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신자유주의에 함몰하지 않았다.”
조반니 아리기(1937-2009)는 1970년대부터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과 함께 세계체제론을 발전시켜 온 비교사회학자다. 1994년 펴낸 <장기 20세기>로 20세기 미국의 헤게모니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전개 과정을 정리하고 미국 헤게모니의 말기 증상을 살펴본 그는 그 무렵부터 중국의 급격한 발전에 관심을 집중해서 그 특징적 현상으로부터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다음 단계를 내다보는 열쇠를 찾은 것이 이 책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다.
이 책의 목적과 성격을 강진아는 “옮긴이 해제”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 책은 (...)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오늘날에 창조적으로 해석하는 작업, 그리고 중국과 동아시아 부상의 역사적-현재적 의미를 묻는 작업,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그런 만큼 매우 이론적인 서술과 구체적인 서술이 착종되어 있고, 양자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는 이따금 정신을 다시 가다듬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이다. 이미 발표한 논문을 기초로 집필하다 보니 중언부언도 적지 않다. 장과 장 사이의 연관관계는 통독 후에 곰씹어야 겨우 소화할 수 있다. 나의 전공이 중국 근현대 경제사이므로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과제와 관련이 깊다고 하겠다. 따라서 책을 읽으면서 이론적 부분에서 헤맨 것은 여느 독자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조반니 아리기의 치밀하지만 복잡한 논리 전개 방식도 한 원인이다. (537쪽)
우리 사회 독자들에게는 아리기보다 월러스틴의 글이 더 많이 읽혔는데, 월러스틴의 글보다 읽기가 훨씬 더 힘들다. 그런데 자본주의체제의 한계점과 중국 급부상의 의미를 연결한 이 책은 내가 책 소개의 주제로 세운 “자본주의 이후”에 가장 중요한 참고가 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의 소개는 한 차례로 끝낼 수 없다. 오늘은 진행 중인 중국의 변화에 대한 아리기의 관점부터 검토해 보고, 세계체제론의 적용에 관한 설명은 다음으로 미룬다.
무엇이 중국의 ‘마이 웨이’를 가능하게 하는가?
앞서 소개한 훙호펑의 책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에서 앨빈 소는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에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르다가 2000년을 전후해서 국가발전주의로 방향을 돌렸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아리기는 중국이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른 일이 없었다고 본다. 시장 개방, 무역 자유화, 외자 유치 등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방향으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맹목적으로 따라간 것이 아니라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며, 1997년 동아시아(동남아시아 포함)를 휩쓴 경제위기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한국의 경험으로 볼 때 1990년대의 국제자본은 칼자루를 쥔 입장이었다. 워싱턴 컨센서스를 서둘러 따르지 않고 있던 한국은 국제자본의 철수로 디폴트 상황에 몰려 IMF의 칼질을 당해야 했다. 자본을 계속 유치하려면 신자유주의 노선을 충실하게 따라야 했다. 중국이 자기 필요대로 완급을 조절하면서도 자본을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 첫 번째 의문이다.
이 의문에 대한 아리기의 대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화교 자본의 역할이고 하나는 중국 시장의 엄청난 덩치다.
동남아 각지 화교 상인들에게는 언제나 중국 시장과의 접촉이 활동의 중요한 영역이었다. 그런데 중국에 큰 변화가 일어날 때는 평소보다 더 큰 사업 기회를 더 많이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이 커지곤 했다. 20세기 초에 많은 해외 화상들이 신해혁명과 국민당을 지지함으로써 역할을 키우려 했으나 일본의 침략과 뒤이은 공산당의 승리로 좌절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남아시아 화교 자본은 중국의 고립과 각지 내셔널리즘 확산으로 인해 불리한 입장에 놓였지만 경제계에서 그 역량을 꾸준히 키웠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큰 활로를 얻게 된 상황을 아리기는 이렇게 그렸다.
화교 자본은 따라서 일본의 다층적 하청 체계의 국경을 넘는 팽창과 이 지역에서 비즈니스 동업자를 찾는 미국 기업의 수요 증가에서 특히나 수익을 얻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동아시아의 싸고 양질의 인적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더 치열해질수록, 화교는 더욱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가 중 하나로 많은 면에서 미국과 일본 다국적 기업 네트워크를 압도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부와 힘에서 최대의 기회는 1980년대 지역 시장과 세계 시장에 중국 본토가 재통합되면서 찾아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결정적인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대외무역과 투자에 문호를 연 것이다. 그 성공으로 동아시아 부흥의 완전히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었으니, 바로 중국이 다시 지역 경제의 중심이 되는 단계이다. (481쪽)
개혁-개방 초기에 서방 자본가들은 중국의 정책과 투자환경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화교 자본가들은 다른 기준으로 대 중국 투자에 임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 역시 화교 자본가에게 좋은 조건을 제공했다. 그래서 천안문사태(1989) 같은 악재가 터지더라도 최소한의 자본 유치가 가능했고, 서방 자본도 중국을 끝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외국 자본, 중국 노동자, 기업가, 정부 관료의 만남을 주선한 “중매쟁이”는 화교 자본이었다. 이 중매쟁이 역할은 덩샤오핑 치하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대외무역과 투자에 개방하고,k 홍콩-마카오, 궁극적으로 타이완을 “1국가 2체제” 모델에 맞추어 회복하려는 노력에서 화교들의 조력을 구한다는 결정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 동맹은 중국 정부에게 미국-유럽-일본 기업들에 대한 문호 개방 정책보다 훨씬 믿을 만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 상품의 구매와 판매, 이윤의 해외 송금에 대한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들에 시달리자, 이들 외국 기업들은 투자를 중화인민공화국에 발판을 유지할 만큼 최소한의 수준으로 묶어두는 경향이 있었다. 이와 반대로 화교들은 대부분의 규제를 회피할 수 있었다. 현지 관습-습관-언에에 대한 친숙성, 지역 기관들에 후한 기부를 함으로써 강화한 친족 관계와 공동체 연대의 이용, 중국 공산당 관료들로부터 받는 특혜적 대우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외국 기업들이 계속해서 “투자 환경”에 대해 불평을 하는 동안 화교 기업들은 거의 40년 전에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옮겨 간 것만큼이나 빨리 홍콩에서 광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483-484쪽)
1990년까지 중국에 투자된 외국 자본 160억 달러 중 75퍼센트인 120억 달러가 타이완과 홍콩을 통해 들어온 화교 자본이었다. 이로써 중국이 자력 성장의 추동력을 일단 확보하자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기 시작해서 총 투자액이 2000년까지 2000억 달러로 치솟았다. 아리기는 “외국인들이 투자하고 있다면 (...) 그것은 오로지 화교들이 더 많이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의 말을 인용한다. (485쪽) 화교 자본은 중국 외자 도입의 마중물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외국 자본가들이 중국을 외면할 수 없었던 또 하나 이유는 중국 시장의 덩치였다.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부터 중국의 방대한 노동력은 외국 자본에게 매력적인 정복 대상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의 성장과 유지에는 미개발 자원의 개발이 필요하다. 인적 자원의 경우, 미개발 상태에서는 싼 값으로 확보할 수 있지만, 일단 개발되어 정규 노동력으로 조직되고 나면 임금 수준이 높아져 더 이상 높은 이윤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노선의 중요한 목적 하나가 저개발 노동력을 자본주의 체제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목적을 갖고 있는 한 질이 높으면서 저개발 상태의 노동력을 거의 무한정 가진 중국을 외면할 수 없었다.
널리 퍼진 인식과 달리, 중화인민공화국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주요한 흡인력은 중국의 거대하고 저렴한 [노동]예비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세계에 이런 예비군은 많이 있지만, 중국처럼 자본을 끌어들인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우리는 그 주요한 흡인력이 이 예비군의 높은 질에 있다고 주장하려 한다. 보건, 교육과 자기관리 능력이라는 면에서 그러하며, 중국 자체 내에 이러한 예비군의 생산적 동원을 위한 수요 조건과 공급 조건의 급속한 팽창이 결합된 결과이다. (483쪽)
중국은 방대한 노동력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집약적 생산방식을 개발함으로써 이득을 늘렸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개발된 자본집약적 생산방식인 포디즘(Fordism)의 대안을 만들어낸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상하이 근교의 원펑 자동차공장을 소개한다. 한 대의 로봇도 쓰지 않는 이 공장에서 청년 노동자들이 기본적 공구만으로 만들어내는 수제(手製) 지프 트리뷰츠가 한 대 10만 달러 가까운 가격으로 수출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홍호펑의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 제4장 리처드 애플봄의 “대중화권의 거대 하청업체”도 중국 시장의 덩치가 일으키는 힘을 예시해 주었다. 중국을 생산기지로서만 활용하면서 부가가치의 작은 부분만을 떼어주려던 거대자본의 의도가 너무나 커진 생산기지의 힘에 밀려 소비시장으로의 접근로를 내어주는 추세를 보여준 것이다.
개혁-개방 초기에는 방대하고 저렴한 노동력이 매력의 포인트였지만, 경제개발의 진행에 따라 중국 시장의 생산력과 구매력이 점점 더 부각되어 왔다.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고 싶어 하는 세력은 분명히 존재해 왔다. 그러나 그런 세력의 노력이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는 쪽으로 상황이 움직여 온 것은 중국의 부상이 ‘대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개별 자본가에게는 기존의 체제를 지키려는 동기보다 계속 자라나고 있는 거대한 시장과의 접속을 잃어버릴 위험이 더 크게 느껴지도록 된 것이다.
중국의 독자적 발전노선을 구성하는 것들
중국이 독자적인 노선을 견지할 수 있었던 데 대한 또 하나의 의문은 과연 어떤 이념에 입각해서 그 노선을 형성했는가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원리를 지킨다고 공식적으로 표방해 왔지만, 종래 사회주의국가에서 허용되지 않던 정책이 대거 채택되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항’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의 제3장 “중국의 경제 기적과 그 궤적”에서 앨빈 소는 중국이 1990년대까지 신자유주의 노선을 충실히 따른 증거로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 시장 확대, 중앙정부의 약화, 지역 격차 심화, 사유화-법인화 정책, 사회서비스의 상품화, 시장 자유화의 심화 등 1980년대에서 90년대의 현상을 들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국가발전주의로 방향을 돌렸다고 보았다.
아리기는 위와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는 동안에도 중국정부의 정책은 ‘강탈 없는 축적’의 원리를 지켰다고 본다. 불평등이 확대되는 상황 속에서도 생산수단의 집중과 독점을 억제했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실현한 매체로 1980년대 후반에 보급된 향진(鄕鎭)기업(TVEs)을 그는 중시한다.
향진 기업이 개혁의 성공에 기여한 점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로 향진 기업의 노동 집약적 방침은 도시 지역으로 대규모 이주 증가 없이 농촌의 잉여 노동을 흡수하고 농촌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하였다. 게다가 1980년대 노동 이동은 대부분 농민들이 농경에서 벗어나 농촌 집체 기업에 일하러 가는 이동이었다. 둘째로 향진 기업은 상대적으로 규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수많은 시장으로 진입하자 경쟁 압력이 전면적으로 증가하여, 국영 기업뿐 아니라 모든 도시의 기업들이 업무를 향상시켜야만 했다. 셋째로 향진 기업은 농천 조세 수입의 주요 원천이 되어, 농민들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었다. 세금과 각종 부과금이 농민 불만의 최대 원천이었으므로, 향진 기업은 이렇게 해서 사회 안정에도 기여했다. 게다가 예전에 농민에게 부과되었던 세금과 각종 비용을 향진 기업이 떠맡으면서, 농민들을 약탈적인 지방 정부로부터 보호해주었다. 넷째로, 가장 중요한 핵심적 측면에서 이윤과 임대 수익을 현지에 재투자함으로써 향진 기업은 국내 시장의 크기를 확대했고, 새로운 단계의 투자, 일자리 창출, 분업의 순환을 위한 조건을 창출했다. (499-500쪽)
민간기업의 확장에서는 신자유주의노선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민간기업과 나란히 향진기업을 육성해서 비중이 점차 줄어드는 국영기업과 함께 3개 섹터로 기업 활동의 증가에 임했던 것이다. 주민 소유로 지방 정부가 관리하는 향진기업은 이윤 극대화라는 목적에 앞서 지방의 권익을 지키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불평등의 심화를 억제하고 지방 간 계층 간의 균형을 어느 수준에서 유지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충격이 중국에게 심각하지 않았던 중요한 이유도 향진기업의 역할에 있었던 것으로 아리기는 본다.
향진기업의 육성이 큰 효과를 가져온 조건은 개혁-개방 이전의 사회주의 정책으로 형성된 것으로 본다. 개혁-개방 시대와 사회주의 시대 사이의 연속성을 아리기는 강조하는데, 그 연속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리 하나를 향진기업의 성공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왕후이(汪暉)의 관점을 지지하며 그 말을 인용한다.
“첫째, 사회주의 전통은 국가 개혁에 대한 내부 억제력으로 어느 정도 기능했다. 국가-당 체계가 주요 정책을 변경할 때마다 이 전통과 대화하면서 실행해야만 했다. (...) 둘째, 사회주의 전통은 노동자, 농민과 다른 사회 집단들에게 국가의 부패나 불평등한 시장화 조치에 항의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정당성 있는 수단을 주었다. 이리하여 문화혁명의 부정이라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중국의 유산을 다시 활성화한 것은 미래의 정치 발전을 위한 통로를 열어주었다.” (505-506쪽)
마오쩌둥 시대의 유산보다 아리기가 더 중시해 온 것은 전통시대의 유산이다. 중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이 19세기에 이르러 유럽과 다른 발전경로를 걷게 되었다는 견해는 아리기 외에도 안드레 군더 프랑크(<리오리엔트>(이희재 옮김, 이산 펴냄, 2003, 원서는 1998)와 케네스 포머런츠(<The Great Divergence>, 2000) 등이 세계체제론의 중요한 내용으로 펼쳐 온 것인데, 다른 기회에 상세하게 다루겠지만, 이 책에서 아리기가 강조한 특징을 우선 짚어두겠다.
책 제목에서 ‘애덤 스미스’를 내세운 것은 자본주의 이론의 원조로 알려진 스미스가 사실은 자본주의 발전경로를 유일한 길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뜻이다. <국부론>이 나온 1776년 시점에서 스미스가 중국 경제수준을 높이 평가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경제발전 방식을 “자연스러운 경로”라 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에 대한 통념을 넘어선 이해를 통해 중국의 경제현상에 대한 더 적절한 시각을 얻을 수 있다는 아리기의 주장을 이남주는 이렇게 요약했다.
중국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관계에 대해 가장 도적적인 주장을 한 아리기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그의 핵심주장은 첫째, 중국경제가 역사적으로는 물론이고 최근까지 비자본주의적 발전노선을 따르고 있으며, 둘째, 비자본주의적 발전노선을 걷는 중국의 부상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 및 기존 헤게모니 국가의 쇠퇴와 겹치면서 세계체제를 더 평화롭고 평등한 질서로 변화시킬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이 중에서도 아리기는 전자의 주장을 입증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두 번째 주장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리기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론에 이론적 영감을 주었다고 간주되는 애덤 스미스를 호출해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론을 구성한다. 즉 스미스는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1)분업과 시장을 경제발전 및 국부의 주요 원천으로 보기는 했지만 이와 동시에 시장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재생산하는 정부의 역할과, 정부가 시장을 사회적이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통치도구로 삼는 행위를 지지했다. (2) 무역과 생산에서 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겨우 보상할 수 있는 최저 수준까지 이윤이 하락하도록 자본가들끼리 경쟁시키는 것을 정부의 중요한 역할로 간주했다. (3) 독립적인 생산단위 사이의 분업을 지지했을 뿐이지 하나의 생산단위 내의 노동분업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이상의 세 가지 점을 근거로 아리기는 스미스가 논의한 시장경제와, 자본이 무제한적인 축적요구(M-C-M')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구조를 파괴하고 재조직해 가는 자본주의 논리를 구별한다. (“지본주의 세계체제 속의 중국 ‘사회주의’, 수사인가 가능성인가” <창작과비평> 2015 봄, 18-19쪽)
나는 <국부론>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아리기가 이 책의 제1장과 제2장에 인용한 부분을 봐서는 그 주장에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렇다면 스미스에 대한 광범위한 오해가 오랫동안 계속된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세계에서 자본주의 원리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 때문에 그 발전경로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것이다. 그런 오해가 상식으로 통하는 상황은 경제학을 비롯한 제 학문분야의 연구방법에도 편향적인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을 여기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리기가 기왕의 통념을 넘어서는 데, 그리고 새로운 관념을 도입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제1장의 뒷부분(58-67쪽)에서 스기하라 가오루의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 개념을 소개하면서 각주에 “이 절에서 스기하라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기원, 진화와 한계에 대한 포괄적인 모델을 구축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근면혁명이란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동아시아 국가들이 노동집약적 생산기술의 발전을 통해 자원 부족의 상황에 대응하면서 생활수준을 완만하게 향상시킨 경제 발전경로를 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경로가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보는 아리기의 관점에서 다른 발전경로의 사례로 내놓기에 적절한 개념이다. 자연자원보다 인적 자원의 개발에 중점을 두는 이 발전경로는 유럽의 자본주의 발전경로와 같은 급속한 팽창성을 보이지 않으면서 장기간의 지속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었다. 19세기 후반의 서세동점 현상은 경제체제의 우월성보다 군사력의 발전을 동반하는 자본주의체제의 특징에 기인한 것으로 아리기는 본다.
근면혁명의 효과가 서세동점의 상황 속에서도 계속된 점을 아리기는 중시한다.
스기하라에 따르면, 경제적 향상을 추구하면서 비인적 자원보다 인적 자원을 동원하는 이 같은 성향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국 경제 내에서 서구 기술을 통합하려고 하던 때에조차도, 계속해서 동아시아 발전 경로의 특징이 되었다. 그러므로 1880년대까지 일본 정부는, 일본이 토지와 자본 모두 부족하지만 노동은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질이 높다는 인식에 입각하여 산업화 전략을 채택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전략은 “전통적인 노동 집약적 기술의 적극적 이용, 전통 산업의 근대화, 그리고 요소 부존량의 상이한 조건을 감안하여 서구 기술을 신중하게 적용하도록” 장려하였다. 스기하라는 이 이종 교배의 발전 경로를, “서구 경로보다 노동을 더 전면적으로 흡수하고 이용하면서 기계와 자본으로 노동을 대체하는 것에는 덜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노동 집약적 산업화”라고 불렀다. (61쪽)
이런 효과는 1950년대 이후 일본경제의 발전에서도 특징적인(서양과 다른) 요소로 확인될 수 있을 것이며, 최근 중국경제의 발전에서도 중요한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근면혁명이란 제한된 자연자원에 노동력 투입을 늘림으로써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데 요체가 있는 것이므로 노동의 가치를 확립하고 노동 윤리를 강화해주기 때문에 동아시아 지역 노동력의 높은 질을 설명해주는 적절한 조건으로 보인다. 이런 유력한 관점이 최근에 와서야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도 종래의 경제학이 인적 자원보다 물적 자원을 중시해 온 추세에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1974년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김명환 등 옮김, 까치글방 펴냄)로 세계체제론이 출범할 때는 환경과 자원 문제 등 현대문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부각되고 있을 때였다. 그 전에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밝히려는 ‘종속 이론’ 같은 시도에서 더 넓은 문제의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이었다. 그 후 세계체제론이 계속 확장되어 온 것은 새로 나타나거나 새로 인식되는 문제들을 포괄하기 위해서였고, 냉전 종식 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계에 대한 고찰이 정밀해지면서 중국 등 동아시아의 변화로부터 “자본주의 이후”의 실마리를 찾는 노력이 중요한 한 갈래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아리기의 이 책은 2007년 시점에서 이 새로운 탐구방향의 성과를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스기하라나 왕후이처럼 세계체제론에 얽매이지 않은 동아시아 학자들의 관점을 중요한 참고 대상으로 제시하는 점이 눈에 띈다. 2008년 미국의 금융공황 이후 대안 모색의 노력이 부쩍 늘어난 점을 생각하면 세계체제론의 명제들을 다른 각도에서 뒷받침하는 연구가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 소개 작업의 앞부분에서는 세계체제론의 중요한 내용을 소개하는 데 치중하겠지만, 뒷부분에 가서는 최근에 새로 나타나고 있는 시각들, 특히 중국에서 제기되는 시각들을 소개하는 데로 비중을 옮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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