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10. 00:25
지나간 이야기의 마무리로 들어주세요.
어제 오후 문영이 유골을 파주 보광사의 영각전 납골당에 안치했습니다. 지 서방과 세 딸, 그리고 우리 부부와 제 아들, 일곱 사람이 모시고 갔습니다.
장례 기간을 통해 옛 남편과 딸들과의 관계가 정리되었다고 할지, 화해되었다고 할지, 문영이를 위해 제일 마음이 놓인 일입니다. 남편과 딸들이 상주나 상제가 아니라 문상객 위치에 머무른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월이 떼어놓았던 거리를 극복하는 데는 그 편이 더 적절한 위치였겠지요. 지 서방은 문영이가 떠난 후 아내보다 누이동생으로 문영이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제 그 자리가 바뀔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딸들도 문영이와의 인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잘 가다듬더군요.
어머니와 함께 한 보름의 시간으로 무언가가 완성되었다고 느꼈기에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보름 동안 문영이는 내내 행복해 했고, 어머니 마음도 하루하루 편해지셨습니다. 문영이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긴장하는 기색도 보였고, 문영이를 슬쩍슬쩍 외면하는 기색도 보였죠. 그러다가 며칠 전부터는 문영이를 대하시는 데도 거침이 없으실 뿐 아니라 생활의 활기와 말씀의 장난기가 늘어나고 계셨습니다.
두 분이 힘든 세월을 뒤로 하고 함께 편안함을 누릴 생활의 틀이 드디어 잡혔다고 생각하고 있는 참에 훌쩍 떠난 소식을 한밤중에 듣고부터 어제 집에 돌아올 때까지 60여 시간 동안 정신없이 상주 노릇 하는 중에 그래도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무엇보다 큰딸 생각에 제 마음이 괴로웠죠. 걔가 에미를 찾아 절까지 찾아왔던 것이 5년 전 일이었죠? 외할머니 쓰러지신 뒤론 가끔 찾아뵈며 제게는 어머니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곤 했죠. 문영이와 어머니 지내는 사정이 안정되었다고 생각되어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면 찾아와도 괜찮겠다고 며칠 전 지 서방에게 전화로 알려주었고, 딴 아이들은 몰라도 걔는 이번 주에 찾아오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24년 전 버려놓고 왔던 아이가 찾아올 날을 며칠 앞두고 떠나다니...
그런데 누구보다 그 아이가 운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면서 어찌 생각하면 아이들과 상면한들 보여줄 것이 따로 없으니 죽음 속에 모든 것을 담아 보여준 것이 아닌지...
저는 사흘 동안 어머니를 가 뵙지 못했고, 아내가 간간이 가 뵈었는데, 문영이가 떠난 사실을 직접 언급은 않으셔도 분명히 인식하시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저께 뵐 때는 체념과 초탈의 기색을 보이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다더군요. "물 흘러가는 것은 저 흘러가는 길로 흘러가는 거지." "다 가라, 다 가!"
보살님 생일이 문영이랑 하루 차이라서 남달리 여긴 점이 있다고 하셨죠. 오랜만에 지 서방을 마주치고 보니 그 친구랑 저랑 생일이 같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종교인의 삶을 펼치기 시작하던 그 친구에게 문영이를 떠맡겨 놓은 이래 그 얼굴 똑바로 쳐다볼 면목이 없는 채로 20여 년을 지냈네요. 그 친구가 종교인으로서도 생활인으로서도 훌륭한 자세를 키우고 지켜온 것을 보며 이제야 겨우 30년 전의 친구를 되찾은 것 같습니다. 문영이 자리를 넘겨받아 아내 노릇, 어머니 노릇 잘해주신 분께 무한한 감사를 느낍니다.
십여 년 세월 속에 어머니와 문영이가 계룡산에서 만난 고마운 인연이 한두 갈래가 아니겠지요. 보살님 한 분께 그 모든 고마운 인연을 대표해서 떠올리는 것이 제가 무심한 인간인 탓이겠지만, 힘든 고비마다 떠받쳐주신 보살님 은혜를 잊지 못하겠습니다.
김기협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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