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대한 성찰’이란 의미에서 역사는 인류문명의 초기단계부터 정치적 의미를 갖고 행해진 것이었다. 주술사의 푸닥거리는 부족이 공유하는 과거의 기억을 내용으로 삼아 부족의 결속력을 지켜주는 기능을 가졌다. 농업문명의 발전에 따라 문자를 향유하는 지배층이 통치의 지혜를 찾아내는 거울로서 역사를 교양의 중요한 부문으로 삼았다.

 

인쇄술의 발달로 대중이 문자를 향유하게 된 산업사회에서는 근대국가 이데올로기의 공급원으로서 역사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국민의 단결력과 동원력을 높여줄 체계적 연구방법의 개발로 근대역사학이 만들어지고 국민과 대중의 교육에 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었다. 역사의 연구와 교육이 국가적 사업이 된 것이다.

 

국가적 사업이라면 국가의 목적에 적합한 방향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공립학교건 사립학교건 모든 공교육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것이므로 국가의 통제를 원천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방식의 통제가 적합한 것인가를 따질 일이다. 교과서의 성격은 통제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기에는 국가의 성격도 반영된다.

 

교과서 통제의 대표적 방식이 국정과 검인정이다. 국정은 교과 내용을 국가가 직접 결정하는 것이고, 검인정은 민간의 결정에 어느 정도의 범위를 국가가 설정하는 방식이다.

 

국정에는 검인정에 비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이념적 장점은 통제가 철저하다는 것이고, 기능적 장점은 비용 절감에 있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는 이념 통제의 필요가 없는 과목의 교과서도 모두 국정으로 했다. 경제가 빈약한 상황에서 비용 절감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의 이념적 장점에는 양면의 날이 있다. 국가주의 관점에서는 철저한 통제가 바람직하지만 민주주의 기준으로는 반대다. 한국의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옮겨온 추세에는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이 모두 작용한 것이다.

 

검인정 제도를 국정으로 바꾸자는 것은 국가의 발전 방향에 역행하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화 주장에 솔깃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수정주의’ 역사교과서 출현 과정을 소개해주고 싶다.

 

1970년대까지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의 건국을 무조건 정당화하고 아랍과의 갈등을 상대방 책임으로만 떠넘기던 것이 역사 교육만이 아니라 학계의 기조이기도 했다. 교과서는 모두 이런 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백 년 전 팔레스타인은 비어 있다시피 한 땅이었고 그 땅을 유대인들이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사들이며 주변 아랍인과 도와가며 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오만한 아랍인들은 유대인을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려고 유엔의 결정까지 무시하면서 이스라엘을 없애기 위한 전쟁을 걸었다. 이스라엘은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의지 하나로 침략을 물리쳤으며, 팔레스타인 난민은 이스라엘이 쫓아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떠난 것이다.”

 

1980년대 들어 이스라엘 역사학계에 수정주의가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등장으로 곤경에 빠진 아랍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유대인 측의 잘못된 판단이나 무리한 정책을 반성하려는 노력이 일어난 것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학계에서 당당한 위치가 확보되었다.

 

이 관점에 입각한 교과서 편찬이 1994년 시작되고 1999년 완성되어 교육 현장의 주류가 되었다. 역사교과서 교체는 민주국가로서 이스라엘의 발전과 서로 맞물린 현상이었다. 새 교과서가 민주주의 발전의 산물이면서, 또한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발판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에 바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이 나라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더 훌륭한 발전의 길을 열어놓기 위해 검인정 제도를 지키고 싶어 할 것이라 믿는다.

 

 

어느 학교 학보사에서 '시론'을 청하기에 쓴 글입니다. 청탁서에 원고료 표시가 없기에 궁금하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청탁서 양식에 안 나와 있어서 적지 못했다고, 알아보고 알려드리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알려주기 전에 얼른 써서 보내면서 "원고료를 알려주면 쓸 마음이 없어질까봐 서둘러 썼습니다." 했지요. 그런거 궁금해 하는 게 너무 궁상 떠는 걸까?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