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하도서관에서 '명사의 서재'를 운영한다. 자유열람실 중앙의 서가 몇 개에 초청 명사가 추천하는 책을 한 달 동안 전시하는 행사다.

 

10월 초에 연락이 왔다. 11월의 명사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명사'란 말이 좀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내 식으로 뜻을 해석하고 응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왕 전시를 한다면 내 생각을 보는 이들에게 잘 전하기 위해 좀 공을 들일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좀 여유있게 일정을 잡아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12월의 명사가 되기로 했다.

 

몇 개 그룹의 책을 추천하고 그룹마다 간단한 설명을 붙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1. 내 저서 모두와 역서 일부.

 

2. 한국현대사 관계서적은 서중석-정병준 두 분 저서에 집중했다. 두 분 저서가 내게 길잡이 노릇을 잘해준 것으로 볼 때 누구에게라도 길잡이 노릇을 잘할 것으로 생각해서다.

 

3. <냉전 이후> 참고서적.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골랐다.

 

4. 문명사 관계서적. 중요한 책 가리고 말고 할 것 없이 지금 책상 부근에 있는 책들을 무작위 표본으로 내놓았다.

 

각 그룹의 설명과 목록을 밑에 붙인다.

 

 

 

 

반갑습니다.

 

명사(名士)’라면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사람이겠죠. 그런데 김기협명사(名士)’가 못 되고 하나의 명사(名詞)'일 뿐입니다. 명사(名詞)에는 설명이 필요하죠. 요즘 내가 내는 책 앞날개에 이런 설명을 올립니다.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으로 물리학과에 입학한 뒤, 사학과로 전과한 보기 드문 배경의 역사학자다. 문명사의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역사와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역사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경북대학교에서 중국 고대 천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마테오 리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집위원, 중앙일보 문화전문위원과 한국과학사학회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둘러보는 분들께 내 서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으나 몽땅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려면 제1열람실이라도 빌려야 할 테니까요. 사실 나도 어떤 책이 어느 구석에 있는지 잘 모르는 게 태반입니다. 책상 곁의 가까운 책장에 모셔놓은 책만 보여드려, 이 사람이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쉽게 알아보도록 해드리고 싶습니다.

몇 개 그룹의 책이 있습니다. 하나는 최근 6년간 집중해 온 한국현대사 방면의 책들, 또 하나는 금년에 진행 중인 남북관계 작업에 참고하는 책들, 그리고 또 하나는 내 원래의 공부인 문명사의 흐름에 관한 책들입니다. 각각의 그룹에는 따로따로 간단한 설명을 붙일 것이고, 여기서는 우선 내가 쓴 책과 옮긴 책 몇 가지를 설명합니다.

책을 쓰기 시작한 지는 7년밖에 안 됩니다. 그 전에 나온 <미국인의 짐>이 하나 있는데, 책을 내려고 쓴 게 아니라 몇 해 동안 신문에 쓴 글을 모아서 낸 거예요. 공부는 저 좋아서 하는 거지, 남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책을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50대 들어서니 이런 책은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밖에서 본 한국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는 격일까요? 책을 하나 내고 읽은 분들의 반응을 얻으니 혼자 틀어박혀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하던 사람이 너무 신이 났어요. 그래서 내가 공부해 온 문명사의 관점을 한국근현대사에 적용하는 작업을 6년간 하면서 여러 권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공부와 관계없는 책은 <아흔 개의 봄> 하나뿐입니다.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에 모시면서 마음에 떠오른 느낌과 생각을 그대로 적은 글입니다.

여러 해 동안 번역을 호구지책으로 삼고 지내며 꽤 많은 책을 옮겼는데, 그중에 특히 마음이 끌렸던 책 몇 가지도 뽑아 놓았습니다. <용비어천가>가 하나의 예외입니다. 내 아버님이 해방 직후에 옮겨 낸 책인데, 그 동안 쌓인 연구를 참조하여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책을 쓰며 지내는 동안 독자와의 만남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키워왔습니다. 우연한 만남이라도 소통을 통해 자라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이곳을 찾아준 님께 감사드립니다.

 

 

미국인의 짐 / 아이필드 / 20033

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 돌베개 / 20083

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 돌베개 / 200812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 돌베개 / 20108

아흔 개의 봄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 서해문집 / 20111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을 넘어 / 서해문집 / 20104

해방일기 1~8 / 너머북스 / 2010~

 

역사로 읽는 용비어천가 / 김성칠-김기협 (옮긴이) / 들녘 /

바보 만들기 / 존 테일러 개토 (지은이), 김기협 (옮긴이) / 민들레 / 20057

공자 평전 / 안핑 친 (지은이), 김기협 (옮긴이), 이광호 (감수) / 돌베개 / 201011

꿀벌가문 족보제작 프로젝트 / 제이 호슬러 (지은이), 김기협 (옮긴이) / 서해문집 /

눈썹진드기 우상탈출 프로젝트 / 제이 호슬러 (지은이), 김기협 (옮긴이) / 서해문집 /

역사의 원전 / 존 캐리 (엮은이), 김기협 (옮긴이) / 바다출판사 / 201411

미사일 디펜스 / 크레이그 아이젠드래스 등 (지은이), 천희상-김기협 (옮긴이) / 들녘 /

소설 장건 / 량위에 (지은이), 김기협 (옮긴이) / 아이필드 / 200711

심벌 코드의 비밀 / 팀 월레스-머피 (지은이), 김기협 (옮긴이) / 바다출판사 /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 / 라우로 마르티네스 (지은이), 김기협 (옮긴이) / 푸른역사 /

 

 

 

한국현대사로 나를 이끌어준 두 분

 

2008년 봄에 낸 <밖에서 본 한국사>는 내가 공부해 온 과학사 내지 문명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도였다. 여기서 나는 민족주의를 합리적 기준으로 재구성하는 시각을 제시했다. 그런데 내 민족주의관이 뉴라이트와 통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뉴라이트가 어떤 건지 살펴보았고, 비판의 필요를 느껴 <뉴라이트 비판>을 쓰게 되었다. 뉴라이트도 문명사를 표방하지만 내가 보기엔 신자유주의 노선을 옹호하기 위한 견강부회였다. 그런데 한국사 전공자 중에는 문명사의 관점에 익숙한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 한국현대사에 마음이 강하게 끌렸다. 당시 뉴라이트는 이명박 정권의 옹호 아래 현대사의 해석에서 식민통치와 독재정치의 미화 등 민족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주장을 펼치며 교과서까지 넘보고 있었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 현대사를 살펴보다가 나는 민족의 역사가 지금 하나의 큰 기로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현대사의 정리와 해석 작업을 시작하고 6년간 매달려 지내게 된다.

<망국의 역사><해방일기> 작업을 하며 수백 권 책을 들춰보았다. 이 자리에 벌여놓기에는 너무 많다. 늦게 시작한 한국현대사 연구의 길잡이로 삼은 두 분 연구자의 저서만 여기 내놓는다. 성균관대학에 있던 서중석 교수와 이화대학의 정병준 교수다.

서중석 교수는 한국현대사 분야의 개척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거니와, 내가 개인적으로 늘 가르침을 얻어 온 각별한 선배다. 1968년 가을 물리학과 1년생이던 내가 사학과 전과를 생각할 때 사학과 2년생이던 서 교수를 만나 조언을 얻는 데서 시작했으니 참 긴 인연이다. 그분의 개척정신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어서, 내가 낯선 분야에 뒤늦게 뛰어드는 데도 많은 조언과 큰 격려를 베풀어주었다.

정병준 교수는 참 믿음직한 후배다. 역사를 보는 눈이 넓으면서도 예리한데다가 작업방법이 매우 치밀하다. 20년 전부터 알고 지내다가 몇 해 전 개인적으로 매우 고마운 일이 있었다. 내 아버님의 일기 유고가 1993<역사 앞에서>로 출간되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15년이 되는 2008년을 앞두고 증보판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 일에 그가 적임이라고 생각해서 부탁했더니 흔쾌히 맡아서 아주 훌륭한 책을 만들어주었다.

두 분 외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현대사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이룩해 왔다. 그 성과에 접근하는 데도 두 분의 연구서들이 출발점이 되었다. 중요한 성과들이 두 분의 책에 대개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도 좋은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여기 두 분의 책만 내놓는다. 문필가로 나서도 될 만큼 문장력도 좋은 분들이라서 읽을거리로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역사 앞에서 - 한 사학자의 6.25 일기, 개정판  / 김성칠 (지은이), 정병준(해설) / 창비 / 20096

우남 이승만 연구 - 한국 근대국가의 형성과 우파의 길 / 정병준 / 역사비평사 / 20056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 정병준 / 돌베개 / 20066

독도 1947 - 전후 독도문제와 한..일 관계 / 정병준 / 돌베개 / 20108

몽양여운형평전 / 정병준 / 한울아카데미 / 19956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개정증보판 / 서중석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33

   한국현대사 60년 / 서중석 / 역사비평사 / 20075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 서중석 / 역사비평사 / 20083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재조명 / 서중석 / 돌베개 / 20106

6월 항쟁 - 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 / 서중석 / 돌베개 / 201110

조봉암과 1950년대 -상, 하 / 서중석 / 역사비평사  199912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 서중석 / 역사비평사 / 19973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 서중석 / 역사비평사 / 19969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 서중석 / 역사비평사 / 20052

배반당한 한국민족주의 / 서중석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44

.북협상 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 - 우사 김규식 생애와 사상 2 / 서중석 / 한울아카데미 / 20008

 

 

 

오늘의 남북관계를 보는 역사학도의 눈

 

20108월에서 20138월까지 꼬박 3년간 <해방일기> 작업을 하고 나니 한국현대사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만큼 한 것 같았다. 나는 1990년 강단을 떠난 후 언론계에 기대어 활동하면서 역사를 시사(時事)로 보고 시사를 역사로 읽는자세를 추구해 왔다. 그 자세를 연장해서 시사문제인 남북관계를 역사학도의 눈으로 설명하는 <냉전 이후>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1972년에 ‘7-4 남북공동선언이 있었지만 남북 어느 쪽도 진심을 담지 않은, 상황에 떠밀려 작성한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냉전 종식의 배경 위에서는 남북관계에도 실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변화를 보며 사람들은 일희일비를 거듭해서 겪었다. ‘냉전 종식의 의미에 대한 역사학도의 관점을 바탕으로 설명을 시도하면 보다 안정된 시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1987년 이전에는 북한에 대해 관심만 보여도 반공법, 보안법으로 두들겨 맞는 상황이었다. 1987년 이후 제대로 된 북한학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번에 북한학 연구서를 살펴보며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연구가 많이 쌓여 있다는 데 감탄했다. 이 사회에 워낙 절실한 과제이기 때문에 장벽이 제거되자마자 우수한 인재들의 많은 노력이 집중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좋은 책도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다.

남북관계에 관한 책을 다시 세 그룹으로 나눠 놓았다. 하나는 남북관계에 종사한 사람들의 회고록 등 기록이다. 일반 독자들이 쉽게 주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들이 이 그룹에 들어있다.

또 한 그룹은 미국 학자-관료-언론인들의 기록이다. 미국은 당사자들보다 압도적인 힘을 갖고 남북관계의 전개에 작용해 왔으므로 미국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아직 한국인 연구자나 관계자들의 기록은 미국의 역할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데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반 독자라도 남북관계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면 이 그룹의 책들이 필요하다.

세 번째 그룹은 한국 학자들의 연구서다. 좋은 연구가 많이 나왔지만, 북한학의 역사가 일천한 만큼 관련된 주제들이 포괄적으로 망라되어 있지도 못하고 수준이 고르지도 못하다. 일반 독자들보다는 더 깊은 관심을 가진 이들이 특정 주제를 깊이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냉전의 추억 : 선을 넘어 길을 만들다 / 김연철 지음

피스 메이커 :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 임동원 회고록

분단의 히스테리 / 홍석률 지음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 / 강만길 지음

한반도는 아프다 : 적대적 공생의 비극 / 한완상 지음

칼날 위의 평화 / 이종석, 개마고원

정세현의 정세토크 / 정세현, 서해문집

 

실패한 외교: 부시, 네오콘 그리고 북핵위기 / 찰스 프리처드,

코리안 엔드게임 / 셀리그 해리슨 저 ; 이홍동 외 역

최후의 도박 : 북한 핵실험 막전막후 풀스토리 / 후나바시 요이치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 리언 시걸; 구갑우 등 역

북한의 협상전략 / 척 다운스 저 ; 송승종 역

악의 축의 발명 / 브루스 커밍스 외 [공저] ; 차문석 외 [공역]

김정일 코드 / 브루스 커밍스 지음 ; 남성욱 옮김

한반도 운명 : 북폭(北爆)이냐 협상이냐 / 케네스 퀴노네스 저

리얼 노스 코리아 / 안드레이 란코프 지음 ; 김수빈 옮김

북핵 위기의 전말 / 조엘 위트 등, 모음북스

두 개의 한국 / 돈 오버도퍼 , 이종길 역.

 

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하여/ 김근식 지음

북조선 연구 : 서동만 저작집 / 서동만저작집간행위원회 엮음

북한의 외교정책과 대외관계 / 김계동 지음

2000년대 대북정책 평가와 정책대안 / 박종철 등 [공저]

북미 대립 / 장달중-이정철-임수호, 서울대출판문화원

주한미군: 역사-쟁점-전망 / 김일영-조성렬, 한울

북한의 남북정치 협상연구 / 저자: 김혜원

북한 권력의 역사 : 사상정체성구조 / 백학순 지음

분단 반세기 북한 연구사 / 북한연구학회 편

북한의 당·국가기구·군대 / 백학순 [] 지음

 

 

 

근대성에 초점을 맞춘 문명사 공부

 

내 공부의 기본 목적은 문명사의 궤적을 파악하는 것이다. 199040세 나이에 강단을 떠난 것도 이 방향의 공부를 마음껏 펼치기 위해서였다. 공부가 궤도에 오르면서 교수직에 따르는 제도적 조건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것이다.(정규직이 얼마나 좋은 건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구체적 과제로 떠오른 것은 유럽중심주의(내지 서양중심주의)의 극복이었다. 중국사로 공부를 시작한 내 눈에는 동양의 지혜가 파묻히고 그보다 경박한 것으로 보이는 서양사상이 세상을 휩쓰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1985년 반년 간의 영국 체류 이래 방학마다 동서교섭사 자료 수집을 위해 유럽을 방문하면서 이 과제가 구체화되었다.

그 공부의 첫 성과가 1993년에 박사학위논문으로 제출한 마테오 리치의 중국補儒易佛論이었다. 중국에 가톨릭 선교의 길을 연 마테오 리치(1552-1610)는 중국문명을 높은 수준으로 체득한 인물로 알려져 왔다. 나는 그의 중국 이해에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 밝힘으로써 그 단계 동서교섭의 실제 수준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이 논문의 문제의식과 연구방법에 나는 큰 자부심을 느끼며 자랑스럽게 심사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을 얻었다. 다섯 분 중 세 분은 내가 바란 대로 높이 평가해 주었는데 한 분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고 또 한 분은 극도로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최종 판결을 앞두고 나는 불합격을 각오하기에 이르렀는데(전원 찬성하지 않으면 부결되는 제도다.) 결국 합격을 받게 된 것이 어떤 연유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논문 심사의 곡절을 겪은 후 나는 강단으로 돌아갈 생각도 버리고 학술논문의 형태로 연구결과를 발표할 생각도 버렸다. 칼럼니스트와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공부는 나 혼자 했다. 그렇게 십여 년을 지낸 뒤 공부에 어느 정도 틀이 잡히자 역사에세이라는 이름으로 저술활동을 시작한 지 7년째 된다.

문명사 공부에서 얻은 시각을 한국근현대사 서술에 투영하는 시도를 지난 6년간 해왔다. “역사학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라는 말이 있거니와, 역사학도가 자신이 서있는 현재를 확실히 파악해야 이 대화가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나는 한국근현대사 작업을 통해 내 현재를 파악해 오면서 문명사 공부의 초점을 근대성에 맞추게 되었다.

금년에 진행해 온 <냉전 이후> 작업을 계기로 그 동안 한국의 상황에 꽂아놓고 있던 눈길을 다시 세계로 돌리려 하고 있다. 지금 <프레시안>에 연재 중인 <자본주의 이후>가 그 출발점이다. ‘근대성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여기서 정리해 놓은 다음,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국내외 연구동향을 더듬어가며 문명사의 흐름에 대한 생각을 키워가려 한다.

여기 옮겨놓는 책들은 지금 책상 주변에 꽂아놓은 것들이다. 더 중요한 다른 책들도 있지만 마침 곁에 있는 대로 예시(例示)’하는 것일 뿐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책들의 참고문헌을 통해 다른 책도 추적할 수 있다. 언젠가 내 연구 성과가 크게 빛을 보아 名詞의 서재아닌 名士의 서재를 꾸릴 때가 있다면 이 방면 책들을 더 세심하게 골라 보여드리겠다.

 

 

분노의 지리학 / 하름 데 블레이, 유나영() / 천지인

진화하는 민주주의 / 김상준 / 문학동네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 김상준 / 글항아리

서양현대사의 흐름과 세계 / 강철구 / 용의 숲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 앤서니 스미스, 강철구() / 용의 숲

미국 패권의 역사 / 브루스 커밍스, 박진빈-김동노-임종명() / 서해문집

리오리엔트 / 안드레 군더 프랑크, 이희재() / 이산

신의 용광로 /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 이종인() / 책과함께

변경에서 바라본 근대 / 테사 모리스-스즈키, 임성모() / 산처럼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 최원식 / 창비

문명과 바다 / 주경철 / 산처럼

왜 유럽인가 / 잭 골드스톤, 조지형-김서형() / 서해문집

덩샤오핑 시대의 탄생 / 안치영 / 창비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 리쩌허우, 이유진() / 글항아리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 황런위, 이재정() / 이산

탈정치시대의 정치 / 왕후이, 성근제-김진공-이현정() / 돌베개

백년의 급진 / 원톄쥔, 김진공() / 돌베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 추이즈위안, 김진공() / 돌베개

용과 춤을 추자 / 조영남 / 민음사

21세기 중국이 가는 길 / 조영남 / 나남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