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몽양심포지움에서 발표할 내용을 정리해 보내고 난 뒤에 이어지는 생각이 많다. 자료집에 수록되는 내용은 간단하게 발표하고 이어지는 생각을 많이 내놓아야 할 듯.

 

 

1. 냉전이 닥쳐오는 상황을 알아보지 못하고 시국을 너무 낙관했다는 "판단 오류"의 의미를 너무 크게 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1935년 6월의 글에서 "세계화"를 내다본 것은 큰 흐름을 정확하게 읽은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냉전은 세계화의 큰 흐름에 대한 반동의 역류일 뿐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반동의 역류로서 비슷한 사례로 19세기 초반의 "비엔나체제"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대의 흐름은 국민국가 발전의 방향이었다. 비엔나체제는 그 흐름이 겉으로 솟아나오는 것을 막았지만 저류(底流)는 막을 수 없었다. 미-소의 힘이 세계화의 흐름이 크게 나타나는 것을 막았지만 비동맹주의 제3세계에서는 계속 진행되어 온 것이 아닌가. 지금 ASEAN의 존재감이 크게 드러나는 것을 그 결과로 볼 수 있지 않을지. 우리 사회는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 있었기 때문에 이 흐름에 둔감했던 것이 아닐지. (여기서 말하는 "세계화"는 물론 냉전 종식 후의 경제적 세계화가 아니라 "세계정부"를 향한 정치적 세계화다.)

 

2. "과거 청산"과 관련하여 사회의 "신진대사"라는 관점이 떠오른다. 수구세력이 장악했거나 지나치게 보수적인 분위기의 사회에서는 사회유동성이 줄어들어 건강 유지에 필요한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가 오래 쌓이면 돌파구를 찾게 되는데, 오래 쌓여 있었을수록 과격한 방식이 제기된다. 심할 경우 배설물 배출로 해결되지 않고 신체 부위를 절제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일제의 강압 아래 모순이 다년간 축적되어 있던 해방 때는 과격한 방식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마땅히 배제되어야 할 민족반역자 집단을 넘어 有産-有識 계층 전체가 "친일" 척결의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다. 이 계층의 재활용 가능 범위를 확보하자는 것이 안재홍의 주장이었다. 민족 정기의 확립을 위해서는 "처단"과 "포용"의 두 측면이 함께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신진대사의 관점에서 타당함이 분명하다. 이북의 포용 없는 처단이 어떤 문제를 불러왔는지도 살필 여지가 있다. 처단-포용의 양면적 접근이 이남에서 좌절된 1차적 원인은 미군정의 친일-친미파 보호와 육성에 있었다.

 

진행 중인 "적폐 청산", 그리고 언젠가 닥칠 "친미 척결"에도 신진대사의 관점을 적용시켜야 현실적 성공 가능성도 높이고 바람직한 효과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