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은 민주주의사회의 가장 기본적 원리다. 모든 구성원이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 참정권의 행사 수단인 선거에 있어서도 ‘1인1표’의 ‘보통선거’ 원칙이 통용된다.

 

‘보통선거’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대개 “성별, 종교, 인종, 교육, 재산, 신분의 차별 없이” 모든 구성원이 같은 선거권을 가지는 원리라고 설명되어 있다. 어떤 설명에는 “일정 연령 이상의 사람”이란 조건이 붙어있기도 하다. 그렇다. 어떤 민주주의국가에도 연령에 따른 선거권의 제한이 있다. 연령의 하한이 있어서 그 나이를 채우지 않은 사람은 ‘미성년’으로서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성년’이란 독립하여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는 연령으로서 대한민국 현행 민법(2013년 7월 1일 시행) 제4조에 만19세로 규정되어 있다. 민법상의 규정이 헌법상의 권리를 제한할 수는 물론 없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6월 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거권 연령이 만19세로 낮춰진 후 작년 민법 개정 때까지는 민법상의 미성년자가 선거권을 행사하는 상태였다.

 

근대민주주의가 안정된 제도적 틀을 갖추고 전 세계로 확산된 가장 큰 고비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선진국에서도 이때 여성참정권을 도입했고, 식민지로부터 독립하는 국가들이 거의 예외 없이 민주주의제도를 도입했다. 그 무렵 선거권 연령 하한은 대개 20세 또는 21세였다. 연령 하한은 이후 서서히 내려가는 추세를 보였다.

 

1970년 영국에서 연령 하한을 18세로 낮추자 많은 나라가 그 뒤를 따랐다. 1990년대까지는 18세가 세계적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16세로 낮추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현재 OECD 회원 34개국 중 한국만이 19세고 나머지는 모두 18세나 그 이하다.

 

내가 선거권 연령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47년 5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선거권을 25세 이상으로 하는 보통선거법을 제정하는 장면을 살펴볼 때였다. 당시 입법의원을 장악하고 있던 한민당과 이승만 추종세력 등 극우세력이 젊은이들의 투표를 무척 싫어했다는 사실이 비쳐 보이는 장면이었다. “25세 선거권”이라면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었기 때문에 극우세력을 후원하던 미군정도 그것만은 수정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건국 당시에는 21세로 정했다가 1960년 4-19 후 20세로, 2005년에 19세로 낮춰졌다.

 

18세도 20세도 아닌 어정쩡한 19세로 하한을 잡는 나라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뿐이다. 이것은 2005년의 개정 때 열린우리당의 18세 주장과 한나라당의 20세 유지 주장을 절충한 결과다. 근년의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젊은 층의 지지를 잘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청년층 투표를 싫어하는 것은 건국 이전부터의 전통이다.

 

그런데 선거권의 연령 제한이 이렇게 정치세력끼리 밀고 당길 대상이 되는 것일까?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참정권은 성년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근래 부각되고 있다. 인구학자 폴 데미니가 1986년에 제기한 주장인데, 10여 년 동안은 탁상공론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어린이참정권을 제도화하려는 운동이 21세기로 넘어오며 활발해져서 ‘데미니 투표권’이란 이름으로 흔히 불리게 되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장 단계에 있는 ‘미성년자’에게 법적 행위능력을 제한하는 것은 사회질서를 위해 타당한 일이다. 투표도 법적 행위이니 미성년자에게 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성년자에게도 학교 지원, 여권 신청 등 꼭 필요한 법적 행위가 있을 때는 보호자가 대행해 주지 않는가. 미성년자의 투표도 보호자가 대행해 주면 되지 않을까?

 

투표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원칙 중에 직접투표가 있고 비밀투표가 있다. 투표를 보호자가 대행한다면 이 원칙들이 손상된다. ‘어린이참정권’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유다.

 

그런데 차분히 생각해 본다면, 일에는 경중과 본말의 차이가 있는 것 아닌가. 참정권은 인권의 본질적 요소다. 직접투표와 비밀투표의 원칙은 그 실현방법에 관한 것이니 지엽적 문제라 할 것이다. 지엽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본질적 요소를 부정한다는 것은 속된 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민주주의는 다른 정치체제에 비해 좋은 가치를 많이 품은 이념으로 널리 인정되지만, 제도적으로 완성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상식’에 의심을 품어야 할 것이 많이 있다. 예컨대 백 년 전에는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여성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여성의 정치의식을 남자들이 얕봤을 뿐 아니라 대다수 여성도 전체 집단으로서 여성의 정치적 판단력에 스스로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보다 다시 백 년 전에는 신분과 재산이 참정권의 근거였다. 미국독립전쟁 때의 널리 알려진 구호 “대표 없이 세금 없다!”를 생각해 보라. 참정권 요구의 근거가 납세에 있었던 것이다. ‘보통선거’란 말이 처음 쓰인 것이 1848년 2월혁명 후의 프랑스에서였다. 신분과 재산의 장벽을 철폐하고 모든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함으로써 선거인단이 20만 명에서 900만 명으로 일거에 늘어난 것이다. 혁명의 추동력을 얻기 위한 조치였다.

 

프랑스의 경우 여성참정권이 추가되어 오늘날의 참정권 개념에 접근한 것이 ‘보통선거’ 제창 이후 근 백 년이 지난 1944년의 일이었다. 그 무렵에 여성참정권이 제도화된 것은 세계대전 덕분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전면전의 수행을 위해 여성의 적극적 전쟁노력 참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평민 집단의 참여 필요에서 평민참정권이 제도화되고 여성 집단의 참여 필요에서 여성참정권이 제도화되었다면 어린이 집단의 참여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이참정권은 아직까지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본다면 21세기 들어 어린이참정권 제도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시대적 필요에 따른 일로 풀이될 수 있다. 인구의 노령화가 선거의 노령화와 정치의 노령화를 불러오는 상황에 대응할 필요다.

 

인구구조의 노령화는 그 자체로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협 요소다. 생산 종사 인구의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노령화 현상을 겪는 사회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든 저생산성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서든 특별한 정치적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선거의 노령화가 대응 노력을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든다. 먼 장래에 대비하기 위해 환경과 자원을 보존하고 사회의 빚을 억제하기보다 당장의 고통을 회피하는 쪽으로 정치계가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현상유지를 정책기조로 하는 집권당이 노년층의 집중적 지지를 받는 추세가 분명해졌다.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장래를 대비하는 자세에 있어서 연령층에 따른 차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살아야 할 날이 많은 청년층이나 키우고 있는 미성년 자녀가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는 중년층이 노년층에 비해 장래에 대한 걱정을 더 많이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나는 민주주의에 대해 절대적 신념을 갖지 않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는 말이 실제로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뜻인 것처럼 ‘모든 사람의 권리’라는 말은 아무에게도 권리가 없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고 있다. 실제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제도가 사회에 혜택을 가져오도록 작동된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혜택을 누렸다고 보이는 소수의 ‘선진국’ 경우도 민주주의 원리 자체에 투철해서가 아니라 넉넉한 자원이나 우월한 기술 등 다른 요인들 덕분일 것으로 생각한다.

 

신념이 없다 해서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강력히 지지한다. 지지하는 까닭은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신뢰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이념으로서 결함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신뢰 위에서 제도로서 안정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이유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18세기의 민주주의가 신분과 재산을 참정권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었고 1848년 이후 더 완전해졌다고 하는 관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1848년 이전에는 그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유산계층의 역할이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에 그 상황에 적합한 방식으로 제도가 형성되고 운용되었던 것이다. 1848년까지 군대와 공장 등에서 평민층의 역할이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에 참정권 확대가 이뤄진 것이다. 20세기 전반부의 여성참정권 도입도 가정 밖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자라난 결과였다.

 

어린이참정권 도입은 민주주의 이념의 정합성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평민을 배제한 민주주의가 불완전한 것이었고 여성을 배제한 민주주의가 불완전한 것이었다고 본다면 어린이를 배제한 민주주의도 불완전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이유만으로 어린이참정권 도입을 주장할 생각이 없다. 어린이들 끌어들이지 않고도 민주주의제도가 잘 운용된다면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다.

 

2012년 11월에 어린이참정권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은 세대 간 정치성향의 차이가 뚜렷해지는 데서 노령화사회의 문제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리 절박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점도 차츰 생각해 봅시다.” 하는 정도로 내놓았다. 가까운 일본을 비롯해 노령화 문제가 더 심각한 나라들도 있는 만큼, 우리에게만 절박한 문제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정치 노령화의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 아닌가! 흠 잡을 것 없는 날씨에 여객선이 뒤집어지기에 이르는 황당한 과정, 뒤집힌 배에서 한 사람도 구해내지 못하는 더더욱 황당한 상황이 과연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인지, 모든 국민에게 떠오른 의문이 내게도 떠올랐다.

 

사태의 원인을 여러 방향, 여러 층위에서 살필 수 있다. 그런데 내게는 정치의 노령화가 핵심 문제로 생각된다. 정치인, 관료, 사업가들이 모두 눈앞의 득실에만 매달려 안전을 도외시하는 풍조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적게 하는 연령층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치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국고를 거덜내며 환경을 파괴한 4대강사업이나 한반도 평화를 외면하는 대북 대결정책도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얼마 전 또 한 편의 글을 써서 <프레시안>에 올렸다. 세월호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사회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인지 많은 국민이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다. 여러 가지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중에 어린이참정권 도입도 깊이 고려할 과제라고 보는, 18개월 전보다 훨씬 절박해진 생각을 내놓은 것이다. 그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보며 생각을 한 차례 더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선진국을 모방하고 강대국에 의존하는 정책을 취해왔다. 우리가 처해있는 고유 조건과 관계없이 선진국의 제도와 관습을 들여와 우리도 선진국이 될 수 있기만 바랐고, 어떠한 위험으로부터도 강대국의 보호를 받겠다는 의존적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압도적인 외세로 인해 식민지로 전락하고, 또 압도적인 외세 덕분에 해방을 맞는 경험으로부터 선진국이라야만 잘 살 수 있고 강대국에 의지하지 않고는 안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깊이 새겨진 것이다. 그 결과 선진국의 복잡하고 미묘한 제도와 문물을 갖춰놓고도 그것을 제대로 운용할 줄 모르는 대단히 위험한 나라가 되어 있고, 고유한 문제인 민족분단은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접어든 잘못된 길을 벗어나기 힘들게 된 것이 정치의 노령화 때문이다.

그 결과 국민이 극심한 고통에 빠져있다. 그 고통이 역설적으로 진짜 선진국이 될 길을 열어주고 있다. 사회와 정치의 노령화는 많은 나라들, 특히 기존의 선진국들을 괴롭히고 있는 문제다. 그런데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는 상황을 겪고 있다. 어린이참정권의 제도화로 노령화 문제를 앞장서서 극복한다면 전 세계가 한국을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쳐다볼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