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연락을 준 이문숙 선생을 화정역에서 만나 함께 갔다. 이 선생은 나보다 몇 해 아래니까, 어머니가 50대 중반일 때 국문과를 다닌 제자가 이제 50대가 되어 찾아온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 제자 중 나보다 연상인 분들은 집으로도 찾아온 이들이 꽤 있는데, 내 연하로는 뜸했다. 이 선생은 내가 기억하는 서너 명 중 하나다.
가는 길에 이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세대 제자들은 어머니에게 "엄한 선생님", "다가가기 힘든 선생님"의 인상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얼른 듣기에 뜻밖이었다. 어머니는 70년에 동생이 대학 들어가자 "해방 선언"을 하셨다. 자식들이 다 컸으니 이제 근엄한 체하지 않고 "생긴 대로 놀겠다"는 선언이셨다. 그래서 학생들과도 그 전보다 거리를 줄이셨을 것 같은데?
곰곰 생각해 보면 그 무렵에 교수 노릇이 힘들어지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72년부터 2년간 해외에 다녀오신 후 어머니는 이대에서 '운동권 교수'로 딱지가 붙었다. 사상이 아무리 온건하더라도 할 말 못 참는 사람은 딱지가 붙지 않을 수 없는 시절이었으니까. 상류사회 지향주의로 나가는 학교 분위기도 불편하셨을 것이고. 정년을 몇 해 앞두고서부터 <어원 연구>에 건강이 위험할 정도로 집중하신 데도 학교생활의 다른 면이 원활치 못한 이유가 작용했을지 모른다.
이 선생은 어머니가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실 것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초년에 만난 사람보다 중년에 만난 사람 기억하기가 더 힘든 법이라는 이 선생의 의견이 내게도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근래 내 글에 나타난 어머니 모습을 보면 명확하게 기억은 못하셔도 맥락은 대충 떠올리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가졌다. 그 맥락 속에서 옛 제자로서 선생님께 이야기를 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문숙'이란 특정인으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옛 제자와 옛 스승 사이의 대화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내게도 생각되었다.
현관에서 마주친 원무실장님이 지금 형님이 와 계시다고 한다. 미국의 큰형이야 7월에나 오기로 되어 있고, 신선 같은 작은형이 아직 모자간의 인연은 지키고 있는 모양이다. 설 며칠 전에 다녀간 얘기를 들었는데, 그만하면 아들 구실이 됐다.
이 선생은 작은형도 마주친 적이 있어서 다행으로 여긴다. 어머니가 퇴직 후 마명리 작은형 집에 계실 때면 이 선생이 졸업한 십여 년 후일 텐데 그때까지도 찾아뵙곤 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오는 길에 이 선생이 엽서 한 장을 보여주면서 알아보시지 못할 경우 제자라는 증거로 어머니가 써 보내신 엽서를 들이대겠다고 했었다. 아마 90년대 초에 오고간 엽서 같다.
노인들이 모두 거실에 나와 앉아 피거스케이팅 중계를 보고 있는데, 맨 뒷줄에 어머니와 형의 뒤통수가 보인다. 이 선생에게 먼저 가서 부딪쳐 보시라고 권해놓고 볼일 본 뒤 5분 후 합류해 보니 사제간 신분 확인은 대충 되어 있는 것 같다. 형도 있고 제자도 있어 느긋하신지 십여 일만에 나를 보시는 반응은 미지근하신 편이다.
며칠 전 원장님 메일에서 어머니가 아들 찾으시더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조금 긴장했었는데, 와 뵈니 그리 아쉬운 기색이 없으시다. 지난 주부터 간병을 맡고 있는 여사님께 물어보니, 지난 토요일 유별나게 방문객이 많을 때 딱 한 번 "우리 아들은 왜 안 와?" 하셨다는데, 아들 찾는 일이 없던 분이 찾으셨기 때문에 특기사항이 되었던 모양이다. 물리치료사 김 선생은 어머니가 근래 신체의 불편 느끼시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얘기해 주고, 간호사 서 선생도 어머니가 쾌활한 기분을 계속 유지하고 지내셨다고 얘기해 준다. 한 가지 문제라면 오전이든 오후든 낮잠을 한 차례씩 주무시는 대신 밤에 깨어 계실 때가 많다는 것인데, 당신도 별로 힘들어 하지 않으시고, 여사님에게 별 부담을 주지도 않으신다고 한다. 원장님이 없어도 다들 어머니 상태를 잘 설명해 줘서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김연아의 금메달이 확정된 후 작은형이 먼저 떠나고, 이 선생과 함께 복도 가 테이블에 어머니를 모시고 앉았다. 여사님이 의자를 챙겨주며 "이 자리가 할머니 전용석이예요." 일러준다. 오후 햇볕이 좋은 자리다. 햇볕을 참 좋아하신다. 오늘 날씨에는 따뜻한 실내에서 온 몸에 햇볕을 받으며 오래 앉아 있기가 꽤 더운데도 햇볕을 피하려 하지 않으신다.
이 선생은 80대 노부모를 모시는 데 이력이 나서 그런지 응대를 참 수월하게 잘한다. 그래서 어머니도 편안하게 대하시는데, 아무래도 정확한 신원 파악이 안 되어 그러신지 아주 편안하지는 않으신 것 같다. 노래가락 화법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으신다. 반야심경 독경도 노래가락인데, 틀이 잡힌 솜씨다. 내가 모시고 있지 않을 때 혼자서도 수시로 암송을 하시는 건지?
"우리 아들 바보"론으로 이 선생을 몇 번 빵빵 터뜨려주셨는데, 이 선생이 녹음을 해놓았으니 나중에 받아보고 녹취록을 올리든지 녹음 내용을 올리든지 하겠다. 녹음을 해놓았다니 시원찮은 기억력 쥐어짜고 싶지 않다. 한 시간 남짓 청중을 즐겁게 해주다가 쉬고 싶다 하셔서 방에 눕혀 드리고 보니 꽤 노곤하신 기색이었다. 이 선생 접대가 제법 힘이 드셨던 모양이다. 저녁 식사 전에 한 숨 주무시는 게 좋겠다 싶어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언제나와 같이 선선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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