 토닥질에 흥이 더 붙으신다. 꼭 한 번은 <푸른 하늘 은하수>를 따라 부르셨다.
30분 내지 한 시간 모시고 있다가 일어날 때 아쉬운 기색을 아주 조금 보이신다. 나는 일어나기 전에 5분 내지 10분 동안 요즘 쓰고 있는 글이 어떤 건지 설명해 드린다. 다 알아듣지는 물론 못하시지만 꽤 알아들으시는 것 같고, 또 완전히 알아듣지 못한다고 답답해 하지 않으신다. 그러다가 "저는 이만 일하러 갈게요." 하면 당연히 갈 놈이 가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것 같다.
편안하기는 더 바랄 것 없이 편안하신데, 즐거움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이천 시절보다 여건이 좀 아쉬운 듯하다. 그런데 오늘 가까운 후배 한 분 만나시는 것을 뵈니 이 측면도 전망이 확! 좋아진다.
일곱 시경에 도착해서 5분쯤 모시고 앉아 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앉은 휠체어를 영감님이 몰고 이쪽으로 오시는데, 할머니는 지나치면서 여러 번 뵙던 분이고, 영감님이 아는 얼굴 같다. 그런데 영감님이 가까이 와서 어머니를 향해 "이 교수님!" 외치는 것을 보며 생각났다. 과학사학회에서 자주 만나던 K 선생님이 아닌가! 그렇다면 저 할머니는? 그러고서야 K 선생님의 부인 S 선생님인 것을 알아보겠다.
S 선생님은 어머니보다 8-9세 아래의 저널리스트로, 친구라면 친구고 후배라면 후배인 분이다. 나는 학생 때부터 S 선생님을 알고 지냈고, 그보다 약간 연하인 K 선생님은 그 후에 학회에서 마주치며 지내게 되었었다. K 선생님은 몇 해 되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옛날 모습 그대로인데, S 선생님은 모습이 꽤 변하셨다. 70이 넘도록 손수 운전하고 다니며 언제나 통통 튀는 느낌을 뿌리고 다니시던 분인데!
어머니는 기억이 명확하게 떠오르지는 않아도, 손을 잡고 계시는 동안 관계의 느낌은 되살아나시는 모양이다. 농담도 나오고 노랫가락 화법도 나오신다. 제일 절창은 K 선생님과 내가 일어설 때 "어머니, 보시는 분들 계셔도 뽀뽀가 너무너무 하고 싶어요. 허락해 주세요." 능청을 떨어봤더니 "안 돼.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살짝 할게요~" "살짝도 안 돼!" 작년 전성기 때의 가닥이 그대로 나오시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관중을 의식하실 줄이야.
S 선생님은 어머니랑 같이 지내기 좋은 분으로 아는 모든 분들 중에서 뽑으라면 첫째로 뽑을 분이다. 예전 모습과 많이 달라 보이셨지만, 30분쯤 같이 있으면서 보니 정말 많이 변하신 것은 아니다. 근래에 급격히 체력과 기억력이 퇴화하셔서 자신감을 잃고 마음이 일시적으로 어두우신 것 같다. 그분도 어머니랑 함께 지내시는 것이 새로운 단계에 적응하시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두 분 다 정말 운이 좋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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