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7. 12:53
 

어제 낮에 대덕화 보살님이 다녀간 이야기를 간병인 여사님들께 들었다. 이름을 남기지 않았어도 몇 마디 들으니 그분이 틀림없다.

어머니와 인연이 참 공교로운 보살님이다. 작년 6월 하순 설현 거사가 기사 노릇을 해 주어 암자로 찾아뵐 때 같이 계신 것을 보았다. 어머니가 태안사 떠나신 뒤에 그 절에 다니다가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뵙고 싶어 찾아왔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늦게 절 살림에 드셨지만, <불광>에 싣던 수필을 좋아하는 이도 많고 청화 큰스님과 서로 받들고 아끼시던 인연을 흠모하는 이들도 많아서 외진 데 계셔도 찾아오는 분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본 두 분 보살님, 대덕화 님과 그 올케 되는 성진행 보살님은 잠깐 봐도 어머니 대하는 태도가 은근하고도 편안해서 각별히 고맙게 느껴졌다.

서울로 돌아온 이튿날 오후에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공주 어느 병원에 모셔놓았는데 큰 병원으로 곧 옮겨 모셔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몇 차례 통화로 상황을 파악해 보니 당장 위급하신 것은 아니지만 병원 신세는 크게 져야 할 형편인지라, 일산 백병원으로 모셔오기로 했다.

절 살림을 오래 계속하시기 힘들겠다 생각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던 차였다. 암자에서 큰절까지 포행도 힘들 만큼 기력이 떨어지신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그보다도 기억력 감퇴가 큰 문제가 되어 있었다. 그 날 일산으로 모셔오도록 결정을 내린 데는 절 생활 끝내실 계기일 것 같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백병원에서 며칠간 검사를 받으신 후 보아두었던 파주의 요양병원에 모셔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 순조롭게 접어들었으니, 그 날 쓰러지신 일에는 다행스러운 면도 있었던 셈이다.

백병원에 모신 이튿날 대덕화 보살님이 찾아왔다. 쓰러지실 당시 상황도 설명해 주었다. 두 분 보살님이 공주 시내로 모시고 나와 점심 대접을 한 후 걸어가는 도중에 갑자기 벌러덩 쓰러져서 머리에서 피가 날 만큼 바닥에 짓찧으셨다는 것이다. 퇴행성 치매가 이미 한참 진행되고 있었으니 언제 어디서라도 깜빡 하실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곁에 있던 분들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검사 결과를 설명해 드려도 좀체 편안치 못한 마음을 털어내지 못하다가, 몇 달 지나 요양병원에서 새로운 생활이 안정되시는 것을 보고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17개월 동안 성진행 보살님도 몇 번 와 뵈었지만, 대덕화 님은 한 달에 한두 번씩 꾸준히 뵈러 왔다. 쓰러지실 당시 모시고 있던 책임감이라면 남매간이 같을 텐데, 대덕화 님은 특별히 애틋한 정을 키우게 된 것 같다. 딸 하나 있는 것이 딸 노릇 못하는데, 대덕화 님이 정말 딸 노릇 해드리는 셈이다. 튜브 피딩을 시작한 반 년 전까지, 어머니의 마지막 음식 호강은 그 분 덕분이었다. 공이 드는 음식을 어쩌면 그렇게 알뜰하게 마련해 오는지, 번번이 놀랄 뿐이었다.

한 번 병원에서 만났을 때, 대덕화 님이 친정어머님과 시어머님 병 수발하던 이야기를 하며 자기는 노인 모시는 이력이 있나보다며, 또 한 분 어머님 모시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정말 예쁜 마음이다. 모습도 50대는커녕 40대로도 보이지 않는 미인이지만, 그 밑에 깔린 마음은 사춘기도 겪어보지 않은 아이처럼 밝고 따뜻하기만 하다. 그 분과의 인연은 어머니 말년의 큰 복이시다.

대개는 내가 없을 때 다녀가기 때문에 다녀간 이야기만 곁의 여사님들께 듣는데, 몇 주일 전 한 번은 어머니를 뵙고 싶어 하는 스님이 나도 보고 싶어 하신다는 연락을 해 와서 시간을 정해 만났다. 기력이 영 안 좋으실 때였는데, 그래도 알아보시는 기색이 있으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어제 왔을 때는 정신이 훨씬 더 맑으신 것을 보았을 테니, 얼마나 기뻐했을까 생각하며 나도 마음이 흐뭇하다. 고맙습니다, 대덕화 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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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7. 12:52
 

어제는 일이 많은 데다 먼 곳에 다녀올 일도 있어 아내 혼자 어머니를 뵙고 왔다. 밤에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뵙고 온 얘기를 꺼내면서부터 싱글벙글이다. 며느리를 알아보시더라는 것이다.

이상하게 며느리를 못 알아보신다. 몇 달 전 기운과 정신이 푹 떨어지시기 전에도 아내가 "어머님,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하면 능청스럽게 "알~지" 대답하시는데, 누군지 똑바로 말씀해 달라고 조르면 "제~자" 하시곤 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나이 있는 여성 방문객은 으레 제자려니 하시는가 보다. (30년 가까이 이대 국문과에 재직하셨고, 이제 정년퇴직 하신 지 20년이 넘었다.) 그러고 나올 때마다 아내는 "저는 알아보시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뭐하러 오겠어요? 이제 안 올래요." 짐짓 앙탈이다. 그러다가 모처럼 알아봐 주셨다고 저렇게 좋아한다.

작년 초여름 쓰러지시기 전에도 벌써 몇 해째 기억력 감퇴가 심하셨다. 그중에도 며느리 못 알아보시는 일이 두드러졌다. 3년 전인가? 계시는 절에 찾아갈 때, 점심시간에 겨우 대어 갈 형편이라, 미리 전화 드려 큰절(갑사) 입구의 단골 식당(수정식당)으로 내려와 계시도록 청했다. 조금 여유를 두고 도착해 보니 안 와 계셔서, 암자(대자암)로 전화해 보니 우리랑 약속은 까맣게 잊으시고 이제 공양하러 가실 참이란다.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리고 그 날은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모시러 올라갔다. 모시고 내려와 식당 가까이 왔을 때 산책하며 기다리던 아내와 마주쳐 차 밖에서 인사를 드렸다. 그런 후 아내는 식당으로 걸어 돌아가고 나는 차를 주차장으로 몰고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께서 물으신다. "저 아주머니 인상이 참 좋구나. 너 아는 분이냐?" 기가 막히지만 대답할 수밖에. "네, 좀 아는 분이예요."

셋째 아들(나)을 알아보기는 잘 알아보신다. 거의 인사불성으로 정신이 몽롱하실 때도 간병인이 "이 분 누구세요?" 하면 응대를 못하시다가 "아드님이예요?" 하면 한 시름 놓았다는 표정이 되어 끄덕끄덕하신다. 그런데 알아는 보시면서도 크게 반가운 기색은 아니시다. 어려서부터 형제들 중에 고지식한 편이었던 내가 영 재미없는 녀석으로 도장찍혀 버린 것일까?

쓰러지실 때까지도 기회만 있으면 내 어릴 적 일이라고 싫증도 안 내고 되풀이하시던 얘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가 말 배우는 것이 늦어 걱정을 좀 했는데, 어느 날 혼자 웅얼웅얼하고 있어서 가만 들으니 구구단을 외우고 있더라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수학적인 머리만 있고 언어적인 머리는 없는, 되게 재미없는 녀석이라고 믿어 오신 증거 같다. 또 하나,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선생님 세 분이 함께 오시는 데 마주치자 그 자리에 서서 머리를 세 차례 꾸벅거리더라고. 가정방문 오신 선생님께 들었다며 내 머리가 허얘질 때까지 그 얘기를 입에 달고 지내신 것은 내 고지식함을 사랑하신 뜻도 물론 있겠지만, 융통성 없는 녀석이라고 딱해 하는 마음도 있으셨을 것 같다.

융통성 없는 성미 때문에 어머니를 필요 이상 걱정 끼치고 괴롭혀 드린 일이 많다. 이 글을 쓰면서 미국의 형에게도 메일에 담아 보냈더니 답장에 이렇게 썼다. "I think the history between you and Mother is playing out nicely now.  Bless you two." (형 쓰는 메일 서비스에는 한글 서포트가 안 되나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그 분이 힘 있으실 때는 제일 악착스럽게 대들던 내가 힘 떨어지신 뒤로는 이렇게 착실하게 당번을 서게 되다니. 역시 나는 고지식한 놈인가보다. 생긴 대로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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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7. 12:49

네 시간 반. 1년 남짓 병원에 모셔 놓고 지내던 중 한 번 가서 모시고 있는 시간으로 엊그제 신기록을 세운 게 아닌가 싶다. 며칠 전부터 용태가 썩 좋아지셨지만, 그 날은 전날과도 비교가 안 되게 정신이 초롱초롱해 보이셨다. 정신이 좋으실 때도 30분, 길어야 한 시간 정도만 깨어 계시면 피로를 느끼시는지, 눈을 뜨고도 몽롱한 상태에 빠지시는데, 그 날은 네 시간 동안 내내 정신이 좋으셨다. 바짝 좋아지신 것이 반갑기도 하고, 어떤 변화가 있으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여 길게 앉아 있게 되었다.

내가 가기 전에는 글까지 읽으셨다고 한다. 천수경과 금강경이 든 독경집을 놓아두고, 피곤한 기색을 보이실 때 읽어드리면 편안히 휴식으로 빠져드시는 것 같아 얼마씩 읽어드리곤 하는데,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까 여사님들도 틈날 때 읽어드린단다. 그런데 그 날은 한 분이 읽어드리는데 달라는 듯이 손을 내미시기에 눈앞에 펼쳐드렸더니 얼마간 소리내어 읽으시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모시고 있으면 그런 재간을 잘 안 보여주신다. 여사님들이 안타까워, "아까 하시던 말씀 아드님께도 해 드리세요." 하고 조르면 어쩌다 한 마디 입을 떼실 때도 있지만 대개는 웃기만 하신다. 나는 너무 긴장시켜 드리는 것이 조심스러워 별로 채근하지 않는다. 내가 곁에 있을 때 재간을 아끼시는 것이 마음이 편안하시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 날은 여사님들 듣기 좋으라고 짐짓 "어머니, 이제 아들보다 여사님들이 더 좋으신가 봐요." 했더니 어머니도 웃음 지으시고 여사님들도 좋은 기색이다.

여덟 시 넘어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다 생각하니, 세상 참 좋아졌다 싶다. 1년 남짓 병원에 매일 가 뵙는 것을 놓고 아는 이들은 나를 대단한 효자 취급한다. 내 편리한 시간 골라 가서 어떤 때는 30분도 안 앉았다가 돌아오곤 하는 것이 나처럼 직장도 안 다니는 사람에겐 힘들 일이 아무 것 없다. 노환 든 분들을 집에서 모시던 시절 생각하면, 이건 일도 아니다.

지난 여름까지 1년 남짓 계시던 병원이나, 네 달째 계시는 지금 병원이나, 집에서 모시는 것보다 훨씬 든든하고 편안하다. 의술이 좋아지고 말고와 관계 없이, 조직과 제도의 문제다. 특히 자식인 우리보다도 더 믿음직한 간병인들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노인에게 좋은 일이다. 우리가 여늬 보호자들보다 자주 가고, 또 아내와 동향이기 때문에 여사님들이 더 마음을 써주는 면도 있기는 하지만, 다른 노인들 살펴드리는 태도를 봐도 저보다 더 잘 살펴드릴 자식이 어디 있을까 싶다.

오늘은 두 시간 가량 모시고 있는 동안 말씀이 한 마디도 없으셨다.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생각에 잠기신 것 같아 손을 잡은 채 책을 펼쳐 읽고 있다가, 얼핏 쳐다보니 얼굴이 울상이시다. 그래서 책을 치워놓고 "어머니, 저는 책보다 어머니가 더 좋아요." 엉구럭을 떠니 금세 풀리셨다. 책한테 샘을 내시는 건가? 그렇다면 용태가 대단히 좋아지신 거다. 튜브 피딩이 끝나 편안해 보이실 때 인사 드리고 나오려니 무표정하게 쳐다보시는데, 박 여사가 "아드님 가시는데 빠이빠이해야죠." 하고 얼려 드리니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웃음이 가득하시다. 사랑해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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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