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를 자처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합리성 등 보수주의의 전통적 덕목을 보이지 않는 것을 놓고 “이 나라에 진정한 보수가 존재하는가?”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한탄에 공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있다. 그러나 정치세력으로서 보수의 모습은 명확치 않다.


제대로 된 보수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막상 생각해 보면 간단한 것이다.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정치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사회의 바람직한 진로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바람직한’ 진로에 대한 생각은 엄밀히 따지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인데, 국가사회의 수많은 구성원들이 각자 자기주장을 따로 내놓으면 현실적으로 절충해 나가기 어렵다.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는 나라에서는 국민 요구의 평균점이 대략 파악되어 있다. 그 평균점을 기준으로 빠르고 큰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좌파, 느리고 작은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우파라 할 수 있다.


좌파 뒤쪽의 유난히 성질 급한 사람들이 극좌고, 우파 뒤쪽의 각별히 완고한 사람들이 극우다. 극좌와 극우는 자기 진영 내에서 정치 작용을 활성화하는 건전한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교조주의, 모험주의, 패권주의 등의 성향으로 정상적 정치 작용을 저해하는 일이 많다. 이것은 반사회적 성향 인간들의 ‘반(反)정치’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정치의 목적에 역행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에 많은 국민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치에 대한 비판은 대개 도덕성을 기준으로 행해진다. 합리성 기준의 비판이 보완될 필요를 나는 느낀다. 개별 정치인에 대한 비판에는 도덕성이 기준이 되더라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합리성 기준의 비판이 필요하다.


65년 전 한국인이 국가 차원의 정치를 시작할 때의 상황에서부터 이 구조적 문제를 검토해 보자.


좌파건 우파건 이념으로서 경쟁하는 마당에서는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도그마를 최소화하고 합리성을 최대화해야 대중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가격을 최소화하고 품질을 최대화하려 노력하는 상품 시장과 같은 성격의 이념 시장이다.


그런데 상품 시장에도 시장 실패 상황이 있는 것처럼 이념 시장에도 시장 실패가 있다. 인프라가 미비하면 어느 시장에서든 합리적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폭력적 전술에 시장이 좌우될 수 있다. 그런 상황의 이념 시장에서 극좌와 극우가, 아니, 극좌와 극우를 가장한 야심가와 모리배들이 판을 친다. 대중의 자발적 선택의 길을 차단하고 책략을 통해 현실적 힘을 추구하는 것이다.


65년 전의 한국 이념 시장에는 인프라가 참 형편없었다. 무엇보다 일본의 식민 지배 수준이 저열했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라 해서 똑같이 야만스러운 것이 아니다. 20세기 전반 전 세계의 식민지 가운데 조선처럼 문화 수준이 높은 사회가 지방 차원의 자치 경험도 쌓지 못한 곳이 따로 없었다. 1920년대 ‘문화정책’이 나름대로 식민 지배의 세계적 수준을 따라가려는 노력이었으나 1930년대 일본의 군국화로 인해 원점으로 돌아갔다.


김병로, 이인과 함께 식민지시대 민족주의 ‘변호사 3인’으로 꼽히던 허헌은 1927년 1월 영국 지배 하의 아일랜드를 관광하고 그 ‘실질적 독립’ 상태에 경탄해 마지않았다. (<허헌 연구>(심지연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56-57쪽) 당시 세계에서 조선과 비교할 만한 문화 수준을 가진 식민지의 하나가 아일랜드였다.


해방 시점 한국 이념 시장에서 절대적 마력을 가진 상품은 ‘민족’과 ‘민주주의’였다. 굶주린 사람이 먹을 것 외의 가치를 돌아보지 못하듯, 일제의 억압 아래 굶주렸던 두 가지 이념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다. 두 이념은 너무 절대화되어 그 본질이 오히려 퇴화할 지경이었다. 어떤 고상한 이념도 비판적 검토 없이는 그 실질적 가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마녀사냥 따위에 이용되기 쉽다.


비민주적인 반동분자들을 배제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는 주장이 스스럼없이 사회를 휩쓸었다. 민주주의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반동분자라도 빠짐없이 참여시킨 다음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반동분자든 뭐든 판별해야 하지 않느냐는 원론적 주장은 투철하지 못한 회색분자로 몰렸다. 만인이 민주적 권리를 가지지만 비민주적 인간은 예외라는 이 민주주의관은 만인이 평등하지만 ‘더 평등한’ 자가 있다는 동물농장 수준이었다.


좌익과 우익이 대립했다고 하지만, 사회주의 노선과 자본주의 노선이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합리적으로 경쟁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압도적 힘을 가진 상표 ‘민족’과 ‘민주주의’를 간판으로 내건 뒤에서 책략과 폭력을 통해 정파적 투쟁이 펼쳐졌다. 이런 풍토에서 노선을 액면대로 밝히는 순진한 중도파는 이용 대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반탁’처럼 합리성 없는 구호라도 ‘민족’에 겹쳐지기만 하면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제대로 작동되는 이념 시장에서는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대중의 수요를 향해 수렴해 들어가 미세한 폭의 진동(oscillation) 상태로 안정을 취한다. 그런데 해방 정국에서는 대중의 수요가 무시되거나 쉽게 조작되어(쉽게 조작되는 것은 무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각 진영의 극단적 요소들이 진영 논리를 통해 득세하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이뤄졌고, 그 결과는 이념의 양극화였다. 겉보기로는 양극화지만 실제로는 이념의 증발이었다. 경쟁 없는 이념에는 이념의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


각각의 진영 속에서 중도파가 몰락하고 극단파가 득세하는 과정을 이제부터 살펴보며 진영 간 대결이라는 위장막 속에서 어떤 현실적 투쟁이 벌어졌는지 검토할 것이다.


이와 나란히 검토할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과 소련의 역할이다. 냉전 개시를 앞둔 시점에서 두 나라의 대립과 그에 따른 이기적 점령정책이 해방 한국의 이념 시장을 더욱 황폐하게 만든 측면이 크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