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공부 정리를 위해 <오랑캐의 역사> 작업을 하다가 새 작업의 필요가 떠올랐다. 근대사 영역의 생각을 한 차례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역사 공부의 목적이 현실의 이해에 있다고 믿는 나로서는, 앞 시대의 연구라도 근대사에 대한 함의를 밝히는 것이 정리의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새 작업의 필요를 떠올리며 국가를 주제로 삼을 생각을 했다. 다른 시대를 공부해 온 사람이 근대사를 살펴보려면 통시대적 의미의 주제를 앞세워야 할 것이고,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국가의 역할이 컸다. 그렇게 오랜 국가의 경험을 가진 나라가 근대세계에서 국가실패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https://en.wikipedia.org/wiki/Terracotta_Army#/media/File:Terracota_warriors_002.jpg 기원전 3세기 중국의 방대하고 치밀한 국가조직을 보여주는 병마용(兵馬踊) 유적. 1갱에서만 6천여 개 인형이 출토되었다.

 

국가제도의 밑바닥을 헤쳐볼 마음이 들면서 동남아로 눈길이 간다. 이 지역의 국가 경험에는 다른 어느 지역과도 다른 특성이 있는 것 같다. ‘국가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기에 적합한 무대로 보인다.

 

 

발전의 길을 외면한 사회들

 

제임스 스콧의 <통치를 피하는 재간 The Art of NOT Being Governed>(2009)이 그런 참에 눈에 띄었다. 스콧이 고찰하는 조미아(Zomia)는 동남아 대륙부의 안쪽 산악지대, 그리고 비슷한 자연조건이 이어지는 중국 서남부와 인도 동북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힘이 약하던 지역이다.

 

이곳을 단순히 미개지역으로 보던 통념에 스콧은 이의를 제기한다. ‘미개라면 발전하지 못한상태란 말인데, 못하기보다는 않은측면을 보자는 것이다. 집약농업의 생산력, 국가조직의 효용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싫어서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어 발전의 길을 외면한 사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을 휩쓴 사회진화론은 인종주의 등 파생된 문제들 때문에 비판을 받았으나 그 핵심 명제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여러 가지 발전단계에 관한 생각이 그렇다. 모든 변화의 흐름에 불가역적 법칙성이 있다고 믿고 싶은 유혹은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Southeast_Asia#/media/File:Colonial_Boundaries_in_Southeast_Asia.jpg 19세기 말 동남아에서 샴(태국) 외에는 모두 유럽인의 식민지였다.

 

발전론자들은 결과를 중시한다. 집약농업과 국가조직을 채택한 사회들과 그러지 않은(또는 못한) 사회들이 나란히 있다면 후자의 사회들은 우승열패의 법칙으로 도태되어 전체적 발전 방향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콧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문명 자체를 완성된 결과가 아닌 진행 중인 과정으로 본다. 과정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축적된 경험이 문명의 진로를 결정하는 경로의존성이 작동한다. 그렇게 본다면 근대화가 늦었던 남양인의 경험이 국가의 역할이 줄어드는 탈-근대 단계에서는 중요한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농업세계에서만 절대적이었던 국가

 

체계적 역사서술의 출현에는 국가의 역할이 컸다. 역사서술이라는 활동 자체가 국가가 보장하는 환경 속에서 이뤄지는 한 탐구와 서술의 중심을 국가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민족국가가 역사학의 교육과 연구를 위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준 덕분에 세워진 근대역사학은 민족(국가)의 역사로 출발했다.

 

인류의 생활방식을 총체적으로 바꾼 사건으로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과 근대 산업혁명이 꼽힌다. 농업혁명을 계기로 국가조직과 문자 사용의 확산이 함께 진행되었으니 농업세력과 국가가 그 이후 역사의 주역을 맡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Austronesian_peoples#/media/File:Beinan_Taitung_Taiwan_Aboriginal-Stilt-House-01.jpg 타이완 원주민의 원두막집. 손쉬운 재료로 며칠이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한 곳에서는 국가조직을 뒷받침할 정주(定住)사회의 형성이 어려웠다. 그 점에서 유목민의 천막(yurt, ger)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주연의 움직임만으로 역사의 드라마가 구성되지 않는다. 산업혁명이 불러일으킨 전면적 변화 속에서 주변부의 복선(伏線)에도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고 정치사에 집중하던 역사학이 사회사, 문화사, 생활사 등 소홀히 다뤄지던 영역으로 시야를 넓히게 되었다. 그럼에도 국가를 역사의 주체로 보는 통념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데이비드 스니스는 <머리 없는 국가 The Headless State>(2007)에서 유목세계의 국가 역할을 작게 보는 관점을 내놓았다. 정치조직의 본체는 분권화된 귀족층에 있고 국가 차원의 거대조직은 상황에 따라 덧씌워지는 껍데기일 뿐이었다는 관점이다.

 

농업세계 사람들은 유목세계에서도 국가가 중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농업국가와 마주친 유목민들이 국가체제를 모방하기도 했다. 통일된 진한(秦漢)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흉노제국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그림자 제국은 대외관계를 위한 장치일 뿐, 국가체제의 내부조직이 농업세계처럼 구축된 것은 아니었다.

 

유목민은 농업세력과 접촉을 통해 국가체제의 강점을 인식하고 모방하기도 했으나 그 모방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연환경의 차이와 그에 따른 생산양식과 생활양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근대 이전 초원지대의 국가 경험은 농업세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국가는 운명 아닌 하나의 옵션

 

농업혁명은 농업의 지배가 아니라 농업의 발생을 뜻하는 것이다. 온대지역의 큰 강 유역에서 출발한 농업문명이 주변의 건조지대, 산악지대, 해양지대로 퍼져나가는 과정이 그 후 길게 펼쳐졌다.

 

건조지대의 유목활동이 그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아 온 현상이다. 유목민은 특화된 생산물을 농업사회에 제공하면서 곡식, 직물 등을 공급받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밀고 당기기를 오랫동안 계속했다.

 

스콧은 조미아 산악지대에서 장기간에 걸쳐 일어난 현상을 보여준다. 지역 주민들이 자연조건과 외부 압력 사이에서 움직여 온 길은 발전을 향한 외길이 아니었다. 강 유역의 벼농사 사회를 발판으로 국가들이 만들어지지만, 대다수 주민은 국가와 비-국가 영역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국가에 속해 있어도 국가를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하나의 옵션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스콧은 통치를 피하는 재간으로 표현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Paddy_field#/media/File:Terrace_field_yunnan_china_edit.jpg

https://en.wikipedia.org/wiki/Paddy_field#/media/File:Battad_Rice_Terraces,_Banaue_Ifugao.jpg 중국 윈난성과 필리핀 루손섬의 다락논은 동남아 지역에 전파된 전형적 집약농업 형태다.

 

조미아에서 국가가 주민을 장악하기 힘들었던 것은 농업이 압도적 생산양식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농업기술로는 집약적 정착농업을 채용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았다. 국가의 규모가 클 수 없었고 거기 매여있던 농민도 마음만 먹으면 국가의 통제 밖에서 화전을 일굴 만한 곳으로 쉽게 달아날 수 있었다.

 

동남아 해양지대는 집약농업의 채용이 더 힘든 조건이었다. 기원전 1500년경 이후 남양인이 이 해역에 널리 퍼져나간 것은 두 가지 기술조건 덕분이었다. 하나는 화전농법과 벼의 직파(直播) 등 초보적 농업기술로 채집 단계에 있던 원주민의 생산력을 압도한 것이고, 또 하나는 뛰어난 항해술로 생산력이 더 우월한 대륙세력의 추격을 따돌린 것이다.

 

 

통치를 피하는 재간받는 재간

 

군호(軍戶) 제도를 중심으로 명나라 동남해안 지역 사회사를 연구한 마이클 소니의 <통치를 받는 재간 The Art of Being Governed>(2017)은 스콧의 2009년 책을 패러디한 제목이다. 그러나 소니는 자기가 살핀 지역 주민들은 스콧의 조미아 주민들처럼 통치를 피하는옵션을 갖지 못했다고 거리를 둔다.

https://www.amazon.com/Art-Being-Governed-Everyday-Politics/dp/0691197245/ref=sr_1_1?crid=2FBFBFRVMLSXX&keywords=The+Art+of+Being+Governed&qid=1704338114&sprefix=the+art+of+being+governed%2Caps%2C268&sr=8-1

https://www.amazon.com/Art-Not-Being-Governed-Anarchist/dp/0300169175/ref=sr_1_1?crid=31K7MAHGYAZRG&keywords=the+art+of+not+being+governed+by+james+scott&qid=1704338183&sprefix=The+Art+of+Being+Governed%2Caps%2C269&sr=8-1 <통치를 받는 재간><통치를 피하는 재간> 표지.

 

과연 그럴까? “재간(art)”이란 말이 중요하다. 주민이 국가를 이념으로 대하기보다 자기 이득을 위해 재간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두 지역에서 국가의 힘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주어진 국가의 힘에 그냥 굴복하지 않고 자기 이득을 위해 노력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통치를 받는 재간도 본질적으로는 통치를 피하는 재간의 한 모습이다.

 

자기 이득을 위한 피지배자의 소소한 노력을 소니는 일상정치(everyday politics)’라 부른다. 그는 일상정치가 명나라에 보편적으로 존재했다는 가정 아래 푸젠(福建) 지역의 현상을 하나의 예로 제시한다. 그런데 푸젠 지역은 송나라 이후에야 중화제국의 통치가 확립된 곳이다. 제국의 틀이 먼저 자리 잡힌 지역들에 비해 일상정치의 힘이 특별히 강하지 않았을까?

 

중국 서남부 광시-윈난-구이저우(廣西-雲南-貴州) 일대는 아직도 한화(漢化)가 적게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푸젠 지역은 그보다 한 발짝 앞서서 한화가 진행된 곳이다. 12세기 이전에 중국 남해안에서 한화가 확실했던 곳은 광둥(廣東)의 주강(珠江) 중류 유역 등 몇 군데 조그만 구역들뿐이었다.

 

남중국 일대의 사회적-문화적 조건에는 한화 이전의 전통이 아직도 짙게 깔려 있다. 동남아 지역과 연결되는 전통이다. 동남아 화교의 민국혁명 지원, 공산군 대장정에서 남방 학까(客家)족의 역할, 모두 국가를 이념아닌 재간으로 대하던 전통의 복류(伏流)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