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6. 21:02

 

 

828일 개이고 더웁다.

 

日本 갔다 왔다는 노가다꾼 같은 美堂里 사람이 하나 와서 찌그럭이를 붙여서 尹弼遠 군과 충돌하고 말았다. 군의 격하기 쉬운 성격이 기어이 말썽을 일으키게 되었다. 집에서 기르는 소도 그 氣質을 보아서 다루어야 하는데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데도 역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이즈음처럼 치안력이 확립되지 못하고 주먹이 앞서는 세상에.

 

오후엔 학교에 面內改良書堂 선생 20 명을 모아서 지방문화운동에 挺身해야 되겠다는 것이며 또 한글이 세계에 으뜸간다는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들려주고 이내 한글이란 문제로 감상문을 쓰게 하였다.

 

밤에는 밤중까지 <草堂>을 번역.

 

 

829일 아침에 비오고 종일 흐리다.

 

아침에 비를 맞아가면서 朴大圭, 安相億 군과 함께 무, 배추씨를 뿌리다.

 

낮에는 水蔘을 많이 사서 먹기 시작하다.

 

저녁때 늦게 나서서 廉壽海, 李鐘遠, 李光鎬와 더불어 明道里 기와 굽는 흙을 보러 갔다 저물게 돌아오다.

 

밤에 경찰에 붙들려서 몹쓸 닦달을 받던 꿈을 꾸고 깨어나서 몸에 땀이 솟고 정신이 어찔하다. 내가 소년 시절에 형무소에서 나와서 몇 해 동안 늘 괴롭히우던 그러한 꿈이었다. 요사이 전 같으면 은밀히도 하지 못하던 말을 펴놓고 듣게 되는 때문일까. 내 마음 비겁한 까닭일까.

 

 

830일 비오다.

 

갑정이가 험한 밥을 먹어내지 못해서 굶주린 끝에 어느날 새벽 옥조를 보고 너는 배가 고프지 않느냐 하더란 말, 가슴이 쓰라린다. 눈앞이 자꾸 흐려진다. 하루종일 맥이 풀리고 기운이 없다.

 

감자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고향에 보내버려서 안해에게 미안하다.

 

선호를 시켜서 쌀 두 말 수삼 두 근 지켜서 고향 보내다.

 

저녁 무렵 무궁화 묘종을 옮겨 심었다. 보름 전에 이걸 심을 땐 마음속에 주저하였고 심은 후에도 누가 보고 이건 무슨 꽃이냐고 물을 때 가슴이 뜨끔하고 종내는 차라리 뽑아버릴까 하고 망설이던 걸 생각하면 오늘날 버젓하게 이걸 심을 수 있는 일이 꿈 같다. 저번에 심은 것이 그 가뭄에도 잘 자라났다. 안해가 그 생명력의 강인(?)함을 탄복하였다. 잘 벋어라 무궁화야.

 

 

831일 흐리다.

 

堤川 .

 

역에 내리니 귀환 병정, 應徵士 환영, 강원도 영월군이란 깃발이 보이고 그 외에 平昌, 旌善 도 있었다. 그리고 마이크로폰으로 강원도 寧越 사람으로 兵丁이나 徵用 갔던 분은 이리로 오시오.” 하고 외치고 있었다. 이 더위에 갖은 고생을 겪고 가까스로 여기까지 돌아와서 다시 몇 백리 산길을 어떻게 토파갈까 하고 걱정하던 사람들이 저 깃발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기쁠까. 同胞愛에 눈물겨웁고 새 결심이 용솟음칠 것이다. 근래에 보던 중 가장 유쾌한 광경의 하나이다.

 

堤川 조합에 가서 돈 30만 원을 얻어왔다.

 

밤에는 새 한 시까지 <草堂> 번역.

 

 

이 일기를 더 잘 정리해서 내년 초부터 발표하고 <역사앞에서> 증보판도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기다려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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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