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무기사찰을 위한 유엔사찰단(UNSCOM)이 본연의 목적을 벗어나 미국의 후세인 타도정책을 위한 정보수집에 이용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달 폭격 때도 리처드 버틀러 사찰단장이 이라크에서 철수한 후 유엔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를 했다고 구설에 오른 일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찰단이 미국의 앞잡이라는 후세인의 비난을 뒷받침해 주며 유엔의 권위를 크게 떨어뜨리는 일이다.

 

사찰단이 91년 걸프전이 끝난 후 안보리 산하기구로 만들어진 뒤 몇 년 동안 자체예산이 없어 미국이 비용을 댔다. 94년부터 자체예산을 가지게 됐지만 미국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다른 사찰참여국들과 비교가 안되게 집요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사찰단의 미국정보기관 협력설이 보도되자 미 국무부와 버틀러 단장은 함께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밝혀지는 사실은 이들의 부인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문제는 도청에 있었다. 사찰단은 95년부터 도청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찰단원들은 도청기구를 설치만 하고 해독은 미국에 맡겼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해독을 마친 후 사찰단이 필요로 할 부분만 뽑아서 보내줬다는 것이다.

 

미국 측이 사찰단에 넘겨준 부분 외에 어떤 정보를 자국 이익을 위해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유엔 측에서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지난 달의 폭격목표를 정하는 데도 이 도청자료가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정보관계자들은 이라크가 비밀무기의 보호와 후세인의 보호에 같은 경호체계를 쓰기 때문에 비밀무기를 추적하는 사찰활동을 도와주면서 후세인에 관한 정보를 얻은 것은 부산물일 뿐이라고 해명한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미국 정부 사이에 이 때문에 냉기류가 빚어지고 있다. 미국은 미국에 비협조적이던 브루토스 갈리 총장을 몰아내면서 아난을 사무총장으로 밀었다. 그러나 아난 총장 역시 유엔의 독립성을 주장하며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강경책을 거듭 견제해 오고 있다.

 

이라크도 유엔의 일원이며 무기사찰은 강제보다 협조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유엔을 대표하는 아난 총장의 입장이다. 그래서 사찰단이 미국의 군사적 첩보활동에 이용된다는 이라크 측 주장도 귀기울여 들으며 공정을 기하려 애쓰는 것이다. 국회에 대한 안기부의 조사활동이 국가기관으로서 꼭 필요한 선에 그치는지 정치공작의 일환인지에 대해서는 누가 공정한 심사를 해줄까. 시민단체들에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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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