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는 일, 생각나는 일 중에 중요한 것은 모두 여기에 적기로 하고 지내지만, 사람의 일 중에는 더러 가려 놓아야 할 것도 있다. 청춘 남녀를 사귀도록 소개해 주고 그 결말이 공표되기 전에 여기 적는 것도 삼가야 할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봄 Y와 B를 소개해 줄 때, 그 하회를 반년도 안 되어 여기 적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B가 해외 체류 중이어서 서로 잘 맞더라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이 붙자마자 메일질을 중요한 일과로 삼는 것 같더니, 불과 4개월 만에 결론을 다 내 버린 기색이다.

 

너무나 기쁜 일이어서 보름 전 귀국한 뒤부터 주변사람들에게 자랑을 시작했다. Y가 이 사실을 알고 B에게 선생님이 동네방네 소문내고 있다고 걱정했더니 B가 말하기를, "선생님은 교류 범위가 넓지 않아서 소문내 봤자 거기가 거기니까 걱정 마세요." 하더란다. Y와 엊그제 점심 함께 하면서 들은 이야기다. 그래서 여기 적을 마음이 들었다. 한적한 동네니까 소문내 봤자 거기가 거기겠지.

 

Y의 아버지가 마당에 꽃이 좋으니 꽃 보며 한 잔 하자고 지난 봄 청해서 갔을 때, 그 집 딸이 꽃보다 더 눈에 들어왔다. 제주 살며 처음 볼 때 초딩이었나, 중딩이었나, 씩씩한 어린이로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고, 근년에는 꼭 한 번 밖에서 본 일이 있다. 그런데 집에서 보니 활달하면서도 튀지 않게 자기 역할을 하고, 무엇보다 손님들과 자기 부모님을 두루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아주 넉넉해 보였다.

 

돌아온 뒤에 B 생각이 났다. 자기 일을 잘할 뿐 아니라 자기 생활도 잘 챙기는 편으로 보기는 하지만, 뭔가가 아쉽게 느껴지던 친구다. 근거랄까, 좌표계랄까? 자신의 일과 생활이 갖는 의미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 그가 여자친구 사귀기를 보통 넘게 좋아하는 것도 스스로 그 아쉬움을 느끼기 때문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Y를 보니, B를 꽉 쥘 수 있는 인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서로의 하는 일을 넓고 깊게 이해하며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고, 라이프스타일도 서로 꽤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Y에게 이런 사람 사귀어 보면 어떻겠냐고 메일로 물었더니 그의 글을 좋아한다고, 기꺼이 사귀어 보겠다고 응답하기에 ('내숭'과는 웬수진 아가씨다.) 양쪽에 메일 주소를 가르쳐줬다. 생전 처음 해보는 중매인데, 해보니 힘들 것 하나도 없다.

 

보통 중매장이들이 하지 않는 특별서비스를 하나 한 것이 있다. 두 남녀가 메일질을 시작한 직후 Y와 그 부모님을 끌고 B의 고향 동네로 2박3일 놀러가 B의 부모님과 안면을 트게 한 것이다. Y와 B 두 사람 사이의 '케미'가 잘 풀릴 것에 대해서는 내게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더 중요한 것으로 내게 생각된 것은 Y의 등장이 B의 가족관계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B가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은 단계에서 그 부모님을 뵙고, 가족 간의 여러 관계가 나란히, 어울려 자라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뒤의 진행에 관해서는 본인들이 간간이 알려주는 것만 듣고 있었지만, 그런 중에도 감동적인 대목들이 있었다. 한 번 Y가 혼자 B의 집에 다시 가서 그 어머니와 단둘이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는데, 직후에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Y는 끌어안고 함께 울 수 있는 아이더라" 했다고 한다. 아들 일은 아들 스스로가 결정할 것이라고, 부모가 더 간여할 일이 없다고 공식적으로는 표방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이렇게 움직였다는 '참고사항'이 얼마나 값질 수 있는 것인가.

 

양가 부모님 네 분이 모두 나랑 두어 살 안쪽의 같은 또래로, 마음이 넓고 유연한 분들이다. 양가 자녀의 결합이 현실을 이끌고 가는 큰 흐름이라고 볼 때, 노친네들이 (이 구경꾼도) 이 흐름을 함께 즐기면서 흐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나는 바람직한 길로 본다. 현재와 과거를 대립시키는 E H 카의 관점에 불만을 가진 이 역사학도 구경꾼은 모든 과거의 축적이 함께 현실을 구성한다는 관점에서 역사 인식을 더 절실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Y와 B의 결합이 개인과 개인의 원자론적 결합을 넘어 양가 부모님까지 끌어들이는 유기론적 관계로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며 이 믿음을 다시 확인한다.

 

당사자 2인에 주변 4강을 끌어들이는 6자회담을 추진하는 셈인데, 아무래도 6자 중 B의 입장이 내게는 제일 가까이 느껴진다. 직업이 같기 때문이다. 어제 그에게 보내는 메일에 이렇게 썼다.

 

어제 Y 이야기 들으며 "등신대 거울"이란 말이 떠올랐어요. 모든 인간관계에는 거울의 의미가 있는 건데... 남녀간 관계에서 특히 그 의미가 큰 것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겠죠. 조그만 조각거울로 나 자신의 어떤 특성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가 없죠. 좋은 거울은 일단 크기가 충분해야 하고, 맑아야 하고,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건데, 덩치가 작지 않고 변화도 적지 않은 B의 모습을 잘 담아줄 거울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지난 봄 Y를 보고 내가 꽂힌 게 그 때문이에요.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 내용에 몰두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세상이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데는 균형을 잡기 어려울 수 있다. B가 좋은 거울을 찾아 일과 생활이 잘 어울리게 하기 바라는 마음은 "나는 바담 풍 해도~" 하는 훈장의 마음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