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31. 12:43
 


지난 7일 다녀온 뒤 23일만에 갔다. 중국 다녀올 때를 빼곤 최장 결석 기록이다. 그 사이에 세 번이나 갈 예정을 세워놓았다가 당일 아침에 취소했다. 그 동안 일이 너무 힘들어, 겨우 원고 보내고는 탈진해서 길에 나설 엄두가 안 나는 상태가 되고, 조금 쉬고 나면 다음 원고가 마음놓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제 겨우 고비를 넘긴 것 같다.

덕분에 어머니가 나를 그리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 얼굴이 보이니 벙긋, 입이 벌어지시는데, 닷새만에 보실 때나 한 달만에 보실 때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음식도 사람도 있으면 즐기시되 없다고 괴로워하지 않으시는 것이 분명하다.

노랫가락 화법이 전보다 더 탄탄하시다. 단둘이 앉았을 때는 노랫가락을 덜 쓰셨는데, 오늘은 평상 화법으로 잘 돌아오지 않으신다. 가락의 범위가 그리 넓지 않지만, 내용은 구애가 없으시다. 그 때 그 때 하고 싶은 말씀을 아쉬움 없이 다 담으신다. 내용을 미처 다 담지 못해 끄트머리에서 가락이 흐트러지는 일도 오늘은 거의 없다. 시인으로 나서도 꿀릴 데가 없으시겠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안 왔느냐고 따지지 않으심은 물론 마음 상한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으시지만, 말씀하시는 내용을 보면 느낌이 아주 없지는 않으신 것 같다. 너 참 착하다, 욕심 없다, 겸손하다 등등 셋째 아들 추켜올리는 말씀이 한참 계속되었다. 이렇게 듣기 좋은 말 해주는데도 니가 자주 안 올 거야? 하는 기세다. 아마, 나타날 때쯤 되었는데도 안 나타나니까 생각나실 때가 있고, 나타나면 이런 말 해줘야지 하고 준비해 두신 것도 같다. 요양원 식구들 붙잡고 리허설을 하신 것일지도 모른다.

"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행복하단다. 더 바랄 수 없이 행복하다." 하시는 데서 절정에 올랐다. 준비해 두신 대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행복' 여부에 대해 긴장된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살짝 비틀어봤다. "어머니, 행복하신지 어떤지는 몰라도 참 편안하신 것 같아요. 거기다 행복까지 하시다니 더 좋네요."

역시 멈칫하시고 잠깐 평상 화법으로 되돌아오신다. 준비되어 있지 않던 주제에 생각을 집중하시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 편안한 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지..." 잠깐 오락가락 몇 마디 하신 다음 다시 노랫가락으로. "어머니, 노래 참 잘 부르시네요." 했더니. "그럼요, 이게 내 직업인 걸요~ 노래 하나야 잘 부르지요~" 하시기에 "가수가 되셨군요, 어머니." 하니까 노랫가락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으신다. "가수가 뭐냐?" "직업적으로 노래 부르는 사람이요, 어머니." 하니까 와하하! 웃으신다. 이런 파안대소가 오늘은 여러 차례 있었다.

복도 가의 테이블에 내내 앉아 있었다. 말씀이 조금 뜸해졌을 때 반야심경 암송을 권하려고 "어머니, 반야심경..." 하는데 벌써 외우기 시작하신다. 낭송이 갈수록 유창해지셨는데, 오늘은 힘까지 잘 들어가신다. 다 외우시고는 낭송이 잘된 데 흡족해 하시는 기색이다. 금강경을 가져와 한 꼭지씩 번갈아 읽는 것도 이제 습관이 되신 듯, 한 꼭지 읽으신 뒤에는 내가 읽도록 눈길로 재촉하시고, 내가 한 꼭지 끝내면 자연스럽게 뒤를 이으신다.

몇 꼭지 지나 내가 읽고 있을 때 한 할머니가 곁에 와 "여기 앉아도 돼요?" 하고는 함께 앉아서 어머니에게 말을 거는데, 치매가 심한 분인 듯 말이 오락가락하고, 언사가 좀 거칠다. 그런데 어머니가 응대를 참 잘하신다. 다른 할머니들한테 깍듯하게 대하는 것과 달리 말을 탁탁 놓기도 하며 기세부터 압도하는 태도를 보이신다. 찍자 붙어봤자 남는 게 없겠다 싶은지 금세 도로 일어나 갔는데, 그 다음 어머니 반응이 놀라웠다. 저만큼 멀어진 분을 흘낏 쳐다보고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야, 참..." 하시는 것이었다.

맞다, 다니면서 얼핏얼핏 봐도 '문제가 많은' 분들이 몇 분 계시다. 그걸 어머니는 다 파악하고 있으면서 적절한 대응방법을 강구해 놓고 지내시는 것이다. 진짜 갖출 것 다 갖춘 사회생활을 하시는 거다. 스스로 '행복' 여부를 생각하시는 데도 주변의 이런저런 분들 모습이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에스터 엄마에게서 또 선물이 왔는데 사진틀과 과자가 들었다는 말씀이 일전 원장님 메일에 있어서 사진틀? 무슨 사진틀일까? 했는데, 오늘 보니 대단한 물건이었다. 투박하게 생긴 두툼한 사진틀인데, 아주 실용적이고 견고한 것이 곁에 두기 아주 좋다.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릴 길을 이렇게 열심히 찾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행복이다. 그런 행복의 길이 잘 열리고 통하도록 편안한 상태를 지켜드리는 것이 내 몫이고. 나도 20년 후에 저런 행복의 밑천이 다소나마 갖춰지도록 세상 사는 자세를 잘 가다듬어야겠다.

세 시 반이 넘어 저녁식사 때까지 계속 앉아 계셔도 될까, 간호사나 간병인에게 물어보려는 참에 마침 눕고 싶다고 하셔서 한 시간 가량은 방에서 모시고 앉았다. 노래 몇 곡 불러드리니, <푸른 하늘 은하수>는 바로 따라 부르시고 다른 노래들은 주의깊게 듣다가 일부를 가볍게 따라 부르신다. 원장님과 이사장님이 한 차례씩 들어와 잠깐씩 이야기를 나눴다. 이사장님은 평소보다도 얼굴이 더 훤하고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내가 일 때문에 오래 못 오면서도 여기서 편안히 해드리기 때문에 마음놓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치사를 드리니 무척 좋아하신다.

보통 네 시 반이면 식탁에들 앉아 식사를 기다리는데, 우리 모자간은 조용히 있도록 놓아두었다가 다섯 시가 다 되어 모시러 왔다. 지금 이 방 담당은 지난 번 휴가 나가는 길을 수원까지 바래다 드린 최 여사님이다. 서랍에 든 금강경을 가끔 꺼내 드리라고 부탁했다. 담당이 바뀌어도 그런 유의사항은 인수인계가 대충 될 것이다.

"어머니, 밖에 나가서 뽀뽀하면 다른 할머니들이 샘 내실 텐데, 여기서 해드리고 가도 될까요?" "그럼 여기서 하려무나." "어디다 할까요?" "너 하고 싶은 데 있잖아? 아무 데나 해." 오른쪽 뺨과 이마에 한 차례씩 하는데, 구경하는 원장님과 최 여사님은 재미있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원장님이 한 번 더 하라고 권하는 데 못 이기는 척 왼쪽 뺨에까지 마저 하는데, 어머니는 다소곳이 즐기며 가볍게 "고맙다." 하신다.

앉아 계실 때도, 누워 계실 때도 "고맙다." 소리가 수시로 나오셨다. 두어 번 들은 뒤에 "어머니, 어머니 뱃속에 고마운 마음이 꼴똑 차 있나 봐요. 건드리기만 하면 나오는 말씀이 '고맙다'예요?" 하니까 "그게 똥만 차 있는 것보다 낫지 않냐?" 절묘하게 대꾸하시는데, 한참 모시고 앉아 있다 보면 이런 묘기가 몇 차례씩 나온다. 다 기억해서 적지 못하는 게 아깝다. 그런데 오늘은 "이 쌍놈아!"가 한 번도 없었다. 그 말씀과 내 장기 결석 사이의 인과관계를 어렴풋이 상상하신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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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