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 잃었던 나라를 35년이 지난 이제 되찾게 되는가? 일본이 앞으로 몇 달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독일이 패망했다는 소식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온 세상을 휩쓸 것 같던 독일과 일본이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에 눈앞이 캄캄했던 것이 4년 전이었던가? 그 기세등등하던 독일을 거꾸러트린 연합국들을 일본 혼자 어떻게 상대해 내겠는가.


그런데 이것이 과연 나라를 되찾는 것이 맞는가? 연전에 연합국 수반들이 카이로에 모여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을 독립시키겠다고 결정했다는 데 우리는 희망을 두고 있다. 그러나 연합국에만 믿고 매달릴 수 있는 일일까? 영국은 일본, 독일보다 더한 제국주의 국가였고, 미국도 필리핀 지배를 보면 말과 행동이 똑같지 않은 것 같다. 소련도 코민테른의 그 동안 행각이 석연치 않다. 인민해방이라는 고상한 목표를 내세우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권도에 치우치고 폭력을 숭상하는 태도가 제국주의 국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대로 믿을 만한 것이 중국뿐인 듯하다. 중국은 그 힘이 넘칠 때도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 들지 않았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중국이 조선을 영토 안에 끌어넣으려는 야욕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이 스스로를 지킬 힘도 모자라 명색이 연합국이지, 연합국 사이에서 언권이 그리 클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라를 내 힘으로 되찾지 못하고 남이 되찾아 준다는 것이 정말로 되찾는 것일 수 있을까? 내가 내 나라를 ‘가졌다’는 것은 주머니에 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권리만으로 여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라 가진 사람은 나라에 대한 권리만이 아니라 책임도 가지는 것이다. 나라를 내 노력으로 되찾는다면 그 과정에서부터 나라에 대한 내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이 해방을 선물처럼 가져다줄 때, 우리가 나라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6년 전 감옥에서 나와 해방의 희망을 떠올릴 때부터 나는 이 문제가 걱정되었다. 그때 희망을 떠올린 것은 중일전쟁 때문이었다. 십여 년 전 신간회가 좌절된 후 독립의 희망을 잃고 있다가 일본이 중일전쟁을 터뜨린 것을 보고 일본제국이 영원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조선을 집어삼킨 그 야욕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한없이 키워가는 것을 보면, 당장은 비록 승승장구하는 것 같아도 파탄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단재 선생 뒤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고 싶었다. 그러나 오십 나이에 스스로 추스르기도 힘든 이 몸이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변변찮으나마 분수에 맞는 길을 찾자 생각하고 역사 공부에 매달려 왔다.


역사 공부. 그렇다. 누구에게나 자기 하는 일이 크고 중요하게 느껴지겠지만, 공부를 할수록 민족의 독립을 위해 역사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절감하게 된다. 어떤 사업이든 생각과 행동의 양면이 합쳐져서 의미를 가지고 성과를 이루는 것이다. 독립 사업의 생각 측면을 뒷받침하는 것이 무엇보다 역사 공부다. 그래서 단재 선생께서도 역사 공부에 그토록 공을 들이셨던 것이 아닌가.


나라 잃고 삼십여 년을 지내는 동안 조선 사람들의 조선 민족으로서의 자각이 흐려져 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조선 백성의 절반 이상이 태어날 때부터 식민지인이었던 청년과 소년이다. 교육을 많이 받고 중요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일수록 일본어를 많이 쓰지 않을 수 없고, 그중에는 스스로를 ‘황국 신민’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지금 해방을 몇 달 안의 일로 내다보고 있지만, 6년 전 해방의 희망을 떠올릴 때는 해방이 6~7년 정도의 짧은 시간 내에 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올 것 아니겠냐는 정도의 막연한 희망이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외부 활동을 삼가고 역사 공부에 매달렸다. <조선일보> 일할 때도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여가에 틈틈이 들여다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해방이 되기는 되리라는 확신이 들자, 다른 일에 쓸 시간이 아깝게 되었다.


금년 내에 해방을 맞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이 나라를 어느 길로 끌고 나가자고 나서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길로 향할지를 올바르게 정하려면 우리가 어디로부터 어떤 길을 거쳐 이 자리에 와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 민족에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와 함께 어떤 약점이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을 모르는 채로 남이 하는 양만 보고 그럴싸한 길을 고른다면 일본의 꽁무니에서 다른 이의 꽁무니로 옮겨가는 데 그치게 된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바빠진다. 내 공부가 너무 부족하다. 십여 년간 단재 선생을 바라보며 공부의 길을 찾아 왔지만, 이제 그분만 바라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분은 해방이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위 차원의 진로를 생각하셨다. 그런데 그것이 당면한 현실로 다가오는 이제, 새로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선생께서 내놓으신 ‘민족주의’가 해방의 그날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다면, 해방되는 바로 그날부터 우리에게는 새로운 민족주의가 필요하게 된다. 애벌레에게는 애벌레의 원리가 있고 나비에게는 나비의 원리가 있는 것이다. 아! 선생께서 아직 이 세상에 계셨더라면 ‘신민족주의’의 길도 앞장서서 헤쳐 주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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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독자 아닌 책 독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너머 여러분과 의논하다가 매달 정리하는 글을 한 꼭지씩 만들어 넣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글을 어떤 형태로 만들까, 궁리하다가 민세 안재홍 선생이 한 달 한 달을 맞을 때 어떤 상념을 품고 있었을지 가상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게 괜찮은 길이 될지, 여러분 의견 주시면 고맙게 받겠습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