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서 연초에 걸쳐 “자본주의 이후”를 아홉 차례 연재했습니다. 문명사 공부를 통해 얻은 생각 중 현실정치에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을 정리해 달라는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실의 부탁과 지원에 의해 진행한 작업의 성과였습니다. 몇 가지 새로운 시각의 도입을 반겨주는 독자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지금까지 내놓은 생각을 더욱 넓히고 다지는 작업을 금년 중 <프레시안북스>를 통해 진행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제 공부는 범위의 확장에만 치중해 왔기 때문에 치밀한 담론을 완성하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자본주의 이후”에 관한 생각도 목적의식을 갖고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덤불을 헤치며 생각 넓히는 길을 찾다 보니 우연히 마주친 셈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을 막상 한 차례 정리해 놓고 보니 비슷한 생각을 국내외에서 발표해 온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개 저와는 다른 경로를 통해 그런 생각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가지 길을 통해 비슷한 생각에 이를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생각이 사회의 광범위한 동의를 얻을 만한 잠재력을 가진 것이 아닌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생각에 이른 여러 경로를 두루 점검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하나의 ‘비전’을 위한 발판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든 것입니다.
생각의 초점은 ‘자본주의체제의 한계’와 ‘대안으로서 동아시아 전통의 가치’에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명제에 관한 주장을 담은 책들을 소개하는 형태로 작업을 진행하려 합니다. 저 자신 생각의 근거를 확충하는 작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미래를 향한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서 When China Rules the World 는 2009년에 나왔다. 서론 격인 제1장 “다시 헤게모니가 이동한다”의 3개 절 제목 “흔들리는 미국의 위상”, “서구의 근대 독점은 끝났다”, “중국의 부상은 다르다”에서부터 저자의 관점이 드러난다. 서양의 세계 지배를 최근 수십 년간 대표해 온 미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으며, 앞으로 중국의 역할이 크리라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그리 치밀하지 않은 책이다. 참고문헌 목록에 5백여 건 문헌이 실려 있는데, 주석은 책 전체에 40여 개뿐이다. 주석 형태가 아닌 인용도 본문 중에 꽤 있지만, 각 참고문헌의 중요성을 알아보기에 턱없이 모자란다. 영문 외의 참고문헌이 거의 없고, 그 때문이겠지만 중국문명에 관한 서술에서 피상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 많다.
그래도 소개할 가치가 크다고 본 것은 “미국의 몰락과 중국의 굴기”란 명제를 명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2년 앞서(2007) 죠바니 아리기(1937-2009)가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 in Beijing, 강진아 옮김, 길 펴냄, 2009)에서 조심스럽게 내놓은 명제다. 아리기는 1970년대부터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함께 ‘세계체제론’을 개발하며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 전망을 밝혀온 사회학자로, 미국 헤게모니 이후 중국의 역할에 대한 전망을 내놓은 이 책은 앞서 낸 <장기 20세기>(The Long 20th Century(1994), 백승욱 옮김, 그린비 펴냄, 2014) 및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Chaos and Governance in the Modern World System(1999), 최흥주 옮김, 모티브북 펴냄, 2008)와 함께 그의 3부작으로 꼽힌다.
공교롭게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가 나온 이듬해에 뉴욕 발 금융공황이 터지고 중국이 확보해 놓은 탄탄한 경제력이 부각되면서 이 책이 엄청난 각광을 받았다. 강진아는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옮긴이 해제”(569쪽)에서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과 서구는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 예견되는 국제 역관계의 재편, 근대 문명이 맞닥뜨린 생태적 위기에 적절한 해답을 학문적으로 열심히 구하려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리기의 주장은 과격하지만 개연성 있는 돌파구를 제시한 듯하다. 더구나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일파만파로 번져나가면서,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신호가 바로 과도한 금융화로 인한 금융위기라는 아리기의 말은 마치 예언처럼 미국 출판시장을 폭격했다. 아리기가 위기를 단언하며 이 책을 출간한 것은 금융위기가 터지기 몇 달 전 아직은 미국 경제가 거품으로 호황을 구가하던 무렵이기 때문이다. 이후 우후죽순처럼 유사한 주장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09년 6월 출간되어 영어권 출판계를 강타한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은 마치 이 책의 읽기 쉬운 보급판 같다. (...) 모두가 중국의 패권은 이루어져도 세계 평화를 어지럽힐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새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문명을 가져올지 모른다고 당당히 주장했던 아리기. 너무 어렵게 썼기 때문에 이 책은 지식인들 위주로 읽혔지만 결국 출판계의 흐름마저 바꾸었다.
중국에 대한 아리기의 관심은 만년에 이르러서야 심화되었다. “너무 어렵게 썼”다고 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태도 때문이다. 아리기의 연구 본령은 세계체제론이고, 중국에 대한 관심은 곁가지였다. 미국 헤게모니 이후 중국의 역할에 대해 아리기는 가능성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 것이다.
그에 비해 마틴 자크는 2008년의 금융공황이 많은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는 전제 아래 중국의 미래 역할에 대해 훨씬 강한 믿음을 갖고 서술에 임했다. 중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에서 아리기가 최소주의(minimalism)라면 자크는 최대주의(maximalism)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리기의 책에 앞서 자크의 책을 훑어보는 것이 주제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리기처럼 좌고우면하지 않는 자크의 책은 주제를 명쾌하게 내놓고 지금의 상황을 세밀히 설명하는 저널리즘 측면에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다.
세 가지 기본 명제
제1장에서 제기한 세 가지 명제부터 검토해본다. 저자는 제일 먼저 “흔들리는 미국의 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군사력과 정치력은 경제력에 달려 있다.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지적했듯이, 국가가 세계적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유지하는 능력은 궁극적으로는 생산 능력에 달려 있다. (...) 결국 경제력은 냉혹한 척도가 된다. 하지만 점점 쇠퇴해 가는 제국주의 권력은 항상 이러한 사실을 부정한다. 1918년 이후 영국이 그랬다. 상황을 잘못 읽고 미국이 새로운 세기를 지배할 것이라고 믿는 부시 행정부의 행동으로 보건대 미국 역시 동일한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사실 쇠퇴하고 있으며 그 위상도 추락하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는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던 많은 이들에게 뒤늦게나마 미국이 결국 쇠락의 길을 가게 될 것임을 보여 주었다. (17-18쪽)
세계체제론에서는 기존 헤게모니 국가가 쇠퇴할 때 일반적인 대응책으로 군사력과 금융 부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꼽는다. 이 견해의 의미와 타당성에 대해서는 아리기와 월러스틴 등의 책을 소개할 때 면밀히 살펴보겠다. ‘헤게모니’ 역시 세계체제의 핵심 요소로서 흔히 말하는 ‘패권’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데, 이것 역시 나중으로 미룬다. 저자도 세계체제론에 의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개략적인 인용에 그치고 있다. 그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 전체의 30%가 넘던 미국 GDP가 20% 전후까지 떨어질 만큼 생산력이 떨어졌는데도 군사비는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과 비슷한 거액을 계속해서 지출하고 있는 상황을 놓고 미국의 어두운 미래를 읽는다.
저자는 이어 “서구의 근대 독점은 끝났다”고 주장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격차가 클 때는 선진국이 절대적 모델로 인식되었지만, 격차가 줄어드는 데 따라 각 지역 고유의 역사와 문화에 따른 차이가 뚜렷해진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은 경쟁 원리와 시장 원리, 기술 개발을 받아들여 높은 빌딩을 짓고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휴대 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점점 동질성을 갖추는 모습으로 수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에 기반한 가계, 정부, 기업의 제도는 이와 같은 세계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요인이 되었다. 더구나 개발도상국들이 경제 성장을 달성할수록 고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서구 사회를 모방하려는 경향도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세계화는 일방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즉 미국이 독주 체제를 구축하면서 국제 무역 회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나 최후의 승자는 동아시아 국가들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중국이 가장 많은 수혜를 입었다. 결국 세계화의 과정은 서구의 주도로 전 세계가 동질화하는 수렴 작용과 각 지역을 기반으로 토착화하는 발산 작용 간의 끝없는 긴장 상황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21쪽)
유럽식 근대화 외의 다른 방식 근대화의 가능성은 여러 연구자들이 제기한 것인데, 자크의 시각은 이 가능성의 의미를 강화시켜 준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는 데 따라 문화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거니와, 문화적 자산이 풍성한 동아시아 사회들, 특히 중국이 독자적 원리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이 유럽 모델에 만족할 수 없는 또 하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유럽 모델을 추구하는 사회들은 선진국 ‘따라잡기(catch-up)’를 목표로 한다. 그런데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점하는 중국이 선진국의 에너지 소비 수준에 접근해 간다면? 기존 모델로는 자원과 환경 문제의 파국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하다. 중국은 강대국이 되더라도 강대국 노릇을 오래 하려면 새로운 형태의 강대국을 목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명제 “중국의 부상(浮上)은 다르다”에서 저자는 유럽중심주의가 무너진 후 중국이 세계 질서의 중심적 역할을 맡을 전망의 기초를 세운다. 네 가지 지표를 내세운다. (1) 국민국가 아닌 문명국가로서의 오랜 전통. (2) 문명의 화합력에 근거한 포용적 민족정체성. (3) 독특한 국제질서로서의 조공 제도. (4) 국가의 단일성. (27-29쪽)
18세기 말 서유럽에서 시작된 근대화는 19세기를 통해 중부유럽을 거쳐 동부유럽으로, 그리고 바다 건너 미국과 일본으로 확산되었다. 20세기 후반에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 여러 사회에서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성공’하는 나라들의 ‘부상’이 이어졌고 중국의 부상도 그 뒤를 잇는 것으로 통상 여겨졌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은 지금까지 다른 나라들의 부상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중국 전통의 새로운 음미
유럽중심주의의 한계와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에 관해서는 세계체제론을 다룬 여러 책에서 살펴볼 것이고, 이 책에서는 중국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집중적으로 검토해 본다.
저자는 경제학자답게 경제 측면에 중점을 둔다. 우선, 18세기 이전 유럽의 경제력이 중국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우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재닛 아부-루고드의 <유럽 패권 이전>(Before European Hegemony(1989), 이은정 옮김, 까치글방 펴냄, 2006)과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Reorient(1998), 이희재 옮김, 이산 펴냄, 2003) 등의 책으로 국내의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미 알려져 있는 주장이다.
여러모로 볼 때, 1800년의 중국 경제는 무기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활력이 넘쳤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 사회는 경쟁력이 있었다. 농민들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혁신을 추진하는 능력이 있었고 상인들도 날카로운 통찰력이 있었다. 이러한 장점은 중국의 역사적 시련기에는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있다가 1978년 이후에 다시 전면에 대두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과도 관련이 있다. 1800년 세계 경제의 중심은 유럽에만 있지 않았고, 오히려 유럽과 아시아, 북미와 중남미가 세계 경제의 축을 나누어 가지고 있었으며, 중국과 인도가 가장 큰 경제대국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계 경제는 과거처럼 다시 다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47쪽)
중국의 국가체제와 경제체제가 일찍부터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다고 저자는 본다. “중국은 예수가 탄생할 때 이미 근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는가 하면(104쪽) 농산물의 장거리 무역 비중에서 중국 시장이 일찍 발달한 사실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40쪽) 중국은 중세 유럽과 같은 긴 봉건 시대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농민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과 상업의 이른 발달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경제권력’이 확대되지 않은 것이 근대화의 과제 앞에서 유럽과 다른 길을 걷게 된 차이점이었다.
중국은 시장과 교역의 발달에 제약을 가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농수산물 시장 경제가 발달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지원했지만, 소금과 해외 무역 독점권을 가진 상인들이 출현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산업의 출현 가능성에 열띤 반응을 보였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지역 간의 경쟁이 불안정을 낳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유럽에서는 국민국가들 간에 경쟁이 벌어졌다. 중국과 서유럽 국가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게 있게 된 것은, 서유럽에서는 떠오르는 상인 계급이 실질적인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단체를 구성한 반면, 중국에서는 그렇지 못한 상태로 지금까지 흘러왔기 때문이다. 중국 상인들은 독립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정부의 후원 하에 대규모 상행위를 보장받는 데 만족했다. (45-46쪽)
중국에서는 경제권력만이 아니라 일체의 민간 권력을 허용하지 않는 중앙집권적 전통이 진 시황 때부터 확립되어 있었다. 근대 유럽의 국민국가가 ‘경쟁의 주체’였던 것과 달리 중국의 국가는 ‘질서의 주체’였기 때문에 국가와 인민 사이 ‘중간권력’의 발전을 억제했던 것이다. 국가 성격의 이 차이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에서는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엘리트 집단이 국가와 직접 경쟁을 벌인 일이 없었다는 점도 중국과 유럽의 또 다른 차이점이다. 10세기 중반 봉건 귀족 집단이 해체된 이후 중국에서는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을 누리는 집단이 등장하지 못했다. 뒤이어 등장한 중국의 관료 집단은 강력한 권력과 특권을 누렸으며, 그러한 권력과 특권의 범위는 국가가 임명하는 지위에 따라 정해졌다. (...) 유럽의 지배 엘리트가 전쟁과 같은 천재지변이 없는 한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중국의 관료 집단은 국가에 의해 충원되어 국가의 일부가 되었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을 요구받았다. (115-116쪽)
유교사상으로 체계화된 중국의 국가론이 1949년 이후의 ‘공산중국’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맹자는 국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백성은 반란을 일으킬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황제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이러한 원칙을 천명으로 이해했으며, 공산당 치하에서는 계급투쟁이라는 명분하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부르주아 계급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인식되었다. (...) 중국에서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권위주의 혹은 위계질서에 바탕을 둔 것으로, 정치권력과 공식적인 대의기구에 바탕을 둔 서구의 전통과 비교할 때 매우 이질적이다. (...) 이러한 통치를 위해 유교 사회에서는 과거 시험으로써 유능한 관료를 선발했지만 공산당은 필요한 인재를 당이 모집했다. 마지막으로 유교 전통이 유지되었던 사회와 마찬가지로 공산당의 엘리트들은 스스로를 독립적인 권력 집단의 구성원으로 보지 않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부속물로 생각했다. (132-133쪽)
‘중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서방의 비판은 투철한 대의민주제도가 아니라는 데 초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비서방국에서 대의민주주의의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 앞에서 중국의 성공적 국가 운영이 계속된다면 중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도 달라질 여지가 있다. 유럽중심주의의 퇴조에 따라 ‘근대적’ 가치관에서 배제되었던 각 지역의 문명전통이 부각되는 가운데 중국의 풍부한 전통이 새로 음미될 요점의 하나다.
중국의 전통에서 또 하나 저자가 중시하는 것은 조공제도다. 서방 헤게모니 쇠퇴 후의 새로운 세계질서 형성에 조공제도가 어느 정도 모델 노릇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조공제도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제도라기보다는 문화적, 도덕적 제도였다. 황제는 주변 국가에 강제력을 동원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상징적인 지배권은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이처럼 강제성이 떨어지는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다양하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인구를 지배할 수 있었다. (360쪽)
무엇보다도 조공제도는 중국의 지배적 지위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불평등관계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국가들의 세력이 강해지고 중국이 힘을 잃게 되자 유럽 중심의 베스트팔렌 체제가 식민지 제도를 앞세워 동아시아로 들어왔다. (361쪽)
중국의 경제 규모와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매우 크고 강력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 국가들과도 현저한 불평등관계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밖의 국가들도 중국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 주로 자연 자원을 생산하는 개발도상국들이 (...) 중국과 이러한 국가들 사이에 새로 정립될 관계를 기존의 서구와 이러한 국가들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중국과 서구의 차이점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현 상황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규모부터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관계는 식민지주의나 신식민지주의 관점에서 파악하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조공제도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496-497쪽)
‘불평등관계’가 국가의 내부관계와 외부관계를 관통하는 유교적 원리였던 것이다. 효과적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국가 구성원들의 권리와 책임을 세밀히 규정하는 신분체계가 필요했다. 주변 국가들과의 평화 유지를 위해서도 강약과 대소에 따라 각자의 위상을 규정하는 조공체제가 효과적이었다.
‘만인평등’의 민주주의와 ‘만국평등’의 만국공법 체제(베스트팔렌 체제)는 명목상의 평등을 내세워 약자 보호의 필요를 부정하고 강자의 전횡을 정당화함으로써 현실의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일이 많았다. 그것을 부분적 일탈로 볼 수 있을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평등의 원리가 일찍부터 강자에게 이용되어 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사람들에게 ‘평등’ 주장이 낯설게 들린 것처럼 지금은 ‘불평등’ 주장이 이상하게 들린다. 그러나 중국이 1인1표의 대의민주주의 없이도 국민을 대충 만족시키면서 발전을 계속하고 약소국을 상대로 종래의 강대국보다 만족스러운 관계를 넓혀나가는 데 따라 “평등이 밥 먹여주나?” 하는 생각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은 이제 수렴 끝, 발산 시작!
마틴 자크는 세계화의 과정을 “전 세계가 동질화하는 수렴 작용과 각 지역을 기반으로 토착화하는 발산 작용 간의 끝없는 긴장 상황”으로 본다. 중국이 1860년대 양무(洋務)운동 이래 20세기 말까지 서양을 모델로 산업화-근대화에 매진해 온 것은 ‘수렴’ 작용이고 21세기에 들어서서는 ‘발산’ 단계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라고 그는 본다.
지금까지 중국은 인내심을 가진 아웃사이더로서 인사이더가 되기 위해 충실히 노력해 왔다. 중국은 새롭게 떠오르는 세력으로서 기존의 국제적 규범을 따라야 했으며 특히 현재 초강대국인 미국의 입장을 존중하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 선진국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며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주식 시장과 자본 시장의 원리를 이해하며 최신 기술을 받아들이는 등 근대를 향한 발걸음에도 강력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다시 말해, 중국은 앞에서 설명한 정치적인 요구와 마찬가지로 세계화를 향한 경제적, 기술적 요구에 따라 기존 국제 기준에 맞추고 규범을 따르기 위해 끊임없이 모방하고 수렴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러나 수렴 현상은 전체 그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중국이 성장하면 할수록 이와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다시 말해, 수렴하는 힘에 대한 반작용으로 기존의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발산하는 힘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중국은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선진국과 국제 사회가 준수하는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있다. 국민국가의 옷을 입은 문명국가 중국은 내재된 본성과 정체성을 점점 더 드러낼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 간 관계에서는 과거의 조공 제도가 현대적인 형태로 부활된 체제가 현재의 베스트팔렌 체제를 서서히 대체할 것이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은 이미 세계 경제의 움직임과 권력 구조를 변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567-568쪽)
중국이 수렴에서 발산으로 돌아서는 자세를 대표하는 말이 ‘굴기(崛起)’다. 2003년 10월 원로학자 정비젠이 ‘화평굴기’란 말을 쓰고 두 달 후 원자바오 총리와 후진타오 주석이 공식석상에서 이 말을 씀에 따라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중국 지도부는 ‘화평굴기’란 말을 더 쓰지 않고 ‘화평발전’이란 말을 대신 쓰기 시작했다. ‘굴기’(rising)는 강대국으로 일어서면서 국제적 권력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개념인 데 반해 ‘발전’(development)은 단순히 중국의 위치가 상승한다는 뜻이다. 당과 정부에서 굳이 ‘굴기’란 말을 삼가는 것은 외부의 경계심을 피하기 위한 뜻으로 이해된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중국의 인상은 ‘중후장대(重厚長大)’다. 큰 중력을 가진 사회이기 때문에 외부에 대한 흡인력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천하체제를 이끌어온 긴 역사가 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양이 이끌어온 세계체제에 비해 더 안정성 있는 체제가 중국을 중심으로 서서히 형성되어 갈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보인다.
위 인용문 중에 동아시아 지역의 조공제도 부활의 전망이 들어 있다. 중력의 작용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물리학의 ‘제곱 반비례 법칙(inverse square law)’으로 본다면 중국의 영향력이 가까운 지역에 특히 크게 미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중국이 이끌 세계체제는 ‘만국평등’의 베스트팔렌 체제가 아니라 과거의 천하체제 같은 불평등 관계가 동아시아 지역에서부터 퍼져나갈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동아시아’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일본, 타이완 등 미국의 입김이 강하고 중국에 대한 경쟁심을 가진 동북아시아보다 동남아시아의 아세안(ASEAN) 국가들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변화에 앞장서고 있는 사실을 저자는 중시한다.
아세안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개편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에 바람직한 행동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동북아시아 국가에 비해 훨씬 가난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서로 분열된 모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아세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 1990년대 중반에 미국은 APEC의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먼 추억이 되었다. 중국의 제안으로 2000년 합의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를 조성할 때도 미국이 배제되는 현상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
동아시아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위해 아세안이 도화지를 제공했다고 한다면, 실제 그림을 그린 것은 중국의 외교력이었다. 당시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의 리더로 부상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점점 강해지는 중국의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경제력이었다. 이것이 동아시아의 변화를 이끌고 질서를 재편하는 진짜 원동력이었다. 정치 논리에 따라 경제 통합이 진행되는 유럽 연합과는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경제가 변화를 이끌어 내고 정치는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368-369쪽)
2002년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신뢰가 크게 늘어났다. 1997-1998년과 같은 경제위기가 닥칠 때 중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물론이고, 중국의 산업-경제 정책에 주변국에 대한 배려가 있을 것을 믿게 되었다. 조약의 규정을 넘어서는 신뢰 덕분에 호혜적 협력관계가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본다.(366-367쪽)
한국은 일본에 비해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잘 발전시키고 있는 것으로 저자는 본다. 지금의 정치상황에서는 바로 수긍되지 않는 점도 있지만, 멀리 떨어진 지점으로부터의 시각이 장기적 추세를 더 잘 보여주는 면도 있다고 생각되어 옮겨놓는다.
한국이 북한과 중국에 대해 가지는 입장과 미국에 대해 가지는 입장은 한국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다. 한국은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북한과의 화해를 강조하고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해서는 완고한 입장을 취하고 미국과 가까워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 그러나 장기적으로 한국은 중국과 더욱 가까워지고 미국과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어쩌면 한미 동맹이 사라질 정도로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향후 10년 이내에 일어나기 어려우며, 아마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380쪽)
저자는 중국의 헤게모니 획득을 필연의 일로 보지만, 그것이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될 과정으로 본다. 따라서 그의 전망이 적중할지는 짧은 시간 내에 확인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그가 가리킨 방향에 부합하고, 이 책이 나온 후 5년 동안 그 추세는 더욱 분명해졌다. 당장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새로운 전망을 검토함에 있어서, 그 전망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는 조건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근대적’ 가치관에 길들어 있고, 학문 연구방법도 그런 가치관에 얽매여 있다. 저자는 우리가 미국과 유럽 역사의 중요한 사실을 상식으로 갖고 있으면서 더 중요한 중국사의 사건들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 2세기 동안 세계 역사가 유럽이 제공한 설명과 개념으로 서술되었다면 다음 세기에는 중국이 비슷한 역할을 할 것이다. 즉 세계사는 중국이 제공하는 완전히 다른 설명과 개념에 의해 서술될 것이다. 분열이 아닌 통합, 국민국가가 아닌 문명국가, 베스트팔렌 체제가 아닌 조공 제도, 중국인들의 독특한 인종관, 진보와 보수 간이 아니라 중앙 집권과 지방 분권 간의 정치적 역학 관계 등의 개념이 담길 것이다. 진이 전국 시대를 종식시키며 중국 최초로 통일을 이룩한 기원전 221년은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이나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1789년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연도가 될 것이다. (489쪽)
저자는 이 책에서 자기 전망의 타당성을 독자에게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고,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중요한 성과는 전 세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증대라는 이 전망이 함축하는 의미를 넓고 깊게 밝혀낸 데 있다. 이 변화가 자본주의 세계체제 안에서의(예컨대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헤게모니 이동과 차원이 다른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아리기도 지적했지만, 저자는 변화의 의미를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내용을 예시했다.
끝으로 안세민의 훌륭한 번역을 치하한다. 넓은 범위의 전문성을 담은 책의 번역에서 용어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인데 아주 잘 해냈다. 두어 가지 마음에 걸린 것이 기억에 남아있지만(‘유럽’을 ‘서구’라고 한 곳이나 ‘식민지배’라 하면 좋을 것을 ‘식민지주의’로 옮긴 정도) 읽는 데 지장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역자가 옮긴 다른 책도 구해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어떤 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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