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⑭
기사입력 2008-09-30 오전 10:24:39
안병직은 <시대정신> 2008 가을호에 실은 '한국 근현대사의 체계와 방법'이란 글에서 현행 중등 역사 교과서들에 비해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우월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의 중요한 논점 하나를 아래 대목에서 볼 수 있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정치사나 경제사 등 사회과학계의 역사 연구를 역사학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데, 이러한 견해는 한국 사학계가 아직도 근대과학의 이론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발언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힌다. 한국 사학계가 아직까지 근대과학의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그들이 한국근현대사를 제대로 서술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여간 심각하지 않은 문제를 제기한다." (<시대정신> 40호, 250쪽. 안병직 발행·편집의 이 잡지를 내가 구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또한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
사회과학계의 역사 연구를 역사학이 아닌 것처럼 말한 역사학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정말 그렇게 말한 역사학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역사학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진지한 역사학자로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학자의 정치사 연구나 경제학자의 경제사 연구 중에는 역사학의 관점에서 별 의미가 없는 것도 있지만, 역사학계에 중요한 공헌이 된 것도 수없이 많다는 것이 상식 아닌가?
안병직의 위 발언은 교과서포럼에 역사학자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반박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그 뜻은 아래 글에 더 분명히 나타난다.
"한국의 사회과학계에서 대안 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출판하자 한국 사학계 일부에서는 이를 역사학 전공자들이 아닌 연구자들의 저서라고 비하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들이 과연 역사학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역사학이란, 본래 '역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지, 거기에 무슨 독점적 연구의 특허권을 가진 학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책, 261~262쪽)
이것은 좀 위험한 생각이다. 자동차 생산라인에는 여러 분야 기술자들이 매달린다. 그 모두가 '자동차 만들기'에 공헌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몇몇 기술자가 생산라인 밖에서 모여 저희들끼리 자동차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하자면 목적인(final cause)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 연구와 역사 서술은 다른 것이다.
서울대의 문중양(국사학과)과 김영식(동양사학과)은 학부에서 계산통계학과 화학공학을 전공한 이들이다. 대학원에서 과학사를 전공했고, 연구의 초점을 계산통계학이나 화학공학이 아닌 역사학에 두었다. 그 결과 역사학에 대한 공헌 능력이 역사학계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교과서포럼 멤버들이 분류사 연구자더라도 문 교수나 김 교수처럼 역사학에 초점을 둔 학술 활동을 해 왔다면 이번의 자칭 대안교과서보다는 훨씬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전공 학자들은 결과가 신통치 않아도 자기 분야의 권위에 문제가 없다"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에는 '역사 교과서'로 삼기 어려운 많은 문제가 있고, 편집·집필진에 진지한 역사학자가 없다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보인다. 안병직은 역사학계의 배타성을 탓하는 듯하다. 역사학계의 '나와바리' 문제는 동양사 전공자로서 한국사에 관심을 키워 온 나 자신 어려움을 겪어 온 것이고, 우리 역사학계에 좀 더 개방적인 분위기가 자라났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안 교과서 문제를 놓고는 "역사학자 없이 하니까 잘못된 것이다." 하는 뜻보다 "잘못된 것을 보니 역사학자 없이 했다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뜻으로 들린다. 설령 교과서포럼에서 역사학 교수 두엇을 포섭해 이름을 올렸다 하더라도 책 내용에 문제가 많으면 "제대로 된 역사학자의 참여가 없었다."는 지적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뉴라이트처럼 자금력과 영향력이 큰 세력에서 교과서포럼에 역사학자 하나 동원하지 못한 것이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하면, 다른 전공 학자들은 결과가 신통치 않다 해서 자기 분야의 학문적 권위에 손상을 입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역사 교과서 관여가 도덕적 문제일 뿐, 학문적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역사학자가 이 일에 끼어든다면 그야말로 학문적 생명을 걸어야 한다. '대안교과서'에 학문적 권위를 걸고 달려든 사람은 이영훈 한 사람뿐인 것 같다. (그는 역사학자를 자처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온 학계의 구경거리가 되어있다.
"사회과학자들 한 일이 역사학자들 하는 것과는 역시 다르구나 싶은 점"
안병직은 '사회과학계'를 한국 사학계와 대비해서 교과서포럼의 배경으로 내세운다. 교과서포럼 멤버들의 전공이 하도 중구난방이다 보니 오합지졸의 인상을 주는 것이 안쓰러웠던가보다. 뭐든 하나의 학계를 갖다대면 일관된 학문적 원리가 작용했다는 인상을 줄까 하는 뜻인가 본데, 전공의 최소공배수를 기껏 '사회과학' 정도로밖에 줄일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학에서 경영학까지, 사회과학 전체를 일관하는 학문적 원리가 뭐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일까.
그는 한국 사학계가 "근대과학의 이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마치 교과서포럼의 '사회과학자'들은 그런 이론을 갖춘 것처럼 풍긴다. 그래서 과연 어떤 이론을 그리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글 끝까지 읽어보았지만, 이론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내세운 이야기는 민중 운동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사에 중점을 둔다는 것, 실패국가를 무시하고 성공국가만을 바라본다는 것, 두 가지뿐이다. 이것은 학문적 이론이 아니라 기껏해야 이념적 기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과학자들의 작업이므로 역사학자들의 작업보다 과학적 기준에서 우월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 사실 안병직이 짚어서 제시하지는 않아도, 사회과학자들 한 일이 역사학자들 하는 것과는 역시 다르구나 싶은 점이 있기는 있다. 그런데 그것이 '역사 교과서'로서는 치명적 결점으로 보이는 것이다.
뚜렷한 예로, 연재 첫 회에서 지적했던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보는 관점 같은 것이다. 근대 자연과학은 자연의 추상화를 탐구 방법 확장의 기반으로 삼았다. 물리학개론에서 말하는 점(point)이니 강체(rigid body)니 하는 것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복잡한 자연의 한 측면만을 추상화해 이론의 전개를 손쉽게 한 것이다.
사회과학은 자연 현상 대신 사회 현상에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적용시키고자 하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고전경제학에서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상정한 것은 복잡한 인간의 한 측면만을 추상화해 이론의 전개를 손쉽게 한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 존재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활을 통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정신병자나 천치가 아닌 경제학자라면 연구는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는 전제 하에 진행하더라도 현실 생활에서는 인간을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는 학술적 가정(hypothesis)을 역사 해석에도, 국가 정책에도 적용시키려 드는 자들은 정신병자일까, 천치일까? 자기 마음속에 이기심밖에 없으니 남들도 다 그런 줄 아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사(社史) 수준"
과학에 대한 맹신은 근대적 현상의 하나였다. 17세기의 과학혁명이 18~19세기 산업혁명의 발판이 되었고 산업혁명이 근대사회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20세기 중엽까지 과학에 대한 신뢰는 거의 종교 수준이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발표를 계기로 환경문제가 일반인의 의식에 부각되면서 과학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후 과학 자체를 그야말로 '과학적'으로 고찰하는 노력이 과학의 한계를 밝혀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이 열렸다.
과학이 신앙의 대상이던 시절에 자라난 '근대 역사학'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 역사학의 특성을 나는 이렇게 본다.
"인쇄술 발전으로 정보의 축적만이 아니라 유통까지 대형화한 단계에서 근대 역사학이 나타났다. 피지배층까지 문자를 향유하게 되면서 국민 통제 수단으로 국민 교육이 개발되고 역사 교육이 그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역사 교육의 내용을 확보하고 담당자를 양성하기 위해 직업적 역사학자들이 대학에 자리 잡고 분과 학문으로서 근대 역사학을 키워냈다.
근대 역사학이 투쟁의 무기로 쓰인 것은 근대가 투쟁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민족국가들은 국민에게 민족의 영광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역사'를 경쟁적으로 개발했고, 이 경쟁에는 '과학성'이 동원되었다. 그래서 근대 역사학은 유사과학(pseudo-science)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 성격을 더욱 강화한 것이 계급투쟁을 제창한 마르크시즘이었다." (<밖에서 본 한국사>, 11쪽)
근년 교과서를 비롯한 역사학계 주류의 서술 기조가 민족주의와 민중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묶여 왔다는 뉴라이트 측의 지적에 나는 동의한다. 따라서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데도 일부 세력의 항일운동에 절대적 비중을 두는 대신 대다수 한국인이 처해 있던 현실 상황에 더 주목하자는 그들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뉴라이트 쪽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실증'을 내세우는 데는 역사 개발의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뜻이 보인다. 그 실증이란 것이 역사학자들보다 숫자놀음에 익숙하다는 이점을 활용해 유사과학의 특성을 강화하는 방향이라면 그 한계는 뻔하다. 인간 자체의 이해 노력을 외면하는 유사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배척하면서 또 하나의 다른 이데올로기에 복무할 뿐이다. 기존 역사관이 민족과 민중에 복무하는 것이라면 뉴라이트 역사관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사(社史) 수준으로 물러서는 것이다.
"잿밥에 마음이 가 있으니 염불에 공을 들일 수 없다"
역사학계의 실태에 대한 뉴라이트 비판 중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이 꽤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정략적 의도에 쫓겨 주장하는 본인들조차 제대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아쉬운 일이다. 안병직의 이런 말도 말인즉 매우 지당한 말이다.
"근현대사의 연구는 고대사나 중세사와는 달리 역사 과목 이외에 해당 연구 분야의 이론을 제대로 습득해야 수행할 수가 있는데, 지금의 한국사학계처럼 다른 학문 분야의 역사학 전공자들과의 학제적 교류를 기피하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시대정신> 40호, 262~263쪽)
두 가지 방향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지적이다. 하나는 근대사회가 전근대사회보다 구조가 엄청나게 복잡해졌기 때문에 전통시대 연구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관점을 포괄하지 않으면 총체적·실효적 파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근대 들어 분과 학문들이 늘어나 전통시대에 역사가가 맡고 있던 역할을 나눠 맡아 왔다는 점이다.
선진국에 비해 다른 분야들과의 학제적 연구가 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한국 역사학계가 극복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전통시대사 연구도 그렇지만 특히 근현대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절실한 문제다.
그런데 뉴라이트의 문제는 이런 문제를 지적만 했지, 그 극복을 위해 스스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교과서포럼은 역사학자를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나? 교과서포럼 안에서 역사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함께 토론하는 것도 문제 극복을 위한 합당한 길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대로 우호적이라 할 만한 몇 사람에게 부탁해 보았습니다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다고 이영훈은 말한다. (같은 책, 327쪽) 우호적인 역사학자들조차 수긍할 수 없을 만큼 결함이 큰 방향을 추구한 것이고, 교과서 교체라는 현실 정치적 목표에 쫓긴 때문일 것이다.
나는 뉴라이트 역사관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진정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뉴라이트는 이 문제들을 끌어 모아 자기네 주장의 명분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잿밥에 마음이 가 있으니 염불에 공을 들일 수 없다. 반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문제 지적에는 과장을 일삼으면서 막상 문제 극복을 위해서는 진지한 노력이 없으니 학문적 도전이 아니라 정치적 책략으로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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