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인문학습원 행사는 교육-교양과 관광의 두 측면을 결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교육-교양이 직업인 내게는 관광 측면에만 의미가 있다. 지난 주 통영학교 참가도 순수한 관광 목적이었다.
프레시안과 필자로서 관계를 맺은 것은 창간 때부터였고 그 관계가 거의 ‘전속’으로 발전한 지도 5년이 되어 간다. 그런데 언론 다음으로 프레시안의 중요 사업인 인문학습원 행사에 참가해 보는 것은 처음이다. 안내를 보니 내용도 매력적이고, 그래도 프레시안 사업이니까 단체관광에 익숙지 않은 내가 적응하기에 덜 어려울 것 같아서 신청했다.
새벽 6시 50분 집합에 맞춰 가는 것부터 엄두가 잘 나지 않는 일이었다. 아내가 끌고 가주는 덕분에 대화역에서 5시 반 첫 차를 타니 딱 맞춰서 도착이 된다. 좌석 배정을 보니 맨 앞줄이다. 제1호 신청이었다고 한다. 멀미에 약한 아내가 안도감을 보인다.
연휴 첫 날이라 길이 엄청 막히는데, 막히거나 말거나 골아 떨어졌다. 평소 기상시간 비슷하게 되어 잠을 깨니 대전을 지나고 있다. 잠시 후 고속도로를 갈아탄 후 행사가 시작되었다. 교장선생님 훈화 후 자기소개를 하라며 제1호 신청자에게 첫 마이크를 쥐어준다.
“이미옥 여사님과 그분께 묻어 사는 김기협입니다.” 첫 마디에 여러 분이 가벼운 웃음을 보여주기에 안심이 되어 마음 놓고 넉살을 떨었다. “저는 프레시안에 글을 연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독자님들이 다른 분 글로 눈길을 돌리기에 뭔가 보니 통영학교 교장선생님 글이더군요. 그분은 뭐로 그렇게 독자의 눈길을 끄는지 정찰을 위해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청중 반응을 보니 좀 더 나가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제 주변에서 교장선생님 음식 얘기를 보고, 과연 저 표현대로 음식이 맛있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우니 사실을 확인해 달라는 부탁도 있었습니다. 강 선생님 얘기 중 어디부터 뻥이고 어디까지 사실인지 오늘 내일 중에 확인하려 합니다.”
공감을 표하는 몇 분의 외침과 여러 분의 폭소 속에 자리에 앉으니 평소 내 주책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아내가 모처럼 칭찬 한 마디. “정말 말씀은 잘 하셔~”
학급 분위기 파악을 위해 다른 분들 자기소개를 귀 기울여 들었다. 대충 3분의 1가량은 강 교장의 섬학교나 통영학교 단골손님, 또 3분의 1가량은 인문학습원 단골손님, 우리 같은 초짜가 나머지 3분의 1가량. 어느 위치에서나 편안히 느낄 만한 좋은 구성 같다. 30대에서 60대까지 고른 분포에 20대도 몇 분 있다.
예정보다 두 시간 넘어 늦은 점심(대부분 멍게비빔밥)에서 시작해 저녁의 다찌집, 이튿날 아침의 졸복국과 점심의 해물한정식에 이르기까지, 음식에 대해 눈곱만큼도 불만 없다. 기대를 높이 잡았는데도 기대에 어긋남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찌집의 미더덕. 40여 년 전에 딱 한 번 먹어본 거다. 부산의 고급 한정식집(준 요정급)에서였는데, 그때는 ‘참멍게’라고 소개받았던 것 같다. 멍게랑 같은 접시에 나오기에 “참멍게 참 오랜만이네.” 하고 먹었는데 그게 미더덕이란다. 해물탕에 들어가는 미더덕과는 개념이 다른 거라고 강 교장 글에서 읽었는데, 진짜 개념이 다르다. 평생 먹어본 음식 중 최고를 꼽으라면 꼽힐 자격 있는 놈이다.
좋은 음식을 요란 떨지 않고 대범하게 먹는다는 사실이 참 좋다. 허름한 집에서 격식 없이 먹으면 세상 사람들 다 즐기는 것 함께 즐기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다. 앞으로는 어디든 다닐 때 취향 비슷한 이들께 식당 정보를 미리 얻도록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먹는 얘기 그만해야겠다. 끝이 없겠다. 자는 얘기도 할 게 별로 없다. 기억을 못하니까. 근데 부부를 갈라 남자방, 여자방으로 수용하는 풍속은 좋은 줄 잘 모르겠다. 큰 방에 4인 이상 넣어 비용을 대폭 줄인다면 몰라도 3인실 갖고... 코를 너무 골까봐 불안해서 잠이 잠 같지 않다. 딱 하룻밤이니까 참아주지, 이틀 이상이면 안 되겠다.
남은 얘기는 돌아다닌 얘기다. 일단 산책코스는 참 좋다. 삼칭이 해변길은 아주 좋았고, 동피랑도 좋기는 한데 관광객이 너무 바글거려서 편하지는 못했다. 토요일 새벽에 한 시간 남짓 혼자 다닌 산보길도 괜찮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서피랑이었다. 공교롭게 동피랑과 서피랑을 비교해 보는 행운을 누렸다. 벽화운동 아니었다면 동피랑도 서피랑 비슷하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깔고 벽화운동의 뜻을 음미할 수 있었다.
박경리기념관과 윤이상기념관, 양쪽 다 잘 되어 있다. 윤이상기념관에서는 큐레이터의 해설을 들었는데, 간결하고 요령 있는 해설도 좋았거니와 우리 팀의 듣는 태도가 아주 좋다. 큐레이터는 어느 관광단인지 모르는 채로 해설에 나섰는데, 그도 아주 흡족한 기색이었다. ‘문화관광’의 분위기가 여느 관광단과는 확실히 다르다.
강 교장의 역점 강의는 이순신공원과 세병관에서 있었다. 한산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이순신공원에서 판옥선의 역할과 학익진의 의미에 대한 해설은 아주 훌륭했다. 당시 일본의 조선술과 대포 기술이 조선보다 뒤진 점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보강했으면 하는 아쉬움 정도.
세병관에서 ‘洗兵’의 의미 해설이 통영학교 교육의 하이라이트라 하겠다. 무기를 씻는 뜻이 갈무리에 있는 것이니, 통제영의 존재 목적이 평화 추구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정말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임진왜란 무렵 중국에서 활동하던 마테오 리치가 중국의 평화적 전통에 탄복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무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갈무리하는 것이다. 무기가 없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고 무기가 횡행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 무기가 갈무리되어 있는 상태, 그것이 참된 평화의 상태라는 것이다.
딱 하나 안 보는 편이 좋았겠다고 생각된 것은 옻칠미술관. 나는 잠깐 보고 일찍 나와서 버스기사와 얘기 나누며 한가로운 시간을 가졌다. 내가 왜 옻칠미술관을 싫어했는지는 나중에 생각나면 따로 정리해 보겠다. 얘기가 너무 길 수 있겠다.
생각나는 얘기 하나 버스기사에게 해준 것은 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아저씨 길 좁은 통영에서 진짜 고생 많았다. 해준 얘기는 30여 년 전 계명대학 있을 때 형님으로 대하던 피아노 교수와의 대화다.
피아노: 김 교수, 오늘 저녁 별 일 없으면 나랑 한 잔 하지.
역사: 형님, 오늘은 곤란합니다. 내일 아홉 시부터 강의가 있는데 준비가...
피아노: (짐짓 정색을 하고) 아니 김 교수! 당신은 학자라는 사람이 평소에 학문을 어떻게 하길래 강의 전날 밤마다 쩔쩔 매는 거요!
역사: (약이 올라서) 아니 형님, 나는 피아노 강의랑 역사 강의랑 똑같은 강의로 치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역사 강의는 적어도 몇 십 명, 많으면 백여 명을 놓고 혼자 떠드는 중노동인데, 피아노 강의는 학생 한 명씩 불러들이고 앉아서 듣는 거잖아요?
피아노: (표정을 능글맞게 바꾸고) 야 기협아, 네 생각에 버스 운전이 더 힘드니, 택시 운전이 더 힘드니?
역사: (어리둥절해서) 그야 버스 운전이 힘들죠. 대형면허도 필요하고.
피아노: (회심의 미소를 띠고) 그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버스기사는 손님 몇 십 명 태우고도 저 맨날 다니는 길만 다녀. 근데 택시기사는 손님 하나 태우고도 가자는 골목골목 쫓아 들어가야 해. 어느 쪽이 더 힘드니?
역사: (어이를 상실하고) 네, 그러고 보니 택시 운전이 더 힘드네요. 피아노 강의도.
아내가 내게 “참 말씀은 잘 하셔~” 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생각해도 말 하나 잘해서 곤경을 넘기는 일이 적지 않다. 타고난 재간이 아니다. 초짜 시절 피아노 선생님께 저렇게 싸발리면서 조금씩 터득한 재간이다. 그 선생님, 피아노는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몰라도 내게 말재간 가르쳐준 솜씨는 정말 탁월하다.
무심코 찍었는데, 사진 나온 걸 보니 추장 자리에 내가 버티고 앉아 있다. 강 교장은 내게서 제일 멀리 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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