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미소공위가 며칠 전 제5호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3월 20일 개막 후 근 한 달 동안 몇 차례 성명이 나왔지만, 회의 진행에 관한 형식적 내용뿐이었는데, 드디어 알맹이를 담은 성명이 나온 것이 좀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반가운 일입니다. 조선인 협의대상 신청방법을 밝힌 내용이 이 성명에 들어 있었죠.
그런데 좌익 쪽에서 이 성명을 즉각 환영하고 협의대상 신청에 나선 반면 우익 쪽 반응은 좀 착잡하군요. 민주의원만 하더라도 김규식 선생이 의장대리 입장에서 바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가 함상훈 공보부장이 민주의원의 공식 입장이 결정되지 않았다고 뒤집지 않았습니까? 우익 쪽, 특히 민주의원 쪽에서 어렵게 생각하는 문제가 있는가요?
안: 서명 문제죠. 협의대상 신청을 하려면 이런 내용의 선언서에 서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의문 중 조선에 관한 제1절에 진술한 바와 같이 그 결의의 목적을 지지하기로 선언함. 즉 조선의 독립국가로서의 재건설, 조선이 민주주의 원칙으로 발전함에 대한 조건의 설치와 조선에서 일본이 오랫동안 통치함으로 생긴 손해 막대한 결과를 속히 청산할 것. 다음으로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임시정부 조직에 관한 삼상회의 결의문 제2절 실현에 대한 공동위원회의 결의를 고수하기로 함. 다음으로 우리는 공동위원회가 조선민주주의임시정부와 같이 삼상회의 결의문 제3절에 표시한 방책에 관한 제안을 작성함에 협력하기로 함.”
맨 끝에 “결의문 제3절에 표시한 방책”이란 것이 신탁통치거든요. ‘후원’이란 말로 바꿔 쓰기도 하지만 실체는 신탁통치지요. 그러니까 이 선언서에 서명한다는 것이 신탁통치에 찬성한다는 뜻이 되는 게 아니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겁니다. 신탁통치에 찬성하거나, 최소한 반대를 앞세우지 않는 좌익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신탁통치 반대를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여겨 온 반탁진영 쪽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 선언서 내용으로 봐서는 서명한다는 것이 꼭 신탁통치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은데요. “(신탁통치에 관한) 제안을 작성함에 협력함”이라 하면 신탁통치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반탁진영 안에서도 서명의 의미가 엇갈리겠습니다. 김규식 선생이 속한 임정파는 긍정적으로 보고 함상훈이 속한 한민당파는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안: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가인(김병로)은 5호 성명 지지 의사를 바로 밝혔고, 그와 같은 입장 사람들이 한민당에 많습니다.
임정 쪽의 한독당파가 제일 강경한 반대지요. 신탁통치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를 찬탁으로 여기니까, 제3절에 관련한 ‘협력’을 전제로는 협의에 응할 수 없다는 겁니다.
김: 제2절의 임시과도정부 조직에는 끼어들고 싶지만, 제3절의 신탁통치 문제는 관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군요. 너무 일방적인 생각 아닙니까? 심하게 말해서, 식당에 들어가 밥은 먹고 싶은데 돈은 내고 싶지 않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안: 그러니까 그 식당에 들어가지도 않겠다는 것이 백범 선생 이하 한독당파의 뜻이지요.
김: 그래도 밥은 먹어야 살 것 아닙니까? 다른 식당이 있다는 건가요, 아니면 내 손으로 지어 먹겠다는 건가요? 민족 자주성이 아무리 좋은 거라도, 해방이 자주성만으로 된 게 아닌데, 독립은 자주성만으로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일본을 항복시킨 힘도 조선을 점령한 힘도 연합국이 가진 것입니다. 힘을 가진 연합국이 조선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악의를 가지고 달려드는 것이라면 몰라도, 신탁통치의 가능성을 함께 의논해 보자는 것까지 굳이 악의로만 해석해서 협의를 거부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안: 나도 답답하게 생각합니다. 나 자신 반탁운동에 누구 못지않게 결연한 태도로 참가해 왔습니다. 연초의 4당 코뮈니케 작성 때 어떻게든 좌우합작을 이뤄야겠다는 마음에서 공식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코뮈니케에 반탁의 뜻을 일체 담아서는 안 된다는 공산당 주장에 정말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 급속한 좌우합작을 포기하고 비상국민회의와 민주의원 결성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코뮈니케와 미소공위는 전혀 다른 일입니다. 코뮈니케는 조선 정치계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밝히는 것이고, 미소공위는 연합국을 상대로 하는 일입니다. 코뮈니케에서는 내 뜻을 최대한 명확히 밝혀야 하지만, 미소공위에서는 상대방의 의사를 이해하는 데도 그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좌우합작을 놓고도 나는 상대방의 선의를 최대한 믿는 것이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 왔습니다. 나와 다른 주장을 내놓는다 해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극단적인 비난을 삐라로 뿌려대는 사람들은 합작에 진정한 의지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해방에 연합국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처럼 건국에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조선 사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어쩌다 잘못된 제안을 내놓더라도, 근본적인 선의를 인정해 줘야만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김: 지금 마무리되고 있는 우익 정당 통합 작업에서도 국민당은 선생님 말씀처럼 상대방의 선의를 최대한 믿는 자세로 일관해 왔습니다. 애초에 국민당과 함께 한독당, 신한민족당, 한민당의 4개당이 통합 범위였는데, 한독당 중심의 통합에 신한민족당과 한민당에서는 반발이 많았던 반면 국민당은 ‘살신성인’의 자세로 임했죠. 한민당은 끝내 통합을 외면했지만, 신한민족당이 곡절 끝에 통합에 응한 데는 국민당의 자세가 큰 작용을 했다고 봅니다.
선생님과 국민당의 겸양의 자세 덕분에 통합 작업은 그만한 성공이라도 거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 국민당 관계자들이 만족하고 있습니까? 다른 당처럼 간부들의 감투 욕심이 걸림돌이 되지 않은 것이 국민당이 칭송받는 점입니다만, 제3자가 보기에도 국민당의 선의가 한독당 기존 간부들에게 이용당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국민당 당원들 입장에서 국민당의 고귀한 이념이 일부 한독당원들의 저속한 욕심에 유린당했다는 아픔이 있지 않을까요?
우익 정당 중 한민당은 이해관계로 뭉치고 국민당은 이념으로 뭉쳤다는 세평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당은 ‘정당(政黨)’이 아니라 ‘정붕(政朋)’이란 말까지 합니다. 구양수(歐陽脩)의 붕당론(朋黨論)에 빗댄 말이지요. 한민당과 공산당처럼 계급-계층의 이해관계에 기초를 두는 것이 현대의 대중정치에 적합한 것이고, 국민당처럼 이념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자세는 현실정치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안: 국민당 동지들의 실망 앞에 나도 마음 아픈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큰 뜻을 생각하며 작은 아픔을 참아야죠. 국민당은 더 큰 생명을 위해 희생하는 밀알의 뜻을 가진 당입니다.
창당 때부터 국민당은 독립 완성을 위한 정치투쟁 단체이지, 정권 담당을 목표로 삼는 정당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맞습니다. ‘정당’보다 ‘정붕’이 더 맞는 이름이죠. 건국 과업을 앞에 놓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권력을 추구하는 정당보다 좋은 뜻을 모으는 단체의 필요를 더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국민당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 미군정을 재야에서 협력하되 현실정권에는 참여하지 않는 자세를 지켜 왔습니다.
한민당은 국민당과 대조되는 길을 걸어 왔죠. 미군정의 고문직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경찰 등 중앙과 지방의 모든 방면에 세력을 부식해 왔습니다. 그 결과 조선의 보수세력을 고스란히 포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애초에 임정 봉대(奉戴)를 명분으로 당을 결성해 놓고 이제 한독당과의 합당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명분을 도외시하고 실리만 바라보는 길입니다.
국민당은 사라졌습니다. 반면 한민당은 조선의 현실을 좌우하는 힘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당은 조선 인민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김: 선생님은 민족주의가 조선 건국의 제1원리로 작용하기 바랐고, 때문에 김구 선생과 이승만 박사 두 분의 영도력에 큰 기대를 걸어 왔습니다. 지난 1월 비상정치회의가 비상국민회의로 선회할 때 선생님이 주비회 위원장을 맡으며 앞장선 것도 두 분이 비상정치회의와 독촉중협을 따로 추진하면서 간격이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죠.
두 분 영수의 사업은 비상국민회의와 민주의원에 이어 독촉국민회를 통해 통합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9일 두 분이 만났을 때 백범 선생은 이 박사에게 한독당 참여를 권하고 이 박사는 백범 선생에게 초당적 위치를 권했는데, 결국 두 분 다 상대방의 권유에 따르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업은 통합되지만 두 분의 영도력은 화합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있습니다.
좌익 쪽에서는 ‘영수’라는 호칭부터 비민주적 권위주의라고 비평하죠. 저는 어느 정도의 권위주의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권위의 주체는 도덕적 권위만 풍겨야지, 권력에 직접 손을 담글 때는 권위주의가 파시즘으로 타락할 위험이 크다고 봅니다. 요즘 두 분의 행보를 보면서 저렇게 너무 부지런해서는 존경의 대상인 ‘영수’보다 두려움의 대상인 ‘두목’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듭니다.
안: 백범 선생은 초인적인 의지의 소유자이시고 이 박사는 초인적 지혜의 소유자입니다. 두 분의 의지와 지혜가 화합된다면 최고의 영도력이 나올 것이고, 화합되지 못한다면 조선의 민족주의 진영은 영도력을 잃게 됩니다. 두 분의 영도력이 건국 사업에서 제대로 살아나도록 도와드리는 것을 나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의 하나로 생각합니다.
1월에 좌우합작을 접어놓고 비상국민회의에 매달린 것도 두 분 사이의 간격이 걱정되어서였습니다. 나는 좌우합작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좌우합작 없이 올바른 건국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좌우합작이 되려면 좌익과 우익이 각자 어느 정도는 정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내게는 그 시점에서 우익 내의 균열이 심각하게 보였기 때문에 우익의 연합에 주력하는 쪽으로 노력을 돌린 것입니다.
미소공위 5호 성명 앞에서 혼란에 빠진 민주의원을 보며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아무리 영도자를 받들더라도 자기 할 일은 하면서 받들어야 할 것 아닙니까? 영도자가 귀신입니까? 이치로 보나 형세로 보나 미소공위에 참여해야겠다는 판단이 서면 그에 따라 각자 할 일을 해야 영도자도 마음 놓고 방향을 가리킬 수 있지 않습니까. 영도자의 입만 쳐다보고 앉아서 할 일을 않고 있으니 세상 사람들이 “고궁에서 한담만 하는 민주의원”이라고 비웃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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