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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존재하는 하나의 국가로서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 뜻이 그에 그치지 않는다. ‘한민족’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한국사’라 하면 ‘대한민국 역사’보다는 ‘한민족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중국’과 ‘중국사’의 의미도 이와 같은 틀로 이해하려 들게 된다. 그러나 이 틀이 잘 맞지 않는 것은 우선 중국이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족인 한민족과 같은 ‘중민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족(漢族)이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는 중국의 주류 민족이니 중국사를 “한족을 중심으로 중국의 여러 민족이 어울려 빚어낸 역사”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정도 개념이 표준으로 통용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려움이 많다. 여진족과 몽고족의 ‘침략’에 저항한 악비(岳飛)와 문천상(文天祥)은 한족의 역사에서는 영웅과 열사로 높이 받든 인물들인데, 여진족(만주족)과 몽고족이 모두 중국의 소수민족이 된 이제,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다민족국가라는 사실보다 중국에서 ‘민족’의 의미를 더 애매하게 만드는 것은 한족(漢族)의 정체성 문제다. 중국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는 한족을 하나의 단일민족으로 볼 수 있는가? 민족 정체성의 주요 구성 요소로 언어, 역사, 혈통 등이 꼽히는데, 중국의 민족 구분에는 언어에 압도적 비중을 두는 것 같다. 역사를 볼 때, 지금 한족의 조상 중에는 과거 어느 시기에 ‘오랑캐’였던 사람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 고고학의 개척자 리지(李濟)는 1923년 하버드대학에 박사논문으로 제출하고 1928년 출판한 <중국 민족의 형성(The Formation of the Chinese People: an Anthropological Inquiry)>에서 형질인류학의 기준으로 ‘중국인’의 신체적 특성을 검토해서 중국인 내의 편차가 주변 민족과의 차이보다 작지 않다는 사실을 밝혔다. 예를 들어 북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차이가 북중국인과 남중국인 사이의 차이보다 훨씬 작은 것으로 그의 두개골 계측 연구에 나타난다. 체형과 기질의 출신 지역에 따른 차이에 대한 통념은 중국인의 일상생활 속에 널리 자리 잡고 있다. 한족 자체가 하나의 ‘다민족민족’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또 하나 ‘중국’의 의미를 애매하게 만드는 것은 ‘중’ 자가 한국의 ‘한’ 자처럼 고유명사의 뜻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中國)’이란 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서주시대 청동기 명문 중 “宅兹中国”이란 구절이다. 그 뜻은 “가운데 나라”인데, 여기서 “나라”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성읍 내지 지역을 뜻하는 것이다. 그 뜻이 차츰 넓어져 ‘중원(中原)’과 비슷하게 쓰이기도 하고 화이(華夷) 사상의 정착에 따라 ‘중화의 영역’이란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 근대적 국제체제 안에서 국가를 새로 세울 때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쓰면서 줄인말로 ‘중국’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중국 역사학자 거자오광(葛兆光)이 “宅兹中国”이란 제목의 책(2011)을 쓴 것은 ‘중국’에 관한 역사 담론의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에서 그는 ‘중국사’의 범위가 지금의 중국 강역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부적절함을 지적한다. 악비와 문천상의 행위를 이해하려면 송나라 때 사람들의 국가관을 기준으로 봐야 할 것이며, 후세에 한족에 통합되거나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포괄될 수많은 역사공동체들을 당시 중국사의 주체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피해의식을 가졌던 이른바 ‘동북공정’에도 이 문제가 투영된다. 고구려를 “중국의 한 지방정권”으로 보는 것은 지금의 중국 강역 전체를 중국사만의 무대로 보는 관점이다. 이에 대한 김한규의 지적은 한-중 양쪽으로 타당성을 가진 것이다.


“한중간의 ‘역사 전쟁’ 과정에서 한국의 학계와 언론계가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규탄하면서 ‘고구려사는 오로지 한국사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역사가 사물을 형성하는 과정의 서술임을 인정한다면, 고구려 역사가 현재의 한국을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였음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중국을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어렵다. 고구려사가 중국사인가 한국사인가 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논쟁거리가 되지 못한다.” (<천하국가>(소나무, 2005), 13쪽)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