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선한 의지" 논란을 보며 최근 번역한 글(D Bell, The China Model)에서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한 정치인관을 소개한 대목이 떠오른다.

 

베버는 정치가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정열,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 정열이란 감정적 고양이 아니라 대의(大義)에 대한 헌신성을 말하는 것이다. 정치가는 이 대의에 대한 책임감을 행동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 또한 균형감각은 그로 하여금 내면적 집중력과 침착성을 갖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주며, 따라서 사물과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지키게 해준다.”

 

훌륭한 정치가에게 문제는 결국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균형감각을 어떻게 하나의 인간 안에 합쳐놓느냐하는 것이다. 나쁜 정치인의 경우 권력의 추구가 객관성을 잃으면 대의를 위한 헌신이 아니라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길이 된다. 정치의 궁극적 대죄(大罪) 두 가지 중 하나는 객관성의 상실이고, 또 하나는 무책임이다.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고 싶어 하게 하는 허영심이 두 가지 죄 중 하나, 또는 둘 다를 향해 강하게 이끌어간다.”

 

안희정의 발언에 "분노"가 들어 있지 않다는 문재인의 지적은 간결한 표현으로 정곡을 찔렀다. 정열이 없거나 감춰진 발언이라는 것이다. 안희정은 비유니, 반어법이니, 테크니컬한 기준으로 해명을 했지만, 문재인의 지적에 자신은 "분노의 정치"를 바라지 않는다고 대응했다. 이 대응은 득보다 실이 많은 방향이었다고 나는 본다. 당장은 그 자신 선량한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뜻에서 한 말이라고 사람들의 이해를 받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자신이 "정열 없는 정치가"가 되려 한다는 고백 아닌가.

 

일반 생활인에게도 정열은 필요하다. 그리고 정열이 지나쳐도 문제가 된다. 질 좋은 정열을 적당량 갖고 사는 것이 본인에게도 좋고 그가 속한 사회에도 좋다.

 

일반인보다 넓은 범위에 많은 책임을 지는 정치가라면 이 점에서 일반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단, 책임이 큰 정치가의 정열이 지나칠 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아무리 감정적 고양이 아니라 대의에 대한 헌신성이라도, 정열이 지나친 정치가가 큰 책임을 맡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한편 '정치'가 '행정'과 다른 점을 생각한다면 정열의 필요가 분명하다. 가치 판단의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의 현상 유지를 위해서라면 정열 없는 행정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새로운 가치 판단을 부단히 필요로 한다. 특히 인민의 뜻을 정치에 반영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정치에 정치가의 정열은 꼭 필요한 것이다. 인민의 정열에 호응하는 정치가의 정열이 있어야 인민의 정열이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타날 때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물꼬를 틀어줄 수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는 인민의 분노를 여과없이 대변했고 힐러리는 아무 호응을 하지 못했다. 인민의 정열을 승화시킬 길을 보여준 것은 샌더즈였다.

 

정치에 정열의 필요성은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 대다수 인민이 편안한 만족을 누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열을 발동시킬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민의 불만이 커서 큰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 불만을 정치권이 수용하고 소화하는 데 정치가의 정열이 필요하다.

 

한국 정치에서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분석에 큰 의미가 없다고 나는 본다. 수구와 변혁의 대결을 그 기본 양상으로 본다.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구호가 무엇이었나. "바꿔 보자!" 아니었던가. 한국 정치는 "운용의 미" 정도로 다수 인민을 만족시킬 만한 틀을 갖춰본 적이 없다. 1987년을 계기로 수준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50보 100보였다는 사실이 근년 확인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다수 인민은 어느 쪽으로에 상관없이 "바꿔 보자!"를 외쳐온 것이다. 한편 숫자는 적지만 유리한 위치를 누리는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또는 무의식중에라도 "이대로!"를 외치며 버텨 왔다. ("개혁"이란 말은 큰 틀을 "이대로!" 지키며 최소한의 운용상 변화만 바라보는 뜻으로 많이 쓰여 왔기 때문에 여기서는 "변혁"이란 말을 쓴다.)

 

나는 보수주의자를 자처해 왔다. 이상주의적인 진보 주장에 반대하는 생각을 변함없이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 상당한 변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해 왔다. 불가피한 변혁을 받아들이되 지나친 욕심에 휘둘리지 않기 바라는 것이다. (변혁의 범위가 제한되기 바라는 뜻이 "개혁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기술적 수준에 그치는 "개혁"을 넘어 이념적 정합성을 요구한다는 데 나는 의미를 둔다.)

 

지금은 그 변혁의 필요성이 모처럼 크게 드러나는 상황이다. 정치가들의 균형감각보다 정열이 크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정치판이 정열에 휩쓸릴 수 있는 이 상황에서 굳이 "분노의 정치"에 경멸감을 표하며 균형감각을 강조하는 안희정의 뜻도 가상하고 용기도 가상하다. (이것은 반어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한 의지" 발언에 대한 차후의 해명은 구차하다. "이대로!"를 마음에 품은 강력한 소수파에 영합한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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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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