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mboo shoot has thickly knit nodes on it when it emerges out of the ground and begins to grow into a tree. The thickness of the nodes is the source of the strength of the straight and tall tree the shoot will grow into. The flexible strength of bamboo trees in a grove standing against the hard wind derives from the thickly knit nodes on the shoots.

 

It is these thickly knit nodes that you have to arm yourself with before you set out on a long journey. That is the teaching of life and also of age-old science. So as to grow into a tall tree and become a part of a magnificent grove, you need to have in you a plenty number of stout nodes. Those nodes which will prepare you against all kinds of difficulties you are to meet during the journey.  [Shenzi]

 

 

A living creature is bound to go through a variety of situations. Some creatures adjust themselves better to more of them than others when they have a more complex inner structure. Life is not a simple matter. Not simple at all. [O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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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학자들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고, 따라서 자신들 사이에서 중재역을 담당하고 억제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또한 법률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에서는 언어가 왜 필요한가 하는 논의를 하면서, 사람은 자신의 의도를 표현할 수단을 필요로 하며, 그 까닭은 인간이 본질상 적절한 표현을 통해서 상호부조와 사회조직을 보다 더 용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법률의 목적이 문명을 보존하려는 데에 있다는 점과 관련하여 위와 비슷한 문제들이 논의되었다. (67-68쪽)

 

원칙적으로 인간은 다른 누군가에게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그들이 받는 지배가 자상하고 공정하며 법률과 규제가 그들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자기 마음 속에 갖추어진 용기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다. 그들은 억압적 권력이 없는 것에 만족하고, 자립성이 마침내 그의 선천적 기질이 되어 다른 성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법률을 수반하는 지배가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사람들의 용기를 파괴하고 저항력을 앗아가버린다. 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듯이 억압받는 사람의 영혼 속에 생성되는 무력감 때문이다. 처벌에 의해서 강제되는 법률은 용기를 완전히 파괴한다. 왜냐하면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사람에게 가해진 처벌은 그 사람에게 치욕감을 불러일으키고 치욕감은 의심할 나위 없이 그의 용기를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130쪽)

 

이러한 [고귀한 뿌리에 대한] 환상을 가장 심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인들이다. 그들은 원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문에 속했는데, (...) 그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상실했고 치욕과 고난을 겪었으며, 지상에서 유배의 생활을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수천 년 동안 그들은 오로지 노예생활과 불신앙으로 일관했다. 그런데도 아직 가문에 대한 환상은 그들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 도시민들 가운데 다수는 이와 비슷한 넌센스를 저지른다. 그들 역시 아무런 연대의식도 없으면서 자기가 고귀한 계보에 속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139쪽)

 

피정복민은 언행, 의복, 직업 등 모든 풍속과 관습에서 정복민을 항상 모방한다. 그것은 인간이 항상 자신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나 자신을 굴복시키는 사람을 더 완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가 지닌 위세가 강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복종하는 사람 자신의 열등함 때문이 아니라 존경받는 사람의 완벽함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일 경우도 있다. 그러한 잘못된 가정이 머릿속에 자리잡으면 그것은 확고한 신념이 되어버리며,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승리자의 모든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와 닮으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모방인 것이다.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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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그러므로 오늘날 이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정치의 원리와 사물의 성질은 물론 민족이나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서 생활방식, 성품, 관습, 교파  학파 등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오늘날의 상황에 대해서도 모든 방면에 걸쳐 포괄적인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는 현재와 과거의 상황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해야만 하며, 그래서 어떤 경우에 유사성이 나타나고 어떤 경우에 차이점이 보이는지 그 원인을 알아내어야만 한다. (...) 그리고 난 뒤에 자신이 알고 있는 기본적인 원칙에 근거하여 전승되어온 보고의 내용을 검토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 보고가 요구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것은 건전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역사가는 그것을 엉터리로 간주하여 폐기하여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고대인들이 역사학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고, 앗 타바리나 알 부하라 혹은 그들보다 전에 살았던 이븐 이스학을 비롯한 종교학자들이 역사학을 선택하고 헌신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역하학의 비밀인 이 점을 망각해버렸고, 그 결과 이제 역사학은 우둔한 학문이 되고 말았다. (48쪽)

 

오늘날, 가르치는 것은 하나의 직업이고 생계수단일 뿐 연대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사들은 약하고 가난하며 뿌리를 가지지 못한다. (...) 그들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처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이 단지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직업인이요, 기술자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이슬람의 초기, 즉 우마이야 왕조와 압바스 왕조의 시대에는 교사라는 것이 무언가 달랐다는 점을 알 리가 없다. 그 시대에 학문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술이 아니었다. 학문이란 사람들에게 종교법을 제시한 분의 진술을 전달하는 것이었고, 미지의 종교적 문제를 구전의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었다. 고귀한 계보를 지닌 사람들, 그리고 연대의식을 공유하고 이슬람의 업무를 감독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전과 예언자의 종교법을 가르쳤으며, 학문은 그러한 것들을 전승해주는 것이지 결코 직업적인 교육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 이는 예언자가 자신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사절단과 함께 아랍인들에게 보내, 자기가 도입한 이슬람의 규범과 종교적인 법률을 가르치도록 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51쪽)

 

14세기 후반에 나온 책에서 역사학과 학문의 '타락'에 관한 생각이 지금 사람의 생각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 만사 제쳐놓고 며칠간은 <역사서설>에 파묻혀 지내야겠다. 김호동의 번역도 매우 훌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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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