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에 귀머거리 영감님 세 분이 살았다. 세 분의 또 하나 공통점은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남의 말 못 듣는 분들이 자기 말 하기를 좋아하니 가족들도 괴롭고 본인들도 괴로울 수밖에.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묘책이 떠올랐다. 세 분이 함께 사는 것이었다. 빈 집 하나를 구해 세 분이 함께 지내면서 각자 마음껏 이야기를 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지나가다가 들여다보면 세 분이 동시에 열변을 토하고 있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어느 해 설날 착한 젊은이 하나가 "노인들끼리 이 명절에 얼마나 쓸쓸하실까" 하는 마음이 들어 이 집에 세배를 왔다. 절을 받은 뒤 한 노인이 말했다. "우리 살림이 이 모양이라 모처럼 찾아온 자네에게 대접할 게 없구먼. 내가 재미있는 옛날얘기라도 하나 대접하지."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인천을 옛날에 제물포라 했지. 그 앞바다에 월미도란 섬이 있는데 시커먼 바위로 둘러쳐져 있어. 이 바위에 물가마귀가 많이 와서 앉아 쉬는데, 물속에 있는 오징어란 놈이 그 길다란 다리를 뻗어 물가마귀 다리를 잡아챈단 말이야. 그래서 가마귀 오, 도둑 적, '오적'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오래 지내다 보니 '오징'이라고 바뀌게 된 걸세. 자네 오징어란 이름이 어떻게 생긴 건지 이제 알겠는가?"

 

워낙 착한 젊은이인지라 재미없는 이야기도 재미있는 것처럼 열심히 들어드렸다. 가끔씩 고개도 주억거리고 놀란 눈빛도 지어 드리니 노인은 신이야 넋이야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다가 이야기가 끝나고 젊은이가 고맙다고 고개 숙여 인사드리자 흐뭇한 표정으로 물러앉는다.

 

그러자 또 한 노인이 나섰다. "자네 내 이야기도 하나 대접함세." 그리고는 "인천을 옛날에 제물포라 했지." 하고 허두를 꺼내는 게 아닌가? 젊은이가 눈이 둥그레져 쳐다보자 노인은 더욱 신이 났다.

 

앞서 노인의 이야기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재생되는데, 젊은이는 터지려는 웃음을 틀어막기 바쁘다. 당신께서 똑같은 얘기인 줄 모르고 저렇게 열심히 말씀을 해주시는데, 내가 티를 낸다면 너무 실례가 되지 않겠는가. 아무리 애를 써도 웃음 깨무는 기색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그 기색을 노인은 재미있어 하는 줄 알고 더욱더 신이 나 이야기에 힘이 실린다.

 

겨우 웃음을 삼키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낸 뒤 젊은이가 일어서려 하자 세 번째 노인이 나섰다. "앉은 김에 내 이야기도 하나 듣고 가구려." 그리고는 막무가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천을 옛날에 제물포라 했지."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젊은이는 노인의 첫 마디가 떨어지자 마자 뒤집어져버렸다.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웃음을 참지 못했고, 이야기가 끝날 때도 웃음을 걷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숨을 헐떡이고 있는 젊은이에게 이야기를 끝낸 노인이 회심의 미소를 띠고 물었다. "어때? 내 얘기가 그중 재밌지?"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