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간병인들 사이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너무 가까워 보인다. 내가 말씀을 걸면 무슨 바람이 지나가나? 하는 식으로 천천히 눈길이 옮겨오시는데, 어느 여사님이든 말씀을 걸면 즉각 눈길이 꽂히신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아들으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하시다. 내가 드리는 말씀은 알아들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기색이신데.
어찌 생각하면 그럴 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분들과는 하루 24시간 함께 지내시는 것이 벌써 네 달을 채워가고 있다. 모든 수발을 그분들이 다 해드린다. 나야 명색이 아들이지, 기저귀 한 번 갈아드리는 일이 있는가? 그분들에게 정도 들고 의지도 되시는 것이 이상한 일일 수가 없다.
간병인 복은 참 좋으시다. 작년 7월 파주 탄현면의 자유로요양병원에 들어가실 때부터 능력이나 품성이나 믿음이 가는 여사님을 만났다. 심양 출신의 장 여사, 그 작은 체수에 선한 눈매가 지금도 생각난다. 며칠 안 있어 새로 만든 병실로 옮기면서 장 여사 손길에서 떨어지셨지만, 장 여사는 틈틈이 들여다보며 어머니를 아껴드렸다.
그 뒤로 몇 번 간병인이 바뀌었고, 바뀔 때마다 "이렇게 믿음직한 분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에 휩싸였지만, 이상하게도 바뀔 때마다 더 믿음직한 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병원에서 맨 끝에 돌봐드린 조 여사는 화룡에서 온 분으로 나랑 동갑인데, 그분에게는 정말 깊은 경의까지 느꼈다. 사람이 똑똑한 데다 정도 깊고, 게다가 행실까지 아주 반듯한 분이다. 내가 없을 때 찾아온 분이 용돈 얼마라도 드리고 가면 내게 꼭 금액까지 밝혀서 알려주곤 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쯤 문안 전화를 드리면 무척 반가워한다. 그렇게 반가워할 거면서도 이쪽으로 전화는 안한다. 객지에 나와 약한 입장인 사람이 연락을 취하면 뭔가 바라서 그러는 것처럼 보일 것을 꺼리는 그 마음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정말 조 여사 손길에서 어머니를 떼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 용태가 안 좋으시니 그 병원에 계속 계셔도 중환자실로 옮기셔야 할 형편이 되어 병원을 바꿀 결단을 내렸다. 애초에 그 병원을 고른 첫째 이유가 한탄강 바라보는 한적한 위치라서 도시생활을 싫어하시는 어머니 입맛에 맞는다는 점이었는데, 거동도 못하시게 되니 그 이유가 사라졌다. 시설을 비롯해 기능적 조건이 나은 시내의 병원으로 옮겨 모실 생각을 하고 일산 시내 병원들을 둘러본 결과 탄현역 앞의 현대재활요양병원을 골랐다.
자유로병원에서 13개월 계시는 동안 그만하면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셨다. 정말 거기서는 대접도 VIP 대접을 받으셨다. 그곳 직원들은 어머니 경력에 외경심을 품기도 했고, 외진 곳의 병원에 우리가 워낙 부지런히 다니니 안면이 받혀서도 각별히 대해드리게 되었다. 게다가 간병인들까지 모두 남 같지 않게들 살펴드린 것은 아내 덕분이다. 수십 명 간병인 중에 한 사람 빼고는 모두 조선족이었는데, 같은 조선족인 내 아내의 시어머님이 어찌 남 같겠는가. 나랑도 많이들 친하게 되어 휴가 나갈 때면 내가 대화역까지 태워드리면서 "선생님은 우리 간병인들 전속 쓰지(기사)예요." 하는 말을 듣곤 했다. 식당에서 밥 먹다가 미묘한 얘기는 중국어로 바꿔서들 얘기할 때가 있다. 한 번은 그러다가 옆 자리의 나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 "어머, 저 양반은 다 알아들을 텐데, 부끄러워서 어떡해?" 하는 것 같다.(중국에서 몇 해 지냈어도, 그런 말 귓전으로 알아들을 만큼 익히지는 못했다.) 눈치로 때려잡고 "워 팅부동, 니 팡신바.(못 알아들어요. 마음 놓으세요.)" 했더니 모두 정신없이 웃는다.
직원 중에도 고마운 분들이 많지만, 그중에도 살림꾼 노 실장은 다음 주 책 나오는 대로 한 권 갖다주러 가봐야겠다. 1년 넘게 그곳에 계실 수 있었던 데는 그 분의 도움이 컸다. 그 분 아버님도 그곳에 입원해 계셔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버님이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해 마음이 미안하다. 병원을 옮길 때, 우리가 떠나는 것이 서운하면서도 지금 상태에서는 옮기시는 편이 좋다고 격려해 주고, 옮길 병원의 살림꾼 안 실장에게도 각별한 배려를 부탁해줬다.
자유로병원까지 집에서 차로 30분 걸렸다. 5분도 안 걸리는 지금 병원을 다니면서 생각하면 그 먼 데를 어떻게 매일 다녔을까 싶다. 그러나 그 때는 멀다는 생각 하나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다녔다. 정말로 즐거웠다. 나 자신에게 못된 구석이 보통사람들보다 많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보호를 필요로 하시는 어머니 보호해 드리는 자세에는 못된 점 다 치워놓고 괜찮은 면만 나타난다. 원장님에서 간병인, 그리고 낯이 익은 환자분들까지 내 얼굴만 보면 괜히 좋아들 하는 분위기로 여러 달 지내다 보니 진짜로 내 품성까지 많이 순화된 것 같다. 고맙습니다, 어머님.
지금 병원의 여사님들 얘기를 하다가 전 병원 얘기로 넘어간 것이 너무 길어졌다. 오늘은 이 정도로 접어놓고 우리 김 여사, 박 여사, 주 여사 이야기는 다음날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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