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3. 16:57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⑬
기사입력 2008-09-19 오전 11:56:26
"악한 사람", 또는 "나쁜 놈"은 통상 상대적 의미를 가진 표현이다. 성격이 모질어 보통사람이 못하는 짓을 하는 사람, 또는 통상적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동 방식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비난의 뜻을 더 강하게 할 때 "짐승 같은 놈"이나 "사람 같지 않은 놈"이라 하는 것을 보면 악한 사람도 사람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악한 인간"이라 하면 '인간'보다 '악'에 의미의 중점이 있다.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악'을 말하는 것이다. 사악한 인간이란 스스로 인간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존재다. 형식적으로는 사람이지만, 실질적 의미에서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는 존재다.
보통사람의 소박한 관점으로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절대적인 '악'의 관념을 앞세워야 한다. 절대악의 개념을 공급하는 종교는 여러 갈래 있고, 그 중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기독교다. 촛불 시민들이 아무리 밉더라도 그것을 "사탄의 무리"로 규정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절대악 개념 없이 힘든 일이다.
부시가 한 "axis of evil"이란 말을 절대악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적 의미를 제시하는 아무 준거도 없이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평소 인간이 사악할 수 있다는 생각 없이 합리적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애쓰던 나 같은 사람도 "저 놈이야말로 사악한 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시의 마음속에 절대악의 개념이 있음을 안 이상, 그 개념의 존재를 존중해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뉴라이트 물결에 휩쓸린 사람들 중에 우둔한 자들은 있겠지만, 사악한 인간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사실 생각한다. 그러나 사악한 인간처럼 보이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뉴라이트 이념을 대표한다는 이들 중에서 아래와 같은 언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저 놈이야말로 사악한 놈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대중 씨는 자기의 주관적 통일 이론만 가지고 남북 수뇌 회담을 추진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북한 정세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만큼 우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민족이야 어떻게 되었던 자기의 개인적인 정치적 야심을 철저히 추구할 만큼 사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288쪽)
'사악'이란 유별난 말을 안병직이 썼기 때문에 이 대목이 두드러지게 눈에 거슬렸던 것인데, '우둔'이란 말을 쓰는 방법도 생각해 보면 비슷한 것이다. 북한 정세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어떻게 읽는 것인가? 안병직이 북한 정세 보는 관점 내놓은 것을 보면 "어, 저렇게 보는 사람도 있구나. 참 별난 사람이네." 하는 생각은 들지만, 그가 우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와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우둔하다고 규정하는 것을 보면 "저 놈이야말로 우둔한 놈 아닌가?" 하는 생각을 참기 힘들다.
"'햇볕 정책'이란 말에는 북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함축되어 있다"
북한 정세에 관해 안병직이 접하는 정보의 분량이 나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접하던 정보량에는 훨씬 못 미칠 것이 분명하다. 여의도연구소를 맡고 있는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위에 인용된 얘기를 하던 시절에는 큰 격차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김 전 대통령을 우둔하다고 단정 지은 까닭이 무엇인가?
위의 인용에 앞선 이야기를 보면 (같은 책, 286~288쪽) 북한이 정상 국가가 아닌 폭력 국가라는 사실, 북한이 1998년 이후 강성 대국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 대북 정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나는 안병직의 대북관이 틀린 것이고 김 전 대통령 쪽이 옳았다고 생각하지만, 정보량에 자신이 없으니 고집을 세우지는 않겠다. 안병직의 관점이 옳은 것이라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논법은 틀린 것이다.
'햇볕 정책'이란 말 속에는 북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북한에서 이 말에 반감을 보이는 것이다. 햇볕 정책이 북한의 문제점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판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문제점의 구체적 성격을 따져, 외투 벗기기가 아니라 모자 벗기기에 목적을 두어야 할 사안이라고 설득한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모자 벗기기라면 '햇볕 정책'보다 '폭풍 정책'이 더 효과적인 방안일 수 있으니까.
'폭력 국가'란 것이 이영훈의 표현으로는 "원자화된 개인을 직접 지배하는" 체제이며 "그런 국가에 외부로부터 우호적인 지원이 들어갈 때 어떠한 방향으로 변할 것인지는 기존 지배층의 이해관계가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쉽게 이해가 가는 얘기다. 그런 폭력 국가라면 우리도 20년 전까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원자화된 개인이 직접 체제의 지배를 받던 군사독재 시절, 독재를 극도로 미워하던 사람들은 누구든 외부 세력이 우리 체제를 때려 부숴 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체제의 악랄함에 대한 극단적 반발심일 뿐, 대다수 국민은 점진적 개혁을 원했고, 그것을 이뤄냈다. 사회 기반 조건의 변화에 아랑곳없이 권력에 집착하던 '기존 지배층'은 내부 모순으로 무너졌다.
6자 회담의 진행을 보더라도 한국의 햇볕 정책은 북한의 연착륙에 큰 도움이 되어온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이유 없이 햇볕 정책을 비판 정도가 아니라 비난하고 나서는 것은 북한의 연착륙이 아니라 파멸을 바라는 속셈이 아닌가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우둔', '사악' 같은 극단적 표현을 남발하는 데서 이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그리고 뉴라이트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과의 관련성으로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이다.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경제를 놓고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
1987년 민주화로 독재시대의 '기존 지배층'이 정말 무너졌던가? 엄밀히 말하면 '지배 구조'가 무너진 것이다. 상징적인 몇 사람이 퇴출되었을 뿐, 계층으로서의 '지배층'은 거의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다.
'87년 체제'는 '벨벳 혁명'의 꿈을 담은 길이다. 그 길을 연 혁명 주체는 정치적으로 중도적이고 경제적으로 중산층에 속하는 '시민' 계층이었다. 정치적 지향성이 약한 이 계층이 주체로 나선 것은 기존 군사독재가 사회 기반 조건의 발전에 너무나 뒤쳐져 겉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량주의 성향의 이 계층이 바란 것은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변화 과정이었다.
20년간 계속된 87년 체제 속에서 바로 그런 과정이 일어나 왔다. 이런저런 곡절이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좋은 변화가 참 많았다. 차분한 마음으로 21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권위주의 해소와 남북 간 긴장 완화 등, 어떤 과격한 혁명으로도 이루기 힘든 성취들이 그 동안 꾸준히 쌓여왔음을 생각하게 된다.
1987년 이후 10년간은 독재시대의 기존 지배층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이 (다른 이름을 쓸 때도 있었지만) 정권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나라당은 1987년에 드러난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한 대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동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 결과 1997년 이후 10년간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반 한나라당 세력이 정권을 담당하게 되었다.
2007년의 대통령선거는 벨벳 혁명의 허점을 드러낸 하나의 안티클라이맥스였다.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경제 살리기' 같은 허구의 과제가 핵심 이슈가 된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가 죽었나? 죽어가고 있었나? 그만하면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경제를 놓고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 정작 요긴한 과제들이 도외시되고 말았다.
벨벳 혁명의 '허점'이라 함은 현실 정치에 작용할 수 있는 특정 집단의 조직력에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독재시대의 기존 지배층은 반대 세력을 압도하는 조직력과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 현실 상황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입지를 축소시킨다. 이 흐름을 뒤집기 위해 그들은 집요한 노력으로 경제 이슈화에 성공,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반칙을 유도하기 위한 고의적 더티플레이가 아닌가?"
집요한 선전 활동이 시대의 흐름을 잠깐 가릴지는 몰라도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잠깐 가리는 데만 해도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이 비용의 단적인 예가 조중동의 위신 추락이다. 벅찬 목표를 따라가기 바쁘다 보니 예전처럼 은근히 풍기는 정도로는 약발이 충분치 않아 원색적 나팔질과 노골적 말 바꾸기를 일삼다가 꼴이 말씀 아니게 됐다.
촛불 사태는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는 이명박 정부의 반동적 역류가 일으킨 풍파다. 이제 선전 활동 정도로 국민의 이목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 왔다. 방송 장악에 목을 매고 있지만, 장악에 성공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권력을 정신없이 휘두르는 양상은 집권세력의 대응책이 얼마나 빈약한지 보여줄 뿐이다.
미국 쇠고기 정도 사안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것을 그들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쩌나? 쇠고기보다 더한 폭탄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데. 교육과 의료의 시장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등등….
국민들의 눈에서 시대의 흐름을 오랫동안 가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이 시도할 일은 한 가지다. 시대의 흐름을 진짜로 뒤집어놓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의 절박함만으로는 평화와 민주적 가치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한반도의 긴장을 최대한 격화시켜 놓아야만 독재시대 억압 체제의 복원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쓰다가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면 너무 비현실적인 '음모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어쩌랴, 워낙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려면 비현실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것을.
내가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전임 대통령들이 서명한 남북 간 조약들을 이명박 정부가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조약 내용 중에 국익을 위해 도저히 승계할 수가 없는 것이 있다면 재협상이든 추가 협상이든 요구할 일 아닌가. 뉴라이트 일각의 주장처럼 북한을 아예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조약 파기를 선언할 일 아닌가. 취임 반년이 넘도록 조약 내용을 준수할 뜻조차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반칙을 유도하기 위한 고의적 더티플레이가 아니면 무엇인가?
사장이 바뀐다 해서 법인체 회사가 맺은 계약을 무효로 돌릴 수 있는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은 온 나라가 들끓는데도 국제 신인도를 핑계삼아 미적거리더니, 강한 상대에게 굽실거리고 약한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신인도 올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긴장 지속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의 정부가 맞는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 등 '악의 축'을 이용해 가공의 긴장 상태를 일으킴으로써 군사 정책을 편의적으로 활용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대외 신인도는 크게 훼손되었다. 클린턴도 탄핵 위험이 절박한 상황에서 이라크 공습을 재개해 군사 정책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지탄을 받은 일이 있지만, 부시가 벌인 짓에 비하면 약과 중의 약과다. 10년 전에 비해 미국의 '깡패국가(rogue state)' 이미지는 매우 선명해졌다.
그런 부시 행정부도 설거지 단계에 접어들어서는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 상식을 많이 되찾고 있다. 6자 회담 참가국 중 미국과 함께 가장 북한에게 편협한 태도를 보이던 일본도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모두가 긴장 완화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홀로 경직된 태도를 지키고 있다. 긴장 지속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의 정부가 맞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뉴라이트가 남북 관계의 긴장 상태의 지속 내지 격화를 바라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펴는 미국이 세계의 군사적 긴장을 키우는 군사 정책을 취한 것과 똑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일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빈부 격차를 늘려 제로섬게임의 한계를 최대한 확장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를 위해 정치-사회적 자유를 제한하는 경향을 가진 것이다.
미국이 이런 소모적 정책을 택한 것은 파탄의 순간까지 강자의 입장에서 단물을 뽑아먹을 수 있는 이점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약자의 입장에 가깝고 긴장 완화의 과제를 가지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부적절한 정책이다.
그런 부적절한 정책을 '경제 살리기'라고 다수 유권자가 밀어주었으니, 경제는 살리든지 죽이든지 맘대로 하시라. 환율 시장 개입, 몰상식하게 해도 괜찮다. 시장화도 좋고 민영화도 좋고 대운하도 좋다. 그러나 제발 대북관계만은 근시안적인 장삿속으로 망쳐놓지 말기를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안병직은 김 전 대통령을 우둔하고도 사악한 인물로 본다고 한다. 나는 안병직이 우둔하고도 사악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 달라고 그가 아무리 조르더라도, 우둔과 사악을 한 사람이 겸비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내 믿음은 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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