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호랑이가 감기몸살에 걸려 며칠동안 굴속에서 골골거리다가 겨우 몸을 추스르고 나왔다. 배는 고프고 기운은 없는데 그날따라 만만한 먹이가 잘 걸리지 않았다. 반나절을 허탕치고 다니던 끝에 어느 골짜기를 내려다 보니 골짜기 꼭대기의 담배밭에서 젊은이가 김을 매고 있었다. 너무나 이상적인 먹잇감에 너무나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사람이 하나뿐이니 기운 없는 몸이라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다. 더워서 웃통을 벗어제친 모습을 보니 살집도 넉넉하고 싱싱해 보였다. 게다가 옷을 벗어놓았으니 먹는 데 걸리적거릴 것도 없었다.

 

호랑이는 너무 기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등성이 위에서부터 웃음을 터뜨리면 젊은이가 알아채고 도망을 갈 텐데, 쫓아가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반대편 골짜기로 얼른 내려가 마음놓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을 만큼 웃은 다음 식사를 위해 담배밭 있는 골짜기로 넘어와 보니 젊은이는 그 사이에 일을 끝내고 가버렸다.

 

여기까지 읽으면서는 옛날얘기 중에 더러 싱거운 것도 있지, 하는 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덧붙인 얘기가 절창이다. (엮은이가 누구인지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표시가 없었던 것 같다- 가람 이병기, 공초 오상순, 수주 변영로 등 당대 풍류객들의 일화를 많이 담은 것으로 보아 그 풍류객들의 술자리에 많이 따라다닌 아랫세대 인물이었을 것 같다.) 어느 자리에서 공초가(기억이 확실치 않다) 이 얘기를 했는데 가람이(역시 기억이 확실치 않다) 너무나 우습고 좋은 얘기라고 생각해서 잘 기억해 뒀다가 집에 돌아가 가족을 집합시켜 놓고 이 얘기를 해줬는데 아무도 재미있어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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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