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관한 글을 쓸 때 "서평"이라고 하면 책임감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책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나름대로 파악해서 자신감을 갖고 독자들에게 제시해 줘야 한다. 저자가 책 쓰는 데 들인 노력의 최소한 5%는 투입해야 "서평"이란 이름을 내걸 글을 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서평이 필요로 하는 노력 중 일부는 평소에 해둔 주제에 관한 공부로 채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서평자 본인의 공부와 겹치는 주제의 책에만 서평을 쓰게 된다.

 

그렇게까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 "독후감"이다. 책을 읽을 여러 종류 독자 중 특정 종류 독자의 입장에서 같은 종류 독자를 상대로 쓰는 글이다. 학생들에게 많이 이용된다. 공부하는 단계의 학생 독자는 책의 의미와 가치를 포괄적으로 파악했다는 자신감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배우는 입장에서의 의미있는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일반 독자들도 전문성에 자신이 없으면 마찬가지로 배우는 입장의 의견을 독후감으로 내놓을 수 있다.

 

그런데 독후감보다도 더 무책임한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중시하는 주제를 다룬 책이니 의견은 적고 싶은데, 의견을 정리하는 데 너무 많은 노력을 들이고 싶지가 않다. 노력을 들일 가치가 모자라는 책이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다른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글 올릴 때는 독자들을 위해 정리된 글을 내놓을 필자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 그런 책임감을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며 살고 싶다.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다 보면 서평이나 독후감으로 내놓을 만큼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라도 간단한 소감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 블로그에서는 그런 수준에서 소감을 내놓고 싶다. 그 형식에 이름을 붙인다면 "讀前感"이라 할까? 3백여 쪽의 이 책을 1백 쪽가량 읽은 지금 단계에서 소감을 적으려는 것이다. 다 읽고 나면 어디 다른 데 게재하는 글이 아니라도 의견을 더 잘 정리할 강박을 느낄 것 같아서, 얼른 간단한 의견을 적어놓고 넘어가겠다는 속셈이다. 물론 다 읽고 나면 스스로 댓글로 덧붙일 수도 있고, 진짜 서평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독서메모" 정도로 적어두는 것이다.

 

저자는 진실화해위원회 일을 통해 주제에 접근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원회의 성과에 아쉬운 점이 많은데, 직접 성과가 아니라도 저자와 같은 연구자들에게 연구의 계기와 여건을 만들어준 간접 성과만 해도 반가운 것이다. 위원회의 다른 관계자들로부터도 더 많은 성과가 앞으로 계속 나올 것을 바란다.

 

10월항쟁은 70년 전의 일이고, 저자가 조사활동을 벌인 2010년경에도 6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직접 경험자의 구술은 저자가 끝자락을 겨우 건진 셈이다. 그 전의 구술 채집은 극히 빈약했다. 요즘 "블랙리스트"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데, 대한민국 "블랙리스트 체제"의 심각한 문제성이 이런 연구분야에 단적으로 나타난다. 1987년 이전에는 "빨갱이"와 관련된 진상을 밝히는 연구는 지원은커녕 탄압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다. "대구폭동", 진압한 쪽에서 실상을 다 발표했는데, 무슨 "진상"을 더 따질 필요가 있단 말인가?

 

1987년 이후 연구에 대한 탄압은 사라졌다. 그러나 "보수" 정권 아래서는 지원이 없었다. 그러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자 저자가 참여한 진실화해위원회 같은 진상규명 작업을 정부에서 행하게 되었지만 "보수" 정권이 다시 들어서자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눈여겨 보아야 할 사실은, 민간의 지원은 어느 때나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1987년 이후에도 진상규명에 필요한 비용은 진상규명을 원치 않는 세력이 거의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를 향한 창문이 어느 만큼이라도 열린 것이 1998-2007 '진보'정권 아래서였다. 작은 규모지만 KBS에서 "8.15의 기억" 프로젝트로 150여 명의 증언을 모은 것 역시 2005년의 일이었다. (그 내용 일부가 같은 제목의 책으로 나온 것이 있는데, "해방일기" 작업 때 얼마나 요긴했는지! 그런 정도의 과거 확인 노력조차 60년간 이 사회에 없었다는 사실이 참담하게 느껴졌다.)

 

"진보"정권 덕분에 진실화해위원회 작업이 가능다는 사실이 저자의 의식에 너무 각인된 때문인지 "진보"와 "보수"의 구분에 너무 치중했다는 점이 내게는 불안하게 느껴진다.

 

당시 사회운동 세력의 성향을 구분할 때 '좌파'(좌익)와 '우파'(우익)라는 용어와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라는 용어를 병행하여 사용했다. 좌파(좌익)와 우파(우익)라는 용어는 지배권력과 다양한 세력의 모순관계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개념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인용한 문헌에서 샤용된 경우, 이 용어가 통상적으로 사용되어 문맥상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굳어진 경우, 그 외에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고 자연스럽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그대로 표기했다. (22-23쪽)

 

해방공간 당시에는 '진보, 보수'보다 '좌익, 우익'이란 말이 많이 쓰였다. 그 말이 세력 간의 모순관계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고 보는 저자의 관점은 옳다. 자파 세력의 결집이나 반대 세력의 비난을 위해 편의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정치노선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좌익, 우익'을 '진보, 보수'로 이름만 바꿔서는 표현이 명확해질 수 없다. 2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보'라면,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는 뜻에서 바로 '좌익'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미군정에 대한 항쟁에 참여하거나 지지 또는 동정하는 입장을 모두 '진보'로 보는데, 보수 성향의 인물들도 당시에는 미군정을 비판하는 입장에 많이 섰다. 보수의 기준으로도 미군정 정책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군정의 입장에 서서 (또는 미군정 정책을 더욱 반 민생적인 쪽으로 유도해 가며) 항쟁을 탄압한 세력은 보수가 아니라 '극우' 세력이었다.  당시 조선에서 '극우'는 '극단적 우익"이 아니라 '수구'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친일' 배경의 세력이 극우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나 자신 매우 중시하는 1946년 8월의 군정청 여론조사 결과를 저자도 인용했는데,(59쪽) 해석이 나랑 다르다. "귀하의 찬성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질문에 자본주의 14%, 공산주의 7%, 사회주의 70%의 응답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시 대다수 인민이 '사회주의'를 좌익도 우익도 아닌 '중도' 노선으로 인식한 결과라고 나는 본다. 반면 저자는 이것을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도는 높았다"고 해석한다.

 

10월항쟁처럼 미군정 노선과 조선 인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어느 편에 서느냐 하는 것은 정치적 태도를 판별하는 중요한 지표다. 그런데 저자처럼 '진보, 보수'의 기준으로만 보는 것은 의미에 한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군정 시행 1년간 인민의 가장 큰 반발을 불러온 것은 민생 측면이었다.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든 것이다. 그에 대한 반발에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미군정과 같은 입장에 서서 인민의 저항을 탄압한 세력이 있었던 것은 외세 의존 때문이었다. 경찰의 주축을 이룬 식민지 경찰 출신을 비롯해 재산과 학력을 갖춘 친일세력이 민족국가로 독립할 경우 불리할 위치에 설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해서 미국에 종속하는 체제를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친미가 민생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친미' 외에 아무런 정치이념을 갖지 못했던 극우 세력이 허울만의 "민족 진영"을 표방했기 때문에 해방공간에서 민족주의의 모습이 많이 흐려졌지만,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당시 조선 인민의 양대 염원이었다. '좌우 대립'에만 눈길이 쏠려 민족주의 전개를 살피는 노력이 부족했다.

 

해석에서는 '진보-보수'의 도식에 얽매인 점이 아쉽지만 현장의 광경을 7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사실적으로 재현한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진즉 이뤄졌어야 할 연구가 이제라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며 읽는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