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5. 13:13

아내가 거의 매일 찾아뵙고 나는 주 2회 정도 가 뵙는 식으로 생활의 틀이 짜인 지 반년이 되어 간다. 아내는 대개 점심때 가서 식사를 도와드리고 한참 응대해 드리다가 오는 반면 나는 저녁 후에 가서 쉬시기 전의 모습을 잠깐 조용히 살펴보고 돌아온다. 나 자신은 어머니와의 접촉을 대폭 줄인 것이다.

얼마 동안은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걸어서 20분 거리인데 마음을 꼭 먹으면 매일이라도 못 다닐 이유가 없다. 차로 30분 가까이 걸리던 자유로병원에 1년간 출근하던 때의 성의가 어디 갔나, 스스로 못마땅한 것이었다.

발걸음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마음을 다져 먹어야 했다. 매일 일과에 어머니 방문 한시간반을 넣는 데 따른 장기적 득실을 생각하고, 지금 내 도움을 어머니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로 하시는지와 냉정하게 비교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특별한 상황이 아닐 때는 어머니 때문에 내 일에 지장을 감수하지 않기로.

아내에게도 하루 건너 정도 가 뵐 것을 권했는데, 매일 가려고 애쓴다. 지난 연초부터 식당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나섰는데, 내가 못 가는 대신 어머니 가 뵙는 것을 내 뒷바라지의 한 길로 여겨 의무감을 느낀 것 같다. 그런데 다니다 보니 재미도 붙이는 것 같다. 기력이 좀 못하실 때는 걱정이 되어 매일 가고, 기력이 좋으실 때는 노시는 모습 보는 게 꽤 재미있는 모양이다.

오늘은 다녀와서 어머니 모습을 전하다가 묻는다. "알라이 부유"가 무슨 뜻이냐고.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랍어는 못 하시는데? 이상해서 그 말씀 하신 정황을 캐물어 보니 "I love you."였다. "워아이니"와 같은 뜻이라고 했더니 눈이 둥그레진다. "내가 좋다는 말씀이었어요?"

누울 데 보고 발 뻗는다 했던가. 이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 했던가. <아흔 개의 봄>에서도 어머니 처세술에 탄복한 대목이 더러 있었지만, 거동 못하고 누워 계시면서도, 기력이 떨어져 정신이 몽롱할 때가 많으시면서도, 생활 잘하는 길을 참 잘 찾으신다. 고부간의 관계를 다른 인간관계와 구별해서 정확하게 인식하지도 못하시면서, 매일 찾아와 살펴드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나름대로 챙기시는 것이다.

관계의 이름보다 있는 그대로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며느리고 시어머니고 이전에 이남덕과 리미옥은 서로를 아껴줄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다. 두 사람 사이에 아끼는 마음을 펼치고 키울 기회가 내 게으름 덕분에 주어진다면 게으름에도 가치가 있다. 이런 장면에서는 행동보다 마음이 더 중요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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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