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세례를 받고 가톨릭에 입교했다. 본명은 "레오"로 했다. 대부를 맡아준 조광 선생은 조선의 순교성인 한 분 이름을 권해줬고, 나도 끌리는 마음이 컸지만, 그분에 대한 내 이해가 부족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조선 성인 이름을 본명으로 쓰는 관행 자체에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김대건 안드레아의 이름을 쓴다고 할 때 본명을 "김대건"이나 "대건"으로 해야 합당할 것 같은데...

 

본명 받을 성인에 대한 이해를 늘릴 때까지 세례를 늦추기도 그렇고 해서, 내가 확실히 따르고 싶은 분의 이름을 모시기로 했다. "레오"라고 하지만 염두에 둔 것은 李之藻다. 내가 천주교에 끌리게 된 것이 西學 공부를 통해서인데, 그 틀을 잡은 것이 그의 <천학초함> 아니었는가. 함께 나란히 거명되는 徐光啓의 출세나 楊廷鈞의 영성은 따를 엄두가 안 나지만 이지조의 학술은 따를 수 있는 만큼 따르고 싶다.

 

내 입교 소식에 아는 이들이 약간씩은 놀라는 기색을 보인다. 나 자신 사실 놀라는 마음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 내가 종교를 가질 법하지 않은 사람으로 자타가 공인하게 되었는지, 또 그럼에도 이렇게 입교하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하려면 끝이 없다. 이 길을 찾은 것 또한 욕심을 줄이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려는 퇴각의 방향이라고 생각되어 "퇴각일기" 도입부에 입교의 경위만을 간단히 적어둔다.

 

지난 겨울 아내가 어느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를 따라와 객지에서 쓸쓸히 지내는 것이 미안해서 종교를 가질 것을 종종 권한 일이 있는데, 그이에게는 권하면서도 나 자신이 종교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그이에게 권한 것도 신앙 자체보다 교회 분위기를 염두에 둔 것으로, 원불교나 가톨릭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가 길바닥에서 어느 신흥종교 삐끼에게 걸린 것 같은데... 사람들이 좋아 어울리러 다닌다는 것을 강압적으로 막을 수는 없으니, 권하고 싶은 방향으로 내가 더 적극적인 솔선수범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에서 교리문답을 신청했다. 가톨릭을 택한 것은 가깝기 때문이었다. 천주교회가 원불교당보다 가까이 있고, 30년 전 서학을 공부하면서부터 가톨릭에 대한 지식도 많으니까.

 

그런 참에 마테오 리치로 시작했던 서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재개할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연구 작업에 도움을 얻기 위해 조광 선생을 찾게 되었는데, 내 연구활동 재개를 상상 외로 열렬하게 반겨주었다. 그리고 교리문답 신청해 놓았다는 얘기를 지나가는 길에 했더니 더더욱 열렬하게 반겨주는 것이었다.

 

작업 재개를 위해 지난 20여 년간의 연구성과를 훑어보다가 세례를 받더라도 좀 늦춰서 받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연구의 틀이 어느 정도 잡힐 때까지는 외교인 입장에 머물러 있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내도 내 솔선수범에 따라오지 않고 있으니, 따라올 마음이 들 때까지 좀 기다려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교리문답도 받아 보니 몇 주일 동안에 내가 교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세를 갖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조 선생이 이 말을 듣더니, 상상 외로 확고한 태도로 세례를 서둘러 받을 것을 권하고, 조 선생과 함께 내 작업을 도와주기 시작한 권영파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상상 외로"라는 말을 거듭 썼는데, 지난 2월 다시 만나기 시작한 이래 찾아낸 그분의 모습 자체가 여러 모로 상상 외다. 교회사연구소에서 마주쳐 알고 지낸 지 근 30년이지만, "그분 참 괜찮은 분 같네." 하는 인상만 받았을 뿐 소가 닭 보듯이 지낸 사이다. 2, 3년 전 송파 쪽 가는 길에 올림픽공원 내의 사무실에 들러 인사할 때까지 꼬박 20년을 안 보고 지낸 사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크게 믿는 분의 하나가 되어 있다. 우선 학문적으로 믿음직하고, 신앙 쪽으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쪽도 그럴 것 같다.

 

앞으로 신앙을 어떻게 키워나갈지는 막막한 일이지만, 교회에서 교인들과 어울려 교인 노릇 하는 건 꽤 잘할 것 같다. 천주교인들은 티를 안 내는 편인데 내 입교 소식을 듣고 비로소 자신이 냉담 신자임을 밝히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분들 중에 교회와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절실하게 나눌 수 있는 분들이 있어서 신앙 공부에(이것도 공부로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입교 후 마주친 신부님들이 모두 인상이 좋아서 두고두고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제일 꾸준히 마주치는 분이 대화성당의 남궁 신부님. 유머감각이 참 마음에 든다. 세례를 주자마자 "평화통일" 강의를 맡기는데, 참 난감했다. 그 주제로 강연을 많이 다니지만, 대개 주제에 대한 생각이 많은 분들 상대로 하는 강연이다. 동네 교회에서 그 주제 강의를 들으러 오는 분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주제에 관한 생각이 별로 없는 분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드릴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내게 신부님은 그저 "잘~ 될 겁니다." 말씀 뿐이다.

 

그래서 생각 없는 분들 상대의 강의를 준비하는 데 공을 꽤 들였는데, 막상 준비하며 생각하니 내 생각의 서술에 이런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립적인 독자와 청중을 상대하는 자세. 강의는 나도 만족스러웠고, 듣는 분들도 만족하는 기색이었다. 며칠 후 신부님 만났을 때 말씀드렸다. "앞으로 신부님 하라시는 일은 뭐든지 하겠습니다. 잘 될 거라고 하시더니 정말 잘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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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