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고 책을 덮으니 제목에 생각이 걸린다. 겉으로 나타나는 흐름에 감춰진 내면의 흐름을 짚어낸다는 뜻에서 <말죽거리 잔혹사>를 패러디한 것은 좋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묵직한 내용에 비해 너무 겸손한 표현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그에 비해 "민주주의"를 내건 데는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내거는 이유가 머리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도 엘리트들이나 유명한 사람들만 주로 부각되고,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은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역할이 여전히 부차화, 주변화되는 것은 현재 민주주의의 가장 잔혹한 측면이다. 즉 '민주주의 잔혹사'라 할 때 이는 한국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탄압, 국가폭력 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혹은 희생된 사람들이 여전히 가려지고, 역사에 잘 기록되지 않는 것 역시 잔혹한 일이라 생각한다.

 

민주주의를 가운데 놓고 보니 이 책에 담긴 여덟 개 사건 중 "5-16쿠데타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등이 민주주의 잔혹사로 다뤄진 것이 다소 의외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 두 개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사건들이 품고 있는 의미도 민주주의에 꼭 초점을 둔 것이 아니다. "민주화운동"과 가까운 소재를 다룬 제1장 "박종철과 6월항쟁"과 제6장 "마산 할머니와 4월혁명"을 봐도 민주주의 이전의 인간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다.

 

내가 편집자로서 저자에게 제목을 제안하는 입장이라면 "대한민국 잔혹사"를 오히려 권할 것이다. 1946년 1월의 학병동맹 사건에서 1987년 1월의 박종철의 죽음까지 선의의 개인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부딪쳐 좌절하는 여덟 개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게 나라냐?" 하는 질문은 너무나 늦게 울림을 일으켰다. 이 책의 여덟 개 장면,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게 나라냐?" 하는 질문이 왜 나오는가?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획일적인 것일 수 없다. 높은 수준의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군사적 안전을 더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경제적 경쟁력을 더 중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부정할 수 없는 최소한의 요건이 있다. 세금을 받아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폭력의 독점권을 주장하려면 국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국가가 이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가로막았기 때문에 촛불 든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물었던 것이다. "이게 나라냐?"

 

해방 후 조선에는 민간조직이 취약했다. 일제 통치자들이 일체의 자발적 조직을 탄압했기 때문이었다. 일제 말기에 학병으로 징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학력이 높고 군대 경험을 공유하면서 상호 연락이 가능한 특수집단이었다. 그들은 독립국 군대의 자원이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학병동맹을 결성했다. 이 조직이 남조선을 점령한 미군정에게는 불편한 존재였고, 일제의 주구에서 미군정의 주구로 변신하려는 경찰에게는 큰 적이었다. 그래서 경찰은 학병동맹을 좌익 동조세력으로 몰아 참혹한 탄압을 가했고 미군정은 이것을 용인했다.

 

1951년 2-3월경의 어느 날 산청군 지리산 자락의 한 야산 골짜기에 특이한 복색의 군인들이 2백여 명의 민간인을 버스에 태워 끌고와 학살했다. 2008년 진실과화해위원회 결정에 따라 현장을 발굴한 결과 확인된 피살자는 268~276명으로 추정된다. 피살자들이 어디서 끌려온 누구인지 아직도 확인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량학살 중 특이한 현상이다. 저자는 1951년 1월 말 <민주신보>의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피난민으로 가장한 불온세력 286명이 검거되었다는 기사와 연결시켜 보는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합당한 추측이다. 1월 21일에 286명이 거제도에서 검거되었다는 기사는 1951년 1월 31일자 <동아일보>에도 실려 있다. 이때 검거된 사람들의 사법처리 등 향배에 관한 기사는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에서 찾을 수 없었다.

 

학병동맹 사건은 대한민국이 모습을 갖추기 전의 일이지만 그 가해세력이 대한민국의 주축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분단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을 원했다. 통합된 민족국가가 세워진다면 자기네 친일 경력이 용납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분단의 상대방을 악마화함으로써 "반공"을 "민족"에 앞세웠다. 그 억지를 강행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전쟁의 책임이 이승만 정권에게 전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상당 부분 있다는 뜻이다.)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가운데 하나가 외공리 사건이었다. 전쟁에 치어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더 기가 막히는 일이다.

 

저자는 외공리 학살사건을 서술하다가, 참혹한 역사를 파헤쳐야 하는 필요를 이렇게 말한다.

 

필자는 기억하고, 진상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단 이와 같은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던 환경과 조건에서 우리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이 문제를 꺼내고, 규명하고, 또한 성찰할 필요가 있다. (243쪽)

 

그런 규명과 성찰은 1987년까지 군사정권 하에서 국가의 힘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다. 1984년 10월 청송감호소에서 박영두의 죽음,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의 죽음, 모두 규명과 성찰을 모르는 대한민국의 국가 특성이 불러온 수많은 비극을 대표해서 이 책에 그려져 있다.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의 이야기에 이어 나오는, 아무 소문없이 희생된 한 청년의 이야기가 심금을 더 깊이 울린다. 그와 비슷한 수많은 무명의 희생자들이 떠오르기 때문일까.

 

민주화에 따라 대한민국의 인권 감각도 발달했다. 진실과화해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규명과 성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명박정권 아래 국가인권위원회가 변질되면서 규명과 성찰의 분위기는 덮여 버렸다. 그러다 보니 수백 명 목숨이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동안 머리나 다듬으면서 전화와 서류로만 사태에 대응하는(또는 대응했다고 우기는) 대통령까지 보게 되었다. "이게 나라냐?"

 

대한민국의 국가 성격에 대한 비판은 수없이 이뤄져 왔다. 홍석률의 비판이 독자의 감흥을 특히 강하게 일으키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게 시선을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민주화"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겪어내는 조건으로서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관점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역사학자들이 기록을 너무 숭배한다고 조롱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자질구레하게 기록에 집착하는 것은 기록을 숭배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 그 반대다. 기록을 문자 그대로 읽지 않고 맥락 속에서 파악하기 위해, 기록에 작용하는 권력관계를 제대로 파악해 내기 위해, 무엇이 기록되고 기록되지 않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전반적인 전개 과정과 맥락을 알아내고 재구성하는 데 집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있어야 주변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점을 찍듯이 언급된 자투리 기록들이 서로 연결되어 선이 드러나고, 면을 형성하면서, 그 입체상을 보여줄 수 있다. 이에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드러나고, 현실화되지 못한 희생된 역사의 가능성도 다양하게 포착될 수 있는 것이다. (190쪽)

 

역사의 입체상을 추구하는 노력은 좋은 방향이다. 1840년대에 프레데리크 바스티아가 쓴 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Ce qu'on voit et ce qu'on ne voit pas)"을 종종 되새겨 보는데, 보이는 것에 집착해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는 풍조가 실증주의의 큰 병폐였다는 생각을 한다. 존재하는 것 중에는 여건에 따라 보이게 되는 것이 있고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보이지 않더라도 존재함직한 것을 살피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역사학만이 아니라 어느 학문도 현재의 상황을 지키기만 하는 역할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현실화되지 못한 희생된 역사의 가능성"에 관한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역사의 필연성을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가 학인(學人)에게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석률은 "다양한 가능성을 내걸고 활동하는 주체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진로는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그때그때마다 형성되어 간다."고 말하는데, 나는 모든 주체의 노력이 역사의 흐름에 작용하기는 하지만 그 노력이 서로 어울어져 큰 흐름을 만드는 것이지, 하나하나의 노력이 개별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역사 공부하는 사람이 사회에 말해줄 수 있는 것은 특정한 가능성에 대한 평가보다 흐름의 방향에 대한 의견이라는 생각이다.

 

"역사의 가능성"에 대한 이 관점의 차이가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경계선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역사학에서는 이 경계선에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는 가능성의 "희생"에 애틋한 마음을 품고 역사의 주변부를 밝히려 애쓰는데, 나는 현재의 상황에 가려져 있는, 존재하면서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는 것이 반갑다. 역사를 더 넓게, 그리고 더 깊게 바라보려는 마음은 같은 것이다. 어느 대목에 가서 이 관점의 차이가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을까? 나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이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 극복하지 못한 현실 때문에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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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