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 제후가 육혼 오랑캐를 정벌하다가 낙에 이르러 주나라 땅에서 열병식을 함에 정왕이 왕손만을 보내 초 제후를 위로할 때 초 제후가 솥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다.
(楚子 伐 陸渾之戎,遂至于雒 觀兵于周疆。定王 使王孫满 勞楚子, 楚子 問鼎之大小輕重焉)

<<춘추좌씨전>> 선공(宣公) 3년(기원전 607년) 조의 기사다. 초 제후를 “초자(楚子)”라 한 것은 제후의 등급 공-후-백-자-남 중 ‘자’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제일 낮은 등급에 속한다. 제후의 등급은 족보(族譜)가 첫째 기준이었지만 국력도 그 다음으로 중요한 기준이었다. 주(周)나라 초기 초나라 제후가 ‘자’의 등급을 받을 때는 초나라의 국력도 약소했다. 오랑캐 지역의 작은 세력 하나가 주나라 조공체제에 들어와 최소한의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3백년 후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초나라 세력이 당시의 어느 제후국 못지않게 커진 기원전 704년에 초 임금 웅통(熊通)은 자기네가 3황5제 중 전욱(颛頊)의 자손이고 조상인 죽웅(鬻熊)이 주 문왕(文王)의 스승이었다며 등급의 상향 조정을 주나라 천자에게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스스로 ‘왕’의 칭호를 취했다. 그때까지는 ‘왕’이 천자만의 칭호여서 제후가 감히 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년이 지나 초 장왕(莊王)이 구정(九鼎)의 스펙을 따져 묻고 있었다. 구정은 천자의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 크기와 무게를 물은 데는 “내가 지금 천자를 천자로 존중해 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구정을 구리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천자의 권위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니 절대적 상하관계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경고의 뜻이 담긴 것이었다. 그래서 “솥에 관해 묻는다(問鼎)”는 말이 하극상을 가리키는 숙어로 쓰이게 되었다.

 

춘추시대 초기의 제후국들. 중앙부의 작은 나라들에 비해 엄청나게 큰 영토를 가진 제齊, 연燕, 진晉, 진秦, 초楚, 오吳, 월越 등 큰 나라들이 주변부에 포진해 있다.

 
춘추시대 초기에는 대다수 제후국이 지금의 허난(河南)성 일대와 그 인접 지역에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이것이 상(商)나라 시절부터 ‘중원(中原)’으로 전해져 온 오래된 동네였다. 그중에서 인구가 몇 만에 이르는 나라면 큰 편이었고 십만을 넘는 나라가 별로 없었다. 도시국가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그런데 주변부에는 인구 백만을 바라보거나 넘어서는 나라 몇 개가 계속 커나가고 있었다. 상나라 때는 중원 바깥, 외이(外夷)의 지역이던 곳이다. 외이라고는 하지만 농경문명이 자리 잡고 있었고, 황하문명권에 동화되지 않을 뿐이던 곳이 많았다. 주나라 시대 들어 그런 지역을 끌어들인 몇 개 제후국이 ‘슈퍼파워’로 대두한 것이다.


춘추시대 천하질서의 원리를 대표한 구호가 ‘존왕양이(尊王攘夷)’와 ‘계절존망(繼絶存亡)’이었다. ‘존왕양이’, 임금을 받들어 외적을 물리친다는 것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비슷하게 통할만한 구호였는데, ‘계절존망’, 끊긴 것을 이어주고 사라진 것을 남겨준다는 구호에는 춘추시대의 특색이 담겨 있었다.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 단계로 넘어가는 고비에서 끊기는 가문, 사라지는 국가가 너무 많은 시대였다. 세상이 좀 덜 시끄럽고 참혹한 일이 적기 바라는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 ‘계절존망’ 구호였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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