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한 선생이랑 알고 지낸 지 4년째다. 그 친구랑 사제관계로 엮이지 않고 동학(同學)으로 지내게 된 것이 내게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저 하고 싶은 대로 공부하는 모습을 구경만 할 뿐, 책임감을 느낄 일이 없으니 얼마나 편하고 재미나는 일인가.
내가 늘 글을 싣는 <프레시안>에 그의 연재가 올라올 때 눈에 띄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LA 체류 중이던 그와 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내 글을 많이 참조한다는 자백은 예상한 것이었지만, 내가 학위를 받은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같은 전공분야로 논문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 책에 담긴 그의 글에서 여러 가지 좋은 가치를 많이 찾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만고의 진리에 따라, 이 선생과 내가 공유하는 관점을 독자들께 설명 드리겠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말이 널리 퍼진 것이 내가 아직 학교에 있던 1980년대의 일이었다. 그때 내가 사이드의 글에 큰 공감과 함께 더 깊은 문제의식을 느낀 것은 동양의 학인으로서 문명사 공부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양인의 생각 내용만이 아니라 생각 방식까지도 서양의 틀에 포섭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1990년 학교를 떠난 후 혼자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하나의 세계관을 떠올리게 되었다. 문명 발생 이래 인간사회에서 각양각색의 가치기준과 조직방법이 나타나 왔지만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줄곧 지켜져 온 어떤 범위의 원리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세계는 이 원리 중 많은 것이 어긋나는 특이한 현상을 펼쳤고, 그 결과 오늘날의 세상에 많은 모순이 일어나게 된 것이라고 보게 되었다.
이 관점으로 인해 ‘근대성’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고, 근년 한국근현대사를 이 관점에 따라 새로 정리하는 작업을 해온 것은 그 문제의 전개 현장 확인을 위해서였다. <망국의 역사>, <해방일기>, <냉전 이후>가 그 작업으로 나온 책들이다.
그 작업 진행 중에 이병한 선생과 마주쳤는데, 근대성이 우리의 세계 인식에 가해 온 제약을 중시한다는 점이 내 관점과 겹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관점에 이르기까지 더듬어 온 공부의 길이 나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에서 그 관점의 타당성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키울 수 있었다. 나는 중국고전 연구에서 출발해 문명사 검토를 거쳐 근대성 문제에 도달했는데, 그는 사회과학에서 출발해 현대사 연구를 통해 비슷한 문제의식에 이른 것이었다.
근대성의 반성을 중시하는 이 관점이 환경과 자원 문제에서 인구 구조, 부(富)의 편중, 국제적 긴장에 이르기까지 현대세계의 많은 문제를 서로 관련시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근대적 학문은 계몽적 가치관과 과학적 연구방법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이런 관점에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를 아직도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패러다임 이론으로 보자면 전환(shift)의 필요성이 정상상태(normal state)의 관성에 묶여있는 것이다.
근대의 덫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이 여러 방향에서 떠오르고 있다. 서양에서도 세계체제론을 비롯한 근대성의 검토가 활기를 더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전통의 재해석으로부터 담론의 새로운 틀이 빚어져 나오고 있다. 이 방향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빚어내는 것이 세계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나는 이 관점을 한국근현대사의 흐름에 비추어보았다. 이병한 선생은 시야를 넓혀서 동아시아현대사, 나아가 유라시아 역사에 적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책상머리에서 문헌에만 의지해 온 것과 달리, 그는 관심 가진 지역에 한두 해씩 체류하며 온몸으로 공부를 쌓아가고 있다. 일본, 중국, 미국, 베트남을 거쳐 지금은 인도에 있고, 앞으로 몇 해 유학(留學 아닌 遊學)을 더 계속하겠다고 한다.
한편으로 후생가외(後生可畏)를 절감하면서 한편으로 이 선생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 그는 물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지만, 그중의 많은 부분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하는 일과 공부의 내용을 알게 된 후 내가 마음속으로 해야겠다고 여기던 일을 “아, 이런 건 그 친구가 해줄 거니까,” 하는 생각으로 접을 수 있는 것이 꽤 있었다. 내 인생을 편하게 만들어준 분이다.
이제 그의 첫 책을 반갑게 받아본다. 연재로 본 글이라도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을 보는 맛은 다르다. 그리고 이 책에는 연재 글이 많이 다듬어져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책도 계속 나올 것을 기대하지만, 이병한 선생의 성장을 그 출발부터 살펴볼 것을 독자들께 권한다. 즐겁고도 보람 있는 글 읽기가 될 것이다.
'사는 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근성-박인규-강양구, 세 분에 감사 (2) | 2016.05.30 |
---|---|
책방 이음(동숭동) (1) | 2016.05.11 |
다시 찾은 제주도 (0) | 2016.02.07 |
동네바둑 / 동네소설 (5) | 2016.01.06 |
안경이여, 안녕! (4) | 2016.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