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동맹 집행위원회에서 결의한 “동맹 목전의 정치주장”이 12월 21일에야 이남 언론에 입수되어 보도된 모양이다. 자료를 입수하고도 출처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11일에” 채택한 것이 “연안으로부터” 전달되었다고 모두에 소개했는데, 자료 끝에는 “1945년 11월 ?일” “조선독립동맹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이 기사가 12월 11자로 분류된 것도 “11일에” 채택된 것으로 착각한 때문인 듯하다.


본문 모두에서 “동맹 제2차 대표대회에서 작성한 강령”이 신 형세와 국내 사정 파악에 미흡했기 때문에 “임시로 우리 동맹의 대체적인 투쟁방향을 지시하는 테제를 작성”했다고 한다. ‘제2차 대표대회’란 것은 8월 15일 종전과 9월 3일 연안 출발 사이에 열린 것이고, 지금의 테제는 11월 하순 국내에 도착해서 작성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긴 글이고 대부분 빤히 짐작되는 내용이지만 그대로 옮겨놓는다. 가장 늦게 국내 무대에 등장했고 특히 남한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정치세력의 주장을 원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 모습을 한 차례 살펴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在 延安 朝鮮獨立同盟에서는 11일에 집행위원회의 결의로서 ‘동맹 목전의 정치주장’을 채택하여 국내 국외의 신 정세에 적응할 투쟁방향을 구체적으로 전 맹원에 지시한 바 있었는데 연안으로부터 그 全文이 처음으로 당지에 전달되었는데 그 전문 내용은 如左하다.


“일본 파시스트의 무조건 투항으로 인하여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되었다. 이는 조선에도 대변화를 일으켰다. 이에 따라 동맹 제2차 대표대회에서 작성한 강령은 오늘 신 형세에 합당치 못하게 되었고 새로운 강령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긴급한 사정은 대회의 소집을 불가능케 하고 더구나 국내사정을 충분히 파악한 구체적 자료를 갖지 못하였다. 그래서 집행위원회로서는 과거 강령의 기본정신과 새로운 형세에 따라서 임시로 우리 동맹의 대체적인 투쟁방향을 지시하는 테제를 작성하여 전 맹원에 주기로 한다.


1.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분투함.

본동맹의 기본 목적은 조선독립을 쟁취하는데 있다. 조선에서 일본 파시스트의 세력은 이미 기본적으로 타도되었으나 그 잔여는 아직도 조선인민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생활 각 방면에 광범히 뿌리 깊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금후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가) 일본제국주의 及 매국적들의 일체 재산(토지 기업 등)을 몰수하여 반동세력의 그 경제기초를 소멸할 것

(나)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일체 노예적 통치제도의 잔여를 철저히 숙청하여 버릴 것

(다) 조선 사회생활 내부에서 아직도 그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전쟁죄범을 즉시 처벌하여 반민족분자의 일체 활동을 제지시킬 것


2. 조선민주공화국을 건립하기 위하여 분투함

새로운 조선국가 운명은 전인민의 의사와 수요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동맹은 장차 세울 조선단체문제에 있어 민주공화제를 주장한다. 그 특징으로서 이하 몇 개 조건을 지적한다.

(가) 전 국민의 남녀 재산 교육 등에 차별이 없이 진정하고 보편적이며 평등한 선거제에 의하여 새로운 정권이 건립되어야 할 것이다.

(나) 국민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며 인권을 존중할 것

(다) 국민의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 사상 及 파업의 자유를 보장할 것


3. 경제에 있어 부강한 새 조선을 세우기 위하여 분투함.

과거 30여 년간 일본 파시스트의 조선인민에 대한 경제적 약탈은 조선경제생활을 완전히 파산시켰다. 우리 동맹은 조선경제를 즉시 회복 발전시켜서 누구나 다 행복스럽게 잘 살 수 있는 경제정책을 주장한다. 그러기 위하여

(가) 일본 파시스트 及 매국적한테서 몰수한 대기업을 국영으로 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것

(나) 경작하는 농민에게 토지가 있어야 한다. 농업을 현대과학적 기초위에 개량하며 농민의 부담을 감소함으로써 농민경제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킬 것

(다) 국가에서 私人企業의 발전을 보장할 것

(라) 일체 寄損雜稅를 철폐하고 합리적 누진세를 실시할 것

(마) 국가의 조절에 의하여 노동대중의 생활을 개선 향상시킬 것

(바) 실업구제에 대한 적당한 방책을 세우며 사회보험제를 실시할 것


4. 조선민족의 새로운 문화를 세우기 위하여 분투함.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계승 발전하며 현대과학지식의 광범한 보급으로서 전 국민의 문화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우리 동맹은 아래와 같은 몇 가지를 주장한다.

(가) 조선민족문화의 역사적 유산과 현대 과학에 대한 연구와 보급 사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며 학자와 예술가의 생활을 보장할 것.

(나) 의무교육 제도를 실시하며 광범한 국민교육을 일으켜 문맹을 퇴치할 것.


5. 전 민족의 총 단결을 얻기 위하여 분투함.

조선민족의 완전한 독립과 자유스럽고 평화 부강한 민주공화국을 건립하려면 이는 어떤 계급이나 당파나 1개인의 사업이 아니다. 또 이렇게 하여서는 이를 실현할 수도 없다. 이것은 전 민족이 힘을 합쳐서만 비로소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동맹은 오늘 조선현실에 적합한 또 오늘 우리 동포가 수요하는 공동한 정강을 기초로 전 민족이 총 단결하여 새 조선을 건설할 것을 주장한다. 또 이렇게 함으로서만 우리 민족의 완전한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며 조선민주공화국을 건립할 수 있는 것이다.


6. 서로 국가의 독립과 평등지위를 존중하며 서로 국가인민의 이익과 우의를 증진하는 기초위에서 다른 국가와 민족 간에 우호관계를 맺음으로서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얻기 위하여 분투함.”

1945년 11월 일

朝鮮獨立同盟執行委員會

<중앙신문> 1945년 12월 21일자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1조에서는 (다)항에서 “아직도 그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전쟁죄범”의 처벌을 명시한 것이 눈에 띈다. 광범위한 ‘친일파’가 아니라 구체적 ‘전쟁죄범’으로 좁혀서 표적으로 삼은 것은 해방 100일이 지난 시점에서 친일파 중에도 악질 친일파라 할 수 있는 전쟁죄범들이 아직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국내 사정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2조의 3개항은 당시의 어느 정치세력이나 똑같이 표방하던 것이다. 심지어 공산당과 한민당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조선민주공화국”을 표방한 것이 눈에 띈다.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을 회피하는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공을 장악하고 있던 박헌영 일파는 우익과의 대결 못지않게 좌익 내의 헤게모니 쟁탈에 열을 쏟고 있었다. 10월 8일 개성에서 김일성과 만났을 때 공산당 북조선분국 설치를 마지못해 승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이 한국의 중심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이북의 공산주의자들을 자기보다 하위에 묶어놓으려고 한 것이다.


인공을 통해서도 전국의 지방 인민위원회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지만, 행정조직의 성격을 가진 인민위원회는 현실적 조건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북조선 5도행정국으로 북조선 별도의 총괄조직을 만들게 되었다. 인공이 현실적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입국한 독립동맹은 그래서 ‘조선인민공화국’ 아닌 ‘조선민주공화국’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공산주의를 드러나게 강조하지 않는 독립동맹의 취향도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3조에서는 (나)항에서 ‘토지국유화’ 대신 ‘경자유전(耕者有田)’을 주장하는 등 국가의 큰 역할을 강조하되 시장경제를 보장하는 사회민주주의 수준의 경제정책을 내놓았다.


4조, 특히 그 (가)항의 문화정책 강조가 특이하다. 공산당 비당원인 김두봉 주석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민족주의의 표현에서 어느 우익 정당보다 더 적극적이다.


“전 민족의 총 단결”을 지향한 5조는 1935년 7차 코민테른 이후의 ‘인민전선’ 노선 및 이를 응용한 중국 공산당의 ‘신민주주의’ 노선과 통하는 맥락을 보여준다. “자유스럽고 평화 부강한 민주공화국”이라는 목적의식에서 해외 공산주의 노선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국내 사정에 입각한 진지한 자세라는 인상을 받는다.


공산주의자가 주축인 독립동맹의 강령을 극우파가 주축인 한민당이 9월 6일 발기회와 9월 16일 결당식에서 거듭 발표한 정강정책과 비교하면 놀랄 만큼 차이가 적다. 궁극적 지향이 어디에 있든 당시 한국 민심의 공통분모가 어느 쪽에나 담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 綱領

1) 조선민족의 자주독립국가 완성을 기함

2) 민주주의의 정체 수립을 기함

3) 근로대중의 복리 증진을 기함

4) 민족문화를 앙양하여 세계문화에 공헌함

5) 국제헌장을 준수하여 세계평화의 확립을 기함


◊ 政策

1) 국민 기본생활의 확보

2) 호혜평등의 외교정책 수립

3) 언론 출판 집회 결사 及 신앙의 자유

4) 교육 及 보건의 기회균등

5) 重工主義의 경제정책 수립

6) 주요 산업의 국영 又는 통제 관리

7) 토지제도의 합리적 재편성

8) 국방군의 창설

매일신보 1945년 09월 17일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겉으로 나타난 정강정책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정당의 성격을 드러낸 것은 결국 그 행동이었다. 심지연은 <한국민주당 연구 1>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민당은 임정 지지와 건국준비위원회 타도를 선언하고 창당되었으며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강령과 정책들을 표방했다. (...) 그러나 창당 이후 걸어온 한민당의 족적을 분석해볼 때 민주적 강령과는 배치되는 점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군정 당국과의 밀착은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농지개혁법 심의 과정에서는 지주층의 대변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반민족행위특별법 처리 과정에서의 미온적인 태도는 친일 집단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창당 이념과의 이러한 배치는 당론의 분열을 초래하였고 성장 과정에서 많은 이탈자를 낳게 했다. (송남헌 <해방3년사 1> 128-129쪽에서 재인용)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