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자암에는 연천봉(連天峰)에서 내려오는 맑은 봄바람에 백화만발입니다.
오늘은 초이레 대법회 날이라 법당에 모인 대중들은 큰스님을 모시고 봄기운에 가득 찬 예불을 정성껏 모셨습니다. 오늘 큰스님 법문은 마침 묘법연화경의 서품(序品)으로 다시 새로 시작하는 날이라 대중의 환희심도 컸습니다.
법화경은 우리가 아직 그 가르침의 깊은 뜻은 다 모른다 해도 다른 경전과는 달리 어려운 교리용어보다 비유담이 많고 우리가 일상 속에서 쓰는 말로 되어 있어서 우리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는 경전입니다.
오늘 법화경 독송과 큰스님 설법이 유별히 기쁘고 감동 깊었던 것은 천지에 가득 찬 봄기운의 덕택과 함께 사실은 지난 한 달 동안 미국이 시작한 이라크 전쟁으로 하여 새삼스럽게 ‘인간은 왜 전쟁을 해야 하나?’하는 인간성의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것에서 해방이 된 것 같은 기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직 전쟁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은 한 지역의 좁은 범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설킨 복잡미묘한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가령 홍수가 난다든지 지진이 난다든가 하는 천재지변이면 그래도 뒷수습이 쉽지만, ‘전쟁’이라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재앙의 진행과 그 후유증은 그렇게 쉽고 간단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이 골치 아픈 문제에서 해방이 된 것 같은 기쁨을 느끼고 있는가?
그것은 ‘전쟁이 왜 일어나는가? 일어난 전쟁은 어떻게 해야 빨리 그치는가?’에 대한 대답을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은 내가 새로 발견한 대답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부처님께서 고구정녕 가르쳐 주신 것을 내가 눈, 귀를 막고 순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도 답답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가르침을 주셨건만, 현대의 우리들은 그 ‘마음’의 중요성보다 물질을 더 높은 데 두고 그것이 개인의 차원이거나 국가의 차원이거나 엄청난 숫자의 부(富)를 축적하지 않으면 마음의 넉넉함을 얻지 못하는 무슨 결핍증 환자가 된 듯이 느껴집니다. 미국이 얼마나 부강한 나랍니까?
그런데 왜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궁지에 몰린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지난 해 9월 11일에 뉴욕의 무역센터 건물이 한 허리가 두동강난 사건에 대하여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사건이라고 표현할 만큼 온 세계가 경악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미국은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태반을 이루는 나라입니다. ‘마태복음’ 5장 산상교훈에서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훈을 예수는 주셨습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라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시오. 오히려 누가 당신의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그에게 다른 편 뺨마저 돌려대시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하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원수를 사랑하고,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은 하늘에 계신 여러분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독교를 신봉하는 서양사람들은 2천년 동안 들어왔습니다.
그러기에 로마교황청은 이번에 여러 번 미국에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리고 UN이사회에서도 미국이 내세우는 이라크가 소유하고 숨겨놓고 있다는 ‘대량학살무기’의 발견까지 전쟁도발을 만류했건만 미국은 듣지 않고 영국과 연합하여 대 이라크전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왜 ‘명분없는 전쟁’이란 말을 들어가면서 선제공격전쟁을 벌였는가?
그 후에 세계도처에서 미국에 대한 반전론이 치열하게 일어났고 미국 내에서조차 처음에 미국의 작전 미스로 반전논이 치성했지만, 개전 20일이 지난 이즈음은 전쟁을 일찍 마무리 짓는다고 할 만큼 형세가 미국에게 유리하게 되니 반전논이 수그러졌다고 합니다.
이번 미국·이라크 전쟁에 내가 그렇게 마음이 쓰였던 것도 다음 차례로 우리 한반도의 위기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미국은 이라크·이란 등과 함께 ‘악의 축(軸)’이라고 불렀으니 말입니다.
미국이 왜 그렇게 전쟁광처럼 설쳤는가? 진짜 전쟁의 동기는 이라크에 있는 유전(油田)에 있었다고 하니 불교적 용어로 하면 탐·진·치(貪瞋痴) 삼독이 그 마음에 꽉 들어찼기 때문입니다. 모든 전쟁의 원인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해소할 약은 무엇인가? 이 삼독의 해독제.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옵니다.
인간이 공생(共生)주의 철학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진리입니다. 과거 성인들의 가르침이 전부 ‘사랑’과 ‘어짐〔仁〕’과 ‘자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전체가 함께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인간 및 모든 존재의 운명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 나머지 성인들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참으로 감사하게도 동양 천지에 태어나서 천지는 나와 동근(同根)이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동체(同體)라는 느낌을 저 소나무가지를 울리는 태고의 바람소리와 밤을 새워 계곡을 씻는 물소리가 하나로 화합하는 그 속에서 느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소동파(蘇東坡)의 시 그대로입니다.
山色豈非淸淨身 溪聲卽是廣長舌
색은 어찌 법신불(비로자나불)이 아니며, 시냇물 소리는 곧 부처님 설법이로다
우주에 꽉 차있는 생명을 느끼는 것이 참선이고, 진리〔眞如佛性〕와 하나가 되는 것이 선정(禪定)입니다.
이 진리를 가르쳐 주신 부처님! 그리고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부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는 오직 이 한마디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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