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 년 전 조선왕조가 망하고 한반도가 식민지가 된 일을 일본의 야욕과 몇몇 매국노의 탓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술 취한 사람이 퍽치기를 당하듯, 임금 이하 당로자(當路者)들이 무능하여 막지 못한 결과로 생각한다. 정신만 바로 차리고 구국의 노력을 제대로 기울였다면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로부터 약 40년 후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았을 때 민족국가 건설에 실패해 내전을 겪은 일을 놓고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립의 좋은 기회를 맞고도 한국인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참혹한 결과를 맞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바둑에서 묘수 세 번 쓰면 진다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묘수(妙手)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는 결정적인 한 수다. 그런 수를 쓸 필요가 세 번이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포석(布石)이 잘못되어 있는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판세가 유리할 때 고수들은 묘수가 보여도 굳이 쓰지 않는다. 무난한 수순으로 판을 닦아버린다.

한국인은 개항기 이래 묘수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너무나 오랫동안 거듭거듭 겪어오고 있다. 내전을 겪은 뒤에도 수십 년의 군사독재가 있었고, 군사독재를 벗어난 지 다시 수십 년 동안은 자본독재가 심화되어 왔다. 비상한 노력과 가열찬 투쟁의 필요를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상황이 1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면, 묘수 찾기보다 포석의 문제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떤 역사적 사실의 해석에도 내인론과 외인론의 두 측면이 있다. 두 측면 중 어느 하나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한국현대사의 굴곡을 살핌에 있어서 외인론을 앞세울 필요를 강하게 느낀다. 묘수를 못 찾은 데가 아니라 포석이 잘못된 데서 판세가 불리한 이유를 보기 때문이다. 포석의 문제점 파악과 큰 흐름의 이해 없이 짜내는 묘수로는 부분적인 이득을 얻더라도 전체 판세를 뒤집는 효과를 바라기 힘들다.

외국군의 국내 주둔은 국가 기능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징표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나라 군대가 진주한 이래 이 징표가 134년째 계속되고 있다. 청나라, 일본, 소련, 미국 군대가 꼬리를 물고 한반도에 주둔한 상황을 각각 이해하려 애쓰기에 앞서 그 긴 세월 동안 이 땅이 외국군 주둔을 계속해서 허용한 전체적 사정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 고찰에 내가 공헌하려는 방향은 시각을 넓히는 길이다. 한국사 연구자들은 대개 시간적-공간적 조건에 구속을 받는다. 동서교섭사를 공부해 온 나로서 문제의 상황이 문명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살핌으로써 시간적 조건을 확장하고 비슷한 시기의 다른 사회들이 겪은 상황과 비교함으로써 공간적 조건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근대화가 곧 침략이었다.

 

최초의 위기, 즉 망국의 위기를 분석해 보면 그 후 한 세기가 넘도록 한반도가 겪은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망국의 위기에는 (1) 왕조의 멸망, (2) 이민족 지배, (3) 문명 전통의 단절, 세 개 층위가 겹쳐져 있었다.

왕조의 멸망은 역사를 통해 이미 겪어본 적이 있는 일일 뿐 아니라 유교 정치철학으로도 뒷받침되는 일이다. 19세기 후반의 조선왕조는 외부의 특별한 위협이 없더라도 지속이 힘든 쇠퇴기에 와 있었다. 조선왕조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중국의 왕조들이 대개 2백 년 전후의 순환주기를 보여준 사실이 세밀하게 연구되어 있는데, 19세기의 조선은 말기적 증세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오히려 17세기 전반기에 왕조교체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비정상적 현상으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

이민족 지배는 이와 달리 민족국가 성립 후 1천 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가장 비슷한 예로 13~14세기 중 약 1백 년간 지속된 몽골 지배기를 들 수 있는데, 원나라 관리와 군대의 파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지배기보다 간섭기라는 말을 굳이 쓰기도 한다.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영향력은 20세기 전반 식민지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고, 20세기 후반 남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민족 지배와 나란히 나타난 현상이 전통의 단절이었다. ‘개화’, ‘문명화’, ‘근대화의 이름으로 전통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작업을 지배세력이 추진한 결과 1천 년 동안 민족국가의 형태로 꽤 원만하게 운영되어 온 사회질서의 원리가 약화되고 파괴되었다.

각 시기의 근대화 추진세력은 경제개발을 지상과제로 내걸고 이민족 지배도, 군사독재도, 자본독재도 정당화했다. 그 결과 남한의 경제개발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억압되어 국민 대다수가 불안과 고통을 겪는 상황에 빠져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개발이 미진하다고 여겨질 때는 모든 문제를 그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더 이상의 개발을 바라볼 수 없는 단계에서 20여 년을 지낸 지금은 경제개발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반성은 한국인만의 것도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체제론을 비롯해 근대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밝혀내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개발을 통한 근대화는 곧 자본주의체제 편입의 길이었다. 그 목표가 내포하고 있던 모순을 확인함으로써 한국사회의 문제점 중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말까지 한 세기 동안 개화 내지 근대화를 바람직한 과제로만 보는 풍조가 한반도를 휩쓸었다. 살아가는 방식,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을 모두 바꾸는 변화였다. 그 과정에서 모든 전통적 방식이 척결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근대화의 가장 뚜렷한 지표인 경제개발이 고비를 넘긴 이제야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돈을 통해서만 사람을 바라보는, 도덕성이 주변화된 세상에서는 백주 대낮에 수백 명 학생이 수장돼도 한낱 교통사고로 보는 시각이 횡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도덕성이 역사서술의 기준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했다. 개인의 도덕관은 그가 속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빚어지는 것이므로 일반화의 기준이 될 만한 객관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이 받아들이고 있던 유교정치의 원리는 도덕성의 일반화를 추구한 것이었다. 문명사회의 필수품인 도덕성을 제도 바깥의 기호품이나 사치품으로 만든 근대 자본주의체제가 인류문명에 위기를 불러온 것은 한국인에게만 제기된 문제도 아니다.

 

 

한국현대사 비극의 배경은 서세동점에 있었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 조선왕조의 멸망에 미련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민족 지배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극복되지 않고 있고, 전통의 단절 문제는 계속 심각해져 왔다.

일본인은 조선 지배를 쉽게 하기 위해 전통을 부정하고 물질만을 숭상하는 자본주의 정신을 들여오면서 이 정신을 따르는 집단을 친일파로 육성했다. 일본 통치 40년 동안 이 집단이 조선사회에서 재력과 학력을 독점한 중간권력으로 자라났고, 이 집단은 해방 후에도 남한에서 일본 대신 미국의 이해관계에 영합하면서 중간권력의 역할을 계속해 왔다. 자본주의 정신을 내면화함으로써 소속된 사회를 등지고 외세에 의존해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매판세력을 형성한 것이다. 그 결과 남한 사회에서 실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엘리트계층이 취약해진 것이니, 외세 의존과 전통 단절은 안팎으로 맺어진 문제가 된 것이다.

사익(私益)만 추구하는 무책임한 집단이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위치를 오랫동안 지키는 것은 도덕이니 정의니 들먹이기 전에 사회의 건강을 잃는 일이다. 개별 시민이 억울한 손해를 보고 위험을 겪는 것을 넘어, 사회의 유지 자체가 걱정스러운 일이다. 전쟁으로든 혁명으로든 사회가 무너지는 상황이 오면 당장 미국으로 도망갈 사람들이 지금 이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냉소하는 이들이 많다.

사회의 자정(自淨)기능에 결함이 있는 이 문제는 면역력결핍증과 비슷한 증세다. 모든 생명체가 끊임없이 흡수하는 외부의 물질 중에는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것도 있다. 그 위협으로부터 건강을 지켜내는 능력이 면역력이다. 외부 영향 속의 사회가 내재적 기본질서를 지켜 구성원들이 큰 위협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능력을 면역력에 비유할 수 있다.

면역력 부족으로 인한 가장 일반적인 증상은 가치관의 혼란이다. 가치체계는 사회질서의 뼈대다. 개항기 이후 전통적 가치체계가 해체되는 동안 근대문명의 가치체계가 제대로 이식되지 못했다. 근대적 가치관이 일부 들어왔지만 안정된 체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한반도 주민에게 많은 피해와 고통을 끼쳤다. 그런데 당시의 피해와 고통보다 더 큰 문제는 민족사회에 남겨진 병리적 현상이다. 문명사회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능, 구성원들을 지나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면서 사회 자체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정기능이 망가져버린 것이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반도 주민이 민족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대다수 주민이 일그러진 삶을 살고 있는 가장 기본적 이유다.

70년 전 일본 식민통치의 종식을 한국인들은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을 해방의 기회로 여겼다. 그리고 제대로 된 나라를 우선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분단건국과 내전, 그리고 군사독재와 자본독재를 겪어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희생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도 그 성과는 아직까지 미흡하다. 민족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실패의 가장 뚜렷한 징표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부족했으니 이제부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다짐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충분한 계획 없이 맹목적인 노력만으로는 어떤 사업도 성공할 수 없다. 피로(疲勞) 현상으로 지금까지의 노력을 유지하기조차 힘들게 될 수 있다. 실패의 원인을 냉철히 분석해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성공의 전망을 세워야 한다.

문명사 학도로서 나는 서세동점(西勢東漸)’ 현상을 민족사 실패의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19세기 중엽 이후 산업혁명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룬 유럽 열강의 군사력과 생산력은 전 세계를 석권했다. 높은 문명수준에 올라 있던 동아시아 지역까지 휩쓸어버렸다는 것이 그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에 서세동점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물결 앞에서 일본은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통해 유럽 열강의 꽁무니에 따라붙었고 중국은 한국 못지않은 고통과 치욕의 길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성공의 길을 걸었다는 일본인이 겪은 고통도 결국은 중국인이나 한국인에 못지않았다. 한국인만이 아니라 당시의 어느 동아시아인도 면할 길이 없던 압도적인 상황이었다.

 

 

망국(亡國)의 최종 단계는 자본독재!

 

공동체에 속한 개인은 공동체 전체를 위한 노력과 자기 개인을 위한 노력을 적당히 병행해야 최대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류공동체에 속한 민족이나 국가도 자체를 위한 노력과 세계 전체를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최대한의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한민족은 19세기 말 이래 한 세기 넘는 동안 자구(自救)의 노력에만 급급했지, 그 노력이 전체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갖는 의미를 새겨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냉전의 소용돌이에 대책 없이 휩쓸려 들어가고 베트남 인민에게 못할 짓을 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 경제개발의 고비를 넘기고도 여유 없는 자세가 관성으로 이어졌다. IMF사태를 겪은 것도, 최근의 자원외교로 엄청난 국부의 유출을 겪은 것도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지 못하고 목전의 이익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4대강사업으로 국토를 파괴한 것도, 북한과의 관계를 제대로 풀어오지 못한 것까지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도 남한 사회는 내부 문제에 골몰해 있다. 지금이라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 내부 문제와 외부 문제는 서로 얽혀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있는 입장을 어떻게 풀어갈 지부터 시작해서 세계 속의 우리 위치를 분명히 하는 노력이 국내의 온갖 갈등을 해소하고 극복하는 노력과 어울려야만 의미 있는 성과를 바라볼 수 있다. 국부적인 묘수를 찾기에 앞서 전체적인 판세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이익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단순한 욕심에는 한도가 있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느긋해지는 것이 사람의 자연스러운 성질이다. 그것은 문명사회의 진화 결과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분발할 줄 모르는 것도 적자생존에 어려운 조건이지만, 모든 구성원이 만족할 줄 모르고 분발만 하는 사회도 지탱하기 어렵다. 유구한 문명사를 통해 사람들이 적정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를 이룬 사회들이 우세한 자리를 차지해 왔을 것이다.

물질적 수요가 웬만큼 충족된 사람들이 느긋해하지 못하고 더 많은 부의 획득을 위해 이를 악무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자기 앞을 가려야 한다. 65세인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까. 5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구경하며 베팅하는 입장이라면 15년 정도에 걸겠지만, 직접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30년을 대비하지 않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글을 더 열심히 써야겠다.

자본주의체제는 원활한 운용을 위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사회안전망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모든 공동체의 결속력을 해체해야 한다. 파편화된 개인이 두려움에 쫓겨 이익의 집착에 휘둘려야 노동력 공급이 극대화되고 자본의 우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일본 식민통치자들이 조선 통치를 쉽게 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들여온 것이 이런 자본주의 원리였다. 이것이 이른바 친일파의 제1특성이 되었다. 일본 통치가 끝난 뒤에도 이 특성을 가진 집단은 다른 외세의 이용 대상이 되었고, 외세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상황이 계속된 남한에서는 이 집단이 더욱 확장되어 사회 전체가 이 특성에 물들면서 물들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남한의 경제개발이 완성 단계에 이른 1980년대에 미국에서는 자본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에 앞세우는 신자유주의 노선이 득세했다. 이를 계기로 남한의 매판세력은 친일파, 친미파의 뒤를 잇는 친자파(親資派)’의 단계로 접어든다. 일본, 미국 같은 국가가 아니라 자본 세력이 체제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 시기에 이뤄진 남한의 민주화를 군사독재에서 자본독재로의 전환점으로 이용하려는 자본 세력의 집요한 노력은 1997년의 ‘IMF 사태를 계기로 결정적 성과를 거두었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어느 대통령의 탄식은 자본독재의 완성을 설파한 것이다. 이제 민족문제조차 자본논리에 종속되기에 이른 상황을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의 발언이 보여준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잡히고 있다.

 

지난 6년간 <망국의 역사>, <해방일기>, <냉전 이후> 작업을 통해 한국현대사의 몇 개 단면을 살펴보면서 난마가 얽힌 듯한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를 관통하는 중심축의 정체를 나름대로 확인했다. ‘자본주의 정신이다. 일본 식민통치를 위해 친일파를 숙주삼아 도입된 이 정신이 근대화의 이름으로 전통질서의 파괴에 이용되었다.

미국이 일본에 이어 자본주의 정신을 한국 통제의 매체로 활용하면서 남한에 자본주의체제가 굳건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의 직접 개입 없이도 독재정권이 열성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하게 되고, 자본주의 정신이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자생적 자본 세력이 외부 자본 세력에 합세해 정부와 언론을 장악하고 자본독재체제를 구축하면서 세계정세 변화에 역행해 북한과의 대립을 격화시키고 있다.

자본주의 정신이 일본 식민통치자들의 손으로 도입된 이래 지금 남한에서 강고한 자본주의체제가 버티고 있게 되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만만찮은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서세동점의 세계적 상황이 그 저항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서양 열강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생산력이 동아시아 전통질서를 사정없이 유린하던 개항기 상황이 20세기 말까지 계속된 것이다.

21세기 들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1970년대 이래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여러 방면에서의 지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 지적 중 지금 단계에서 가장 부각되고 있는 것은 경제 측면의 고찰을 담은 세계체제론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세계를 지배한 자본주의체제가 더 이상 큰 힘을 쓸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갈수록 많은 연구자들이 치밀하게 논증하고 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국 부상(浮上)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다. 개혁개방 정책 초기에는 중국도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신흥산업국(NICs) 대열에 끼어드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초기의 신자유주의 노선은 일시적 방편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사회주의 노선의 특성을 지켜 온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금은 커지고 있다.

중국의 변화에서 서세동점 현상의 해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징표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주장하는 화평발전이니 소프트파워니 하는 말들이 날이 갈수록 종래의 패권주의와 다른 실질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의 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과정에서 그런 해석이 더욱 강화되었다. 국가 간 경쟁 위주의 근대적 국제질서와 다른, 협력 위주의 천하체제를 중국이 지향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서세동점 현상의 주축은 자본주의체제의 확장에 있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확고해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금융위기가 나란히 진행되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체제의 한계가 확인되고 있다는 관점이 그리 섣부른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이 관점을 뒷받침하는 연구와 고찰이 중국에서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서세동점 현상의 해소를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세동점 현상의 해소! 개항기 이래 150년 동안 한국현대사를 질곡 속에 묶어놓고 있던 국제정세의 굴레가 벗겨진다는 말이 아닌가! 한국인이 이민족 지배를 받게 하고 전통질서를 잃어버리게 한 그 국제정세 때문에 민족국가를 복원하려는 얼마나 많은 선현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인가.

고수의 바둑에서는 평정심(平靜心)을 중히 여긴다. 판세에 대한 비관도 낙관도 좋은 바둑을 두지 못하게 한다. 숨 쉬는 것,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자세를 지킬 때 기량을 아쉬움 없이 펼칠 수 있다고 한다.

현대사의 온갖 굴곡을 생각할 때 한국인은 평정심을 갖기 어렵다. 한 세기 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겪은 온갖 좌절을 떠올릴 때마다 비통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다.

그러나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사람 사는 이치를 밑바닥부터 정리해볼 때다. 이웃을 대하는 태도, 국가와 민족을 대하는 태도, 인류사회를 대하는 태도, 자연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돌이켜볼 때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하든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을 떨치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열심히 궁리할 때다. 그리고 조급함 없이 대범한 자세로 실천하러 나설 때다.

서세동점 현상이 해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웃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자본주의 이후>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사회들이 복원해야 할 전통질서의 모습을 정리하기 위해 이지(李贄, 卓吾, 1527-1602) 저술의 검토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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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