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22. 10:35
어제 찾아뵙기 전에 꼭 여쭤보려고 준비한 주제는 역사 발전의 법칙이었다. 나는 역사 공부에서 '법칙'을 논하는 데 대한 반감을 키워 왔는데, 그 반감이 어떤 근거를 가진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역사의 법칙에 대한 반감은 근대성에 대한 반감에서 번져나온 것이다. 과학에 대한 강한 믿음은 근대적 사고의 핵심이다.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인간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바탕을 두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인간의 존재를 어떤 법칙이든 법칙을 통해 받아들이려 한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성립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컴퓨터의 등장이 근대적 사고를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시뮬레이션 기능 때문이다. 생태 연구 시뮬레이션 결과에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식물,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을 폐쇄된 공간에 넣고 분포의 변화를 추적한 시뮬레이션에서 똑같은 초기 투입으로도 전혀 다른 결과들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경로 의존성이라는 요인으로 그 차이를 설명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새로운 요인을 파악해 설명을 넓혀 나가는 것이 '과학적 설명'의 요건은 충족시키더라도 '근대과학적 설명'에서는 벗어나는 것 같다. 근대과학적 설명이라면 면도날의 법칙이 요구하는 것처럼 단순명쾌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아버지도 서울이 점령된 며칠 후의 일기(50. 7. 7)에서 점령 당국이 요구한 진술서의 "사상 경향" 항목에 "역사적 필연성을 믿었으나 성격이 다우지지 못하여 온건한 학구로 지냈음"이라 써 낸 일을 적었다. 마르크시스트 사관이 요구하는 역사의 "법칙"에 대한 믿음까지 따라가지는 못해도 "필연성"에 대한 믿음으로라도 성의를 보여야 했던 상황으로 이해된다. '과학성'을 숭상한 것은 마르크시스트 사관만이 아니라 근대 역사학에서 보편적 현상이었다. 환원주의적 근대과학의 자세가 사료를 다루는 데는 몰라도 역사의 해석에까지 적용된 것은 일종의 '유사과학'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근대적 성향에 대한 반발로 역사학의 과학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는 것 또한 지나치는 문제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근래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청한 것인데, 역시 선생님도 많은 고민을 해 오신 문제였다. 과학성에 대한 과신을 경계하면서도 믿음을 키워오신 대상은 있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역사 발전의 '논리'라고 표현하셨는데, 설명을 들은 후 내가 그것을 '원리'라고 부르면 어떨까 여쭈니 잠깐 생각해 보시고 일리 있는 표현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생각 들은 것을 이 자리에서 세세히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미묘한 주제이기 때문에 직접 글로 정리해서 보여주지 않으신 것을 제3자에게 정확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 설령 말씀하신 내용을 그대로 녹취해서 옮겨놓는다 하더라도 선생님의 뜻을 제대로 나타내는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숙제 한 덩어리를 더 쌓아놓았다. 법칙이든 논리든 원리든 역사학의 뼈대에 대한 생각을 익히는 데 애를 써야겠다. 과학에 대한 근대적 맹신을 비판하는 데 만족하고 지내온 생각을 하니, 참 속 편하게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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