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7세기에 당나라가 들어선 뒤 해상교역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해로의 발달 단계를 어렴풋이나마 보여주는 자료가 승려들의 여행기다. 여행이 힘들던 시절 먼 곳까지 움직인 사람들 중에는 세 가지 대표적 부류가 있었다. 상인, 군인, 그리고 종교인. 종교인 중에는 다른 부류 사람들에 비해 넓고 깊은 관찰력과 기록 남기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기록을 남긴 중국 승려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현장(玄奘, 602-664)이다. 그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서유기>에 활용되어 더욱 유명세를 탔다. 그는 629년 장안을 떠났다가 645년에 돌아왔는데, 왕복이 모두 육로였다. 그런데 다음 세대의 의정(義淨, 635-713)673년에서 695년까지 인도와 동남아시아 몇 곳에 체류했는데 왕복에 모두 해로를 이용했다. 수마트라섬의 팔렘방에 체류 중이던 689년에 필묵(筆墨)을 구하기 위해 광저우(廣州)에 잠깐 다녀간 일이 있다는 것을 보면 해로여행이 무척 쉬워진 것 같다.

 

여행기록을 남긴 최초의 중국 승려 법현(法顯, 334-420)의 경험과 대조가 된다. 법현은 399년에 동진(東晋)을 떠나 인도에 갔다가 412년에 돌아와 <불국기(佛國記)>를 남겼는데, 그 돌아오는 길이 여간 험하지 않았다. 상선을 타고 스리랑카를 떠났다가 폭풍도 만나고 해적도 만나고 심지어 선원들의 살해 위협까지 겪었다고 한다. 마지막 항해도 광저우를 목표로 한 배가 수십 일간 표류했다가 식량이 다 떨어질 무렵 겨우 육지에 닿았는데 알고 보니 칭다오(靑島) 부근이었다고 한다. 스리랑카를 떠난 지 꼭 1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 시대에는 아직 해로여행이 위험할 때였는데 법현이 고령이어서 육로를 취할 기력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해로를 취한 것 같다.

 

인도 승려 선무외(善無畏, Subhakarasimha, 637-735)도 고령으로 해로여행을 했다. 그는 80세가 되던 716년에 인도에서 장안으로 왔다. 의정과 선무외의 활동 시기에는 해로여행이 안전하고 편안해진 모양이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 혜초(慧超, 704-787)는 청년기인 720년대에 인도를 여행했는데, 돌아온 길은 육로가 분명하지만 간 길은 분명치 않다. 떠나기 전에 광저우 지방에 있었으므로 해로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의정은 광저우에서 파사(波斯) 상선을 타고 인도로 갔다고 하는데, ‘파사를 페르시아로 보는 데 의문이 있다. (마이클 하워드의 <Transnationalism in Ancient and Medieval Societies 고대와 중세 사회의 국제활동>(2012) 232쪽에도, <Wikipedia> "Yijing" 조에도 모두 그렇게 되어 있다.) 7세기 후반에 페르시아 상선을 인도-중국 항로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고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앙드레 윙크의 <Al-Hind, the Making of the Indo-Islamic World -힌드, 인도-이슬람 세계의 형성>(2002) 48-49쪽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시기에 말레이반도의 한 지역이 중국에서 파사(波斯)’라는 이름으로 통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 상선이 중국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9세기, 이슬람 정복(Islam Conquest) 뒤의 일로 알려져 있다. 그 전에는 페르시아 배가 말레이반도까지 오고 그 지역 주민들이 중국으로 중계무역을 했기 때문에 페르시아 상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라 해서 파사란 이름이 붙게 된 것 아닐지. 유리 공예품 등 파사 상품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작 파사가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못하던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서북방의 유목민과 실크로드 방면에 비해 동남아시아 지역과의 관계나 해로 개척 과정에 관한 중국의 역사기록이 적고 현대 학계의 연구도 적다. 해상활동을 경시하던 대륙국가의 전통이 가져온 편향성이다. 그러나 문명권들 사이의 거리가 바닷길을 통해 빠르게 좁아지고 있었다. 몽골의 유라시아 정복이 시작되기 전에 문명권 간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중국해와 인도양의 해상활동을 파악할 필요가 크다. 몇 권 책을 서둘러 주문하고 있다.

 

'오랑캐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륙의 바다, 사막 2/5  (0) 2020.06.24
내륙의 바다, 사막 1/5  (0) 2020.06.24
잡식성 오랑캐의 등장 5/6  (0) 2020.06.21
잡식성 오랑캐의 등장 4/6  (0) 2020.06.21
잡식성 오랑캐의 등장 3/6  (0) 2020.06.05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