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⑪
기사입력 2008-09-12 오전 8:43:42
2006년 2월 나온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재인식>)에는 두 가지 면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폭넓고도 격렬한 비판을 받은 것은 그 정치성이다. "편집위원들을 대신해" 머리말을 쓴 박지향은 출간 전부터 이 문제를 겪었다고 말한다.
"한데 출간 과정에서 두 차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이 모든 작업을 함께했던 출판사가 아무런 구체적인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더 이상 작업을 함께할 수 없다고 통고해온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서로 다른 두 출판사가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이 작업은 어디까지나 우리 학계의 학문적 발전을 위한 것이고 어떤 정치적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누누이 설명하고 계약을 맺었던 우리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물론 그 동안 일부 언론이 이 책의 내용을 지레짐작해서 이리저리 기사를 써온 것은 사실이지만, 편집위원들은 이 책이 그 어떤 현실 정치적 함의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혔기 때문에 출판사들의 태도는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재인식 1>, 12~13쪽)
내가 보고 있는 이 책은 출간 17일 만에 나온 4쇄본이다. 학술 논문집으로 이례적 수준의 매출을 기록한 데는 이 책의 '현실 정치적 함의', 또는 그에 대한 기대감 외에 다른 이유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논문을 실은 필자들 중에는 편집진이 표방한 '학문적 발전'이란 목적을 곧이들은 이들도 있겠지만, 편집진(박지향, 김철, 김일영, 이영훈) 중 적어도 박과 이 두 사람은 현실 정치적 함의를 명백히 지향한 것으로 나는 본다.
"빈약한 비전과 과잉된 정치성으로 빚어진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정치적 비판에 비해 좁은 범위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더 의미 깊은 비판으로 내가 보는 것은 학술적 가치 문제다.
박지향은 <월간중앙> 2006년 3월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해전사>의 역사 인식이 놓치고 있는 다른 수많은 연구 성과를 보여 주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재인식>은 <해전사>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승화이고 극복이다." 20년 전에 나온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을 뛰어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재인식>에 실린 논문의 일부만을 읽어보았지만, 실제로 <인식> 다음 단계를 바라보는 좋은 연구가 여러 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재인식>은 이런 좋은 연구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현실정치적 함의'가 엿보이면서 학문적 수준이 처지는 논문들과 함께 묶어놓은 것이 제일 큰 문제다. 이것은 편집진의 책임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편집진의 잘못은 모자란 면과 지나친 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모자란 면은 학문의 앞날을 바라보는 비전이 빈약한 것이고, 지나친 면은 (일부일지 모르지만) 편집진의 현실 정치와 관련된 의욕이 책의 성격을 너무 강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비전의 빈약함에 대해서는 내가 왈가왈부하기보다 <재인식>과 같은 해에 비슷한 크기로 비슷한 범위의 연구들을 담아 나온 <근대를 다시 읽는다>와 비교해 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는 데 그치고, 이 글에서는 과잉된 정치성만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겠다.
이 목적에 마침 적합한 재료가 이영훈의 <대한민국 이야기>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강의>란 부제처럼 <재인식> 편집진의 한 사람이 <재인식> 내용을 라디오 시청자들에게 소개한 강의노트에서 출발한, 말하자면 <재인식> 안내서로 내놓은 것이다. 안내자의 자세에서 편집자의 자세를 비쳐볼 수 있는 면이 있을 것이다.
"조관자의 논문은 이영훈의 설명과 전연 다른 것이었다"
<재인식 1>에 실린 조관자(일본 주부대학)의 논문 '민족의 힘을 욕망한 친일 내셔널리스트 이광수'와 관련해 이영훈은 이렇게 썼다. 지루하겠지만 조금 길게 인용한다.
"그가 협력자로 돌아선 것은 적어도 개인적인 영달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흔히들 친일파라 하면 그렇게 알고 있지만, 조관자의 논문은 그러한 통설적 이해를 정중히 거부합니다. 오히려 이광수는 진지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름 아니라 일본을 조선이 본받아야 할 선진 문명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선의 불결, 무질서, 비겁, 무기력 등에 절망합니다. 그러한 야만의 조선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일본인처럼 깨끗하고 질서 있고 용감하며 협동하는 문명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이야말로 조선 민족이 재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서 그는 정직하였습니다. 조관자 교수는 그러한 정신세계의 이광수를 '친일 내셔널리스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친일을 하는 민족주의자! 이 얼마나 모순된 표현입니까. 그러나 저는 그러한 모순된 표현에서 이광수만이 아니라 식민지기를 살았던 대다수 지식인의 정신세계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서 협력과 저항은 신구 두 문명이 격렬히 충돌하는 고통이었으며, 그 속에서 문명인으로 소생하기 위한 실존적 선택의 몸부림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이야기>, 104~105쪽)
조관자의 논문을 아직 읽기 전에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광수를 이런 각도에서 바라보는 데 학술연구까지 필요한 것일까,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관자의 논문을 얼른 읽어보니, 이영훈의 설명과 전연 다른 것이었다. 이영훈의 글에 나오는 이광수의 모습은 조관자의 논문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재인식>에 실린 좋은 논문들, 너무 아깝다"
이영훈은 '친일 내셔널리스트'란 말을 놓고 "이 얼마나 모순된 표현입니까." 하고 경탄하는데, 이것은 조관자가 아무 모순도 없이 명쾌하게 내놓은 개념이다. 조관자가 말한 '친일 내셔널리즘'이란 "일본 내셔널리즘의 폭력적인 전개에 의해 전도된 식민지 내셔널리즘의 한 형태"였으며, "조선인이 제국 일본의 '주체=신민'이 되는 내셔널리즘의 한 형태"였다.
민족주의에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두 개의 얼굴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질서의 얼굴과 폭력의 얼굴이다. 나는 민족주의의 폭력성을 싫어하지만,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는 카오스를 피할 필요를 더 절실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조관자는 폭력성에 나보다 예민한 분으로 보인다. 내셔널리즘에 대한 그의 고찰은 그 "권력 운동의 근본 문제"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내셔널리즘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병리적 현상이며, 친일 내셔널리즘은 그 병리성이 이중으로 겹쳐져 나타나는 것이라고 그는 본다. "민족을 위한 친일"이라는 친일 내셔널리즘은 파탄을 피할 수 없는 사상누각이라고 그는 보는 것이며, 이 논문은 그 파탄을 확인하는 것이다.
조관자의 논문에서 중요한 몇몇 대목을 인용한다. 이런 발췌는 필자의 진의를 전하는 데 물론 한계가 있는 것이지만, 이영훈의 왜곡을 분명히 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원 논문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시쳇말로 '개념 있는' 논문이다.
"'내선일체에 대응한 '동조동근'의 혈통과 역사적 전통을 창출하며, 조선인이 제국 일본의 '주체=신민'이 되는 내셔널리즘의 한 형태를 정립하려 했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것을 '친일 내셔널리즘'이라 부르고, 최남선과 더불어 그 대표적인 이데올로그였던 이광수의 논설을 통해 '민족을 위한 친일'이 형성되고 파탄되는 지점을 추적하려고 한다."
"민족 사학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이른바 민족 개량주의의 근대화론자들이 일제의 민족 분열 정책에 이용되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들은 근대 문명 국가를 욕망하는 '주체'로서 스스로를 정립하였기 때문에 일제와 타협하는 생존의 길을 걸은 것이다."
"그러나 닫힌 공간의 균일성은 가상된 것에 불과하며, '주체=전체'의 복합적 내셔널리티를 의미하는 '내선일체'는 그 공평성이 결코 실현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파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적극적인 친일이 단순히 민족주의 운동을 포기한 결과가 아니며 식민지 자본주의가 생존하기 위한 전진적인 투항이라고 예견한다. 종속적인 자본주의의 발전을 우선시하여 독립의 목표를 상실한 것은 확실히 패배적인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친일 내셔널리즘의 자본과 권력 운동이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귀결이다."
"'조선심'을 사멸하는 것이 '일심일체'인 상황에서 일본의 '형제'들에게 '조선인의 마음'에 호소해 달라고 하는 역설. 생존의 이익을 도모하는 친일 내셔널리즘의 힘에 대한 욕망을 숨기고 가상된 동포애의 집단 도취적인 희생을 찬미하는 파시즘의 낭만적 수사다. 차별과 억압을 원망하는 조선인, 차별과 억압의 이익을 지키고 싶은 일본인, 길항하는 두 마음을 의식하면서 이광수는 '깨끗한 일본 혼'의 대사를 읊고 '천황의 적자'를 연기한 것이다."
"이광수는 미군정이 친일 내셔널리즘을 배제하지 않고 반공주의 국가를 준비하는 것에 안도한다. 미국을 적대시하던 '친일'에서 '친미'로 돌변한 모습을 보고 그를 '변절의 천재'인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다. 적어도 이광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기의 신념에 충실했다. 강자의 문명과 패권을 욕망하는 '친일 내셔널리즘'이 '민족주의적'인가, '친일적'인가, '친미적'인가 하는 문제는 상황 변수에 불과하다."
"생존이 위협당하는 곳에서는 강자도 약자도 살아남기 위한 힘을 욕망한다. 역사적 현실 속에서 위기의식이 크면 클수록 힘에 대한 욕망도 커지고 배타적인 절대 권력의 탄생을 바라게 된다. 절대 권력은 체제 안의 균열을 억압하는 정치 신학을 구축한다. 모든 권력 주체들이 '민족주의'를 선망하는 것은 그것이 '피와 혼'의 논리로써 '우리'라는 자연의 귀소, '원초적 합의'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수의 전향도 '문명에의 귀의'로 해석하고 싶은 욕심"
이영훈은 조관자의 논문을 설명하면서 이광수가 진지하고 정직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조관자의 논문에서 이광수의 진지함은 집요함이었고, 정직함은 어리석음이었다. 전향 전에도 전향 후에도 이광수의 내셔널리즘은 힘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 욕망에 눈이 가려 반일 내셔널리즘보다도 더욱 뚜렷할 수밖에 없는 친일 내셔널리즘의 모순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그의 지성이 허약했다는 사실, 반일, 친일, 친미의 어느 상황 변수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신념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이 논문은 보여준다.
이영훈은 또 이광수의 전향 이유를 "일본을 조선이 본받아야 할 선진 문명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조관자는 전연 다른 의견이다. 이광수가 2차 유학기(1915~1919)에 <매일신보>에 실은 글에서 "조선의 신사조차도 지식과 인격을 결여한 어린이로 비칠 것"을 상상하며 부끄러워한 것에 대해 "그를 비롯한 도쿄 유학생 출신들이 문명 콤플렉스 때문에 주체성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밝혀 말했다. 이광수의 진심이 어떠했든, 이 논문에서 조관자가 이해한 각도는 이영훈의 설명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영훈이 문명을 자본주의 문명으로만 본다는 것은 앞서 여러 번 지적한 문제거니와, 이광수의 전향도 '문명에의 귀의'로 해석하고 싶은 그의 욕심은 이해 못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편집한 책에 게재한 논문의 내용을 이렇게 뒤집어서 설명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이기를 바랄 뿐이다. 조관자가 부정적으로 본 친일 내셔널리즘을 이영훈이 다분히 긍정적인 개념처럼 내놓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2중 부정은 긍정이라 생각한 것일까?
반일, 친일, 친미가 모두 '상황 변수'일 뿐이라고 조관자가 말하는 것은 "강자의 문명과 패권을 욕망하는" 이광수의 빈약한 정신세계를 꼬집은 것이다. 그러나 물질세계에서만 가치를 찾는 이영훈은 바로 이 '상황 변수'에만 매달린다. 당시의 상황 변수에 투철했던 '친일 내셔널리즘'을 바람직한 모델로 보며 지금의 상황 변수에 투철한 '친미 내셔널리즘'을 추구하는 그에게는 "강자의 문명과 패권을 욕망하는" 이광수가 바로 선구자일 것이다. 이광수에 관한 논문을 <재인식>에 실으려면 조관자에게 맡기지 말고 자기가 썼어야 했다.
"편집자의 책임과 권한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가?"
조관자 논문처럼 정면으로 뒤집는 것은 아니라도, 같은 책에 실린 최경희(미국 시카고대학)의 '친일 문학의 또 다른 층위 : 젠더와 야국초'에 관한 설명에서도 이영훈의 아전인수 욕구가 눈에 띈다. 이런 대목이다.
"어머니가 그 아들을 비열하고 무책임한 조선의 사생아가 아니라 정직하고 책임 있는 제국의 아들로 바치고자 하는 뜻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배신한 조선의 남자에게 복수하는 겁니다." (<대한민국 이야기>, 106쪽)
이영훈의 왜곡을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독자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 다만, 최경희의 논문이 훌륭한 비평 논문이며, '나쁜 조선'과 '좋은 제국'을 대비시킨 대목이 없으며, '복수'의 의미를 "조선의 남자"에 대한 것보다 훨씬 폭넓게 추궁한 연구라는 내 의견만을 밝히고 지나가겠다.
<대한민국 이야기> 머리말에서 이영훈은 출판 전에 원고를 <재인식> 공동편집위원이던 김철과 박지향에게 보였다고 한다. 박지향의 학문 수준이나 정치 성향에 대해서는 그의 글을 통해 얼마간 판단할 수 있었지만, 김철이 그 원고를 보고도 자신이 편집에 참여한 책에 대한 그토록 심한 왜곡을 용납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김철 교수도 원고를 읽어 주었는데, 그의 충고에 따라 이 책의 제1장을 거의 다시 썼다"(앞의 책, 8~9쪽)고 이영훈이 말한 데서 김철의 이의 제기가 얼마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온 책 내용에 대해서는 김철도 승인했다는 이야기다.
<근대를 다시 읽는다> 편집위원들의 머리말에도 이런 말이 있다. "<재인식>에 논문을 낸 분들 가운데에는 편집진의 생각이나 역사관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여러분이 억울하게 쓰게 된 '보수우익'이라는 누명에 분노와 당황스러움을 표명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재인식>의 일부 논문을 볼 때, 편집진 전체는 몰라도 이영훈이나 박지향의 생각이나 역사관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인식'을 가지고 게재를 응낙한 것인지 몰라도, <재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누리는 평판 앞에 분노와 당황을 느낀다는 것은 딱한 일이다. 게다가 편집진 중 한 사람이 <대한민국 이야기> 식으로 왜곡해서 내놓는 것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짓이다. 게재료를 줬으면 그 논문들이 편집자의 '사유재산'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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