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 아니라 ‘독후감’이란 사실부터 밝힌다. <해방일기> 작업에 활용하는 책들에 관한 생각을 앞으로 간간이 쓸 텐데, 모두 서평 아닌 독후감이 될 것이다.


서평이 아닌 이유를 우선 이 책을 예로 들어 밝히자면, 내 관심이 이 책의 일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제3부 “해방 이후”다. 전체를 읽기는 읽었다. 그러나 다른 부분은 제3부 이해에 도움을 얻기 위해, 그리고 재미있어서 그냥 훑어보았을 뿐이다. 중심 내용인 문학론은 내게 어깨너머 구경거리일 뿐이다. 책의 특징 몇 가지에 대한 소감을 말할 수는 있지만, 책 전체를 평할 입장은 아니다.


1999년 말에 나온 <벽초 홍명희 연구>의 저자 강영주는 국문학자다. 그리고 이 책은 하나의 작가 연구다. 문학에 문외한이라도 작가 연구란 작품을 통해 작가를 바라보는 순수한 시각에서부터 작가의 인생 전체를, 그리고 나아가 그 시대를 이해하려는 포괄적 시각까지 넓은 스펙트럼이 있으리라는 것 정도는 안다. 이 책은 매우 포괄적인 시각의 연구다. (물론 그러니까 나도 읽은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그 시각을 밝혔다.


“이 책에서는 벽초의 삶을 그의 개인사에 국한하지 않고 그가 살았던 시대 속에서 총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처럼 한국근현대사의 맥락을 부단히 의식하면서 그의 삶과 사상 편력을 온전히 복원하고 평가하려면, 문학사뿐 아니라 민족운동사, 언론사, 사상사, 정치사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연구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필자는 국문학자인 자신의 전공 영역을 넘어설 뿐 아니라 대부분 미개척 분야에 속하는 연구 주제들과 정면 대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 학계의 기존 성과를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학과 역사와 사상을 넘나드는 일종의 학제간 연구를 시도한 이 책이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4쪽)


내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내 관심 대상인 해방공간 정치사의 많은 연구 주제들이 “미개척 분야에 속하던” 11년 전에 한 문학 전공자가 이만큼 안정된 시각을 보여준 것이 놀랍다. 특히 좌익과 우익의 실제 의미에 대한 저자의 이해는 현대정치사의 전문 연구자들도 깊이 참고로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제간 연구’의 장점을 잘 살린 성과로 본다. 한 인물의 작품활동과 생활방식을 배경으로 그 인물의 정치활동을 바라볼 때, 정치활동만 쳐다봐서는 포착하기 힘든 의미들이 눈에 들어올 수 있다. 홍명희의 경우 생활과 활동의 범위가 넓으면서도 자세의 일관성이 뚜렷한 인물이기 때문에 이 장점이 더 두드러진다.


근현대사 연구에서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안병직의 논설을 연전 <뉴라이트 비판> 작업 중에 접한 일이 있다.


“근현대사의 연구는 고대사나 중세사와는 달리 역사 과목 이외에 해당 연구 분야의 이론을 잘 습득해야 수행할 수가 있는데, 지금의 한국 사학계처럼 다른 학문 분야의 역사학 전공자들과의 학제적 교류를 기피하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한국근현대사의 체계와 방법” <시대정신> 40호, 262-263쪽)


안병직의 여러 주장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지만, 이처럼 지당한 말씀에는 트집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 대목을 인용해 놓고 이렇게 덧붙였다.


“두 가지 방향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지적이다. 하나는 근대사회가 전근대사회보다 구조가 엄청나게 복잡해졌기 때문에 전통시대 연구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관점을 포괄하지 않으면 총체적-실효적 파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근대 들어 분과 학문들이 늘어나 전통 시대에 역사학이 맡고 있던 역할을 나눠 맡아왔다는 점이다.” (<뉴라이트 비판> 175쪽)


이 책은 이 주장의 타당성을 적절하게 확인해주는 책이다. 벽초는 전통 시대의 ‘선비 정신’을 나름대로 굳게 지킨 인물의 하나였지만, 그보다 100년 전의 전형적 선비와 비교한다면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활동을 한 사람이다. 역사학이건 문학이건 한 가지 ‘분과 학문’만으로는 그 활동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 인물에 대한 총체적 파악은 그가 관계된 정치현상에 대한 실효적 파악을 뒷받침해 준다. 그가 왜 <임꺽정>을 썼는지, 그 작품에 무엇을 담았는지를 발판으로 삼아 그의 정치적 선택들을 바라볼 때, 그 선택의 주체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발판이 없다면 그 선택을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수동적 반응으로밖에 이해하기 어렵다.


학제간 연구의 의미를 잘 살려서 훌륭한 성과를 거둔 것을 치하한다. 그 훌륭한 성과는 내게 적지 않은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물해줬다.


초등학교 때인 1960년경 <임꺽정>을 탐독할 때부터 벽초는 내게 놀라운 사람이었다. 근년 한국근현대사에 관심을 모으면서 새로운 놀라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 놀라움이 상상 밖으로 커졌다. 그 재능의 놀라움에서 시작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초탈하면서도 간곡한 자세에 이르기까지.


벽초가 놀라운 인물이었고, 또 나름대로 즐거운 인생을 산 사람이기 때문에 놀라움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놀라움과 즐거움을 전달해준 저자의 능력과 노력에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제목에 표시한 것처럼 ‘연구’를 표방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평전’의 효과도 충분히 담은 책이다.


놀라운 내용의 구체적인 예를 두 가지만 들겠다. 하나는 벽초의 부친이 한일합방 당일에 군수로 있던 금산 관아에서 목을 매 40세 나이로 순국한 분이었다는 사실이다. 장남이던 벽초의 마음속에 23세 때의 그 일이 평생 깔려 있었으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모든 일이 다시 보이게 된다.


또 하나는 1914년 11월부터 3년간 남양(주로 싱가포르)에서 지낸 사실이다. 1912년 아버지 복상을 마친 후 상해로 건너간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라니! 영국인의 지배 아래 자라나고 있던 무역도시 싱가포르의 장기 체류가 그의 마음에 어떤 요소들을 입력시켰을지는 참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독후감’을 쓴다 해놓고 쓰다 보니 자꾸 ‘서평’ 흉내를 내고 있다. 직업병이다. 이제라도 좀 ‘독후감’다운 신변잡기를 붙여놓겠다.


초등학교 때 <임꺽정> 읽은 얘기를 했는데, 집에 <임꺽정> 6책이 있었다. 표지를 뜯어낸 상태로, 1948년 을유문화사 간행본이었을 것이다. 당시 금서였지만 어머니가 국어학 교수였기 때문에 소장이 허용되었던 모양인데, 읽으라고 일러주지는 않고 그냥 집에 놓아두셨다. 하기야 종이에 글자 찍어놓은 거라면 백과사전도 탐독하던 시절이었으니, 방앗간 앞에 “참새 식당”이라고 간판 써 붙일 필요야 없었겠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걸쳐 몇 해 동안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삼국지>와 함께 내 유소년기의 시간을 제일 많이 빨아먹은 책이다. 얼마 전 30여 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의형제’편과 ‘화적’편 내용은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초년에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다가 나이 마흔이 넘어 직업적 글쓰기를 시작한 내가 새 직업에 웬만큼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임꺽정>에서 문장 감각을 익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제자이자 어머니의 후배인 강신항 선생님이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싶다 하여 몇 달 전 어머니 계신 요양원으로 모셔간 일이 있다. 모시러 가서 차에 태우자 쇼핑백 하나를 먼저 건네주며 “책 반납을 대신 받아주게.” 하셨다. <임꺽정> 네 책이 들어 있었다. 전쟁 전 당시 학부생이던 강 선생님에게 “우리말의 어휘 공부는 이 책보다 더 좋은 교재가 없소. 열심히 읽어보시오.” 하며 빌려주신 책인데,(김성칠 <역사앞에서>(창비 펴냄, 2009 개정판) 343쪽) 전쟁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반납을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일단 반납을 받아두었다가 얼마 후 형들과 의논하고 강 선생님께 도로 갖다드렸다. 기념품으로. 어렸을 때 보던 책은 지금 다시 찾지 못하고 있지만, 이 네 권이 강 선생님 마음에 비쳐드리는 의미를 짐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