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재를 위해 약간의 근현대사 연구를 살펴본 가운데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논문이 윤해동 등이 엮은 <근대를 다시 읽는다 1>에 실린 이승엽(교토대)의 '조선인 내선일체론자의 전향과 동화의 논리'였다. 이 논문에는 열렬한 조선인 내선일체론자 현영섭이 매우 인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뉴라이트 역사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영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현영섭은 주어진 시대를 능동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려 애쓰고 하나의 이론에 투철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뉴라이트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다. '대안 교과서'를 운위하는 '뉴라이트 역사가'들이 적어도 현영섭 수준의 고민을 하고 진정성을 가지기 바란다. 지나간 70년을 되돌아보는 이점을 활용해서 현영섭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현영섭의 모습을 대략이라도 옮겨놓기 위해 이승엽 논문에 실린 현영섭 논설의 일부를 재인용한다. 논설의 출처는 여기에 다시 밝히지 않는다. 논설의 일부는 현영섭의 창씨개명이름 아마노 미치오(天野道夫) 명의로 발표된 것이다. (현영섭의 편력을 개관한 김민철의 글은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엮은 <친일파 99인 2>, 66~76쪽)
  
  "나는 꿈꾼다. 반도의 청년이 대다수 임금과 나라를 위해 기쁘게 죽는 날을!"
  
  (1) "병합 전의 조선은 지옥이었다고 해도 좋다. 오랫동안 지나의 지배와, 우열하고 탐욕스러운 지배 계급에 의해 민중의 생활은 극도로 짓밟히고, 민중은 삶을 저주했던 것이다. 러시아제국은 조선에까지 그 동방 침략의 마수를 뻗쳐왔다. 일노전쟁에 의해 일본의 서구인의 동양 침략에 대한 제지가 없었더라면, 조선인은 전부 백인의 노예가 되어 멸망했을 것이다. 과거의 조선! 근대과학의 세례를 받은 우리들의 눈에 비친 조선의 역사는 전부 암흑의 역사였고, 우리가 오늘날 생존해 있는 것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과거와 현대는 완전히 면목을 달리하고 있다."
  
  (2) "나의 학생시절에 조선인 학생 친구들과 모여 함께 조선 문제를 논했을 때, 어느 학생이 '조선인이 전부 죽는다면 함께 기쁘게 죽을 것이다'라고 극히 절망적인 말을 토했던 적이 있었다. 정말로 양심이 있는 자라면 이 말을 극단적인 말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까."
  
  (3) "만약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외에 살 길을 알지 못한다면, 일본국토 내지 동양에서는 살아서는 안 된다. 자살하든가, 반항하여 형무소에서 살든가,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자살이다. 참으로 일본 국가를 사랑하지 않고서,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약간의 위선자가 되기보다도, 자살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자살을 원하지 않는다면, 일본 국가를 사랑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지나사변에 즈음한 조선인의 총후열성은 아직 충분치 않지만, 이와 같은 행동은 (일본에 반항했던 역사적 죄과를 : 인용자) 갚음이 되고, 명실공히 황국신민이 되는 길을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다. 아직 우리는 조건부 일본인이다. 선거권도 없고, 의무교육도 없고, 병역에 나갈 의무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생활 정도는 낮고, 또 애국심에 있어서 내지인보다 아직 특별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남의 집에 양자로 들어간 사람이, 바로 금고열쇠를 건네받을 리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그 남의 집 사람이 완전히 되어 버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5) "만약 끝내 조선인이 독특의 생활감정이나 언어고수한다면, 조선의 풍속습관을 견지한다면, 배타적 정치적 감정으로까지 발전할 것이라 단언하며, 우리의 자손이 불행한 날을 맞을 것을 '예언'한다. 그 불행을 나는 거의 병적으로 느끼기에, 끝내 급진적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6) "나는 꿈꾼다. 반도의 청년이 대다수 임금과 나라를 위해 기쁘게 죽는 날을! 완전히 일본화된 조선인 중에서 재상이 나오는 그 찬란한 날을! 백 년 후일까 수백 년 후일까."
  
  (7) "이력서의 원적에는 조선출신임이 밝혀져 있다. 내지에 적을 가진 타이피스트만을 찾는 상점이 많다. 호적법은 희망자에 따라 내지로 적을 옮기는 것도, 또는 조선으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것은 후일 해결될 문제이지만, 무엇보다도 창씨는 그 첫 출발이다."

  
  "근대문명만을 문명으로 규정하고 그 이전 농업사회를 몽땅 야만으로 규정한다면"
  
  (1)과 (2)에는 조선의 역사 내지 과거의 조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담겨 있다. 어떤 가치도 둘 수 없는 야만상태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를 물리친 일본은 조선인을 러시아의 노예가 될 운명으로부터만이 아니라 원래의 야만상태에서 건져내 준 해방자인 것이다.
  
  일본이 건져주기 전에 조선인이 처해 있던 상황이 워낙 참혹했기 때문에 "오늘날 생존해 있는 것이 불가사의할 정도"라고 현영섭은 말했다. 일본의 조선 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 전의 상황을 나쁘게 규정할 필요가 있었을 테니, 과장이 조금 심했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점에서는 이영훈도 현영섭보다 별로 못하지 않은 것 같다.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근대문명만을 문명으로 규정하고 그 이전 농업사회를 몽땅 야만으로 규정한다면, 일본의 조선 합병을 문명 전파의 혜택으로 고마워할 수 있다. 다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이영훈에게는 일본의 실효적 지배 밑에 살고 있던 현영섭과 달리, 왜 꼭 일본이 그 역할을 맡아야 했는지, 그리고 그 역할을 객관적 기준에서 제대로 해낸 것인지 밝힐 부담이 더 얹혀져 있을 뿐이다.
  
  (3)을 보면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민족주의,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일제 통치에 굴복하는 데 대한 대안이었다. "결국 자살이다." 잘라 말하는 것이 그 대안들을 나름대로는 목숨을 건다는 심정으로 모색한 결과였을까, 아니면 그저 난폭한 말장난이었을까. 이 글을 발표한 것은 1938년,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터뜨린 뒤다. 모든 대안에 대한 그의 부정은 대안을 모색하던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을 담은 것이기에 그토록 극단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현영섭 친일노선의 진정성을 드러난 글만 놓고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당시 수많은 친일파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을 개진한 사람의 하나이므로 적어도 기회주의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그의 관점을 이승엽이 정리해 놓은 것이 조금 더 참고가 될 것이다.
  
  "현영섭은 민족주의 진영에 대해 '저 민족주의자의 지배를 받을 정도라면 죽음을 택하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르겠'다는 극단적인 언어를 쓰며 강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또한 운동의 현상적 측면에서, 민족주의 운동은 끊임없는 파벌싸움을 통해 스스로 세력을 약화시켜 결국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지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고 했다. 민족주의 사상이란 '하등의 과학적 배경을 가지지 않은 제멋대로의 감정으로 조선에 있어서는 민중의 무지에 호소'하는 것일 뿐이니, '가정부(假政府)를 만들어 정쟁에 빠져 정치노름을 한 그들 저주받을 민족주의자들'은 결국 '옛날 조선의 지배계급이 멋대로 마음껏 했던 것과 같이, 자유롭게 설치고 싶은' 권력욕 때문에 '타도 제국주의의 미명에 의해, 조선의 민중을 유혹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근대를 다시 읽는다>, 220~221쪽)
  
  "전향자는 스스로 전향의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강박을 가지기 쉽다"
  
  (4)에서 현영섭의 고뇌는 계속된다. 그는 모든 대안을 내팽개치고 일본의 조선 통치 이념 '내선일체'를 끌어안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 이념을 뒷받침해 주지 않았다. '내선일체'는 진정성 없는 사탕발림이었다. 그는 이 사탕발림을 현실로 끌어오기 위해 조선이 일본에게 갚아야 할 역사적 죄과까지 꾸며내야 했다. 원죄와도 같은 이 죄과를 갚으려는 조선인의 노력이 '내선일체'의 구원을 가져오는 길이라고 그는 믿었던, 아니, 믿고 싶어했던 듯하다.
  
  (6)은 현영섭이 자신의 이상향을 그린 것이다. 여기서 '재상'이란 '일본국' 재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대동아공영권을 지배하는 '일본제국' 재상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힘은 당시 현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 원리에 내재된 모순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자유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 무정부주의까지 숱한 반발이 있었던 것이지만, 현영섭은 그 힘만을 찬양하며 조선인도 그 힘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제국주의의 힘을 그토록 동경했다면, 왜 그는 혼자 조용히 조선인 대열을 떠나 일본인이 될 길을 찾지 않고 조선인 전체가 함께 갈 것을 촉구하고 나섰을까? 조선인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것이 제국주의에 더 잘 공헌하고 공로를 인정받는 길이기 때문이었을까? '조선'을 극렬히 부정한 그의 태도로 보아 후자 쪽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그리고 그의 전향 경력이 그의 열성에 한 몫 했을 것이다. 친일 논객으로 나서기 얼마 전까지 그는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계열 반체제 운동에 몇 해를 바친 바 있다.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 앨 고어가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장했다. 그런데 그 직전 고어 진영에서 정치자금법에 저촉되는 스캔들이 터져나온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공화당 쪽에서 "고어가 그런 소리 할 자격이 있느냐?"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이에 고어는 "개종자의 열정(convert's fervor)으로 이해해 달라"고 유머로 대꾸했다.
  
  여러 사람 앉은 자리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워 물 때, "왜 옆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느냐?" 나서서 불평하는 사람은 원래 안 피우던 사람보다 최근 끊은 사람이기 쉽다. 전향자는 전향 대상에게 전향의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는 동기 외에도 스스로 전향의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강박을 가지기 쉽다. 안병직, 이영훈, 김문수, 이재오, 신지호 등 전향 경력 인사들이 유별나게 극단적이고 과격한 태도를 취하는 경향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현영섭의 주장과 틀을 같이 하는 것"
  
  (5)의 내용은 일반 친일파와도 구분되는 현영섭의 철두철미한 친일 노선을 보여준다. 당시 조선의 친일파 주류는 이광수, 최남선으로 대표되는 '평행제휴론'이었다.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일본제국의 일부가 되겠다는 입장으로 그 중에는 '조선 자치' 주장도 있었다. 반면 현영섭이 대표한 '동화일체론'은 소수파이면서도 강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현영섭은 언어, 풍속 등 조선의 정체성을 파기하지 않으면 "배타적 정치적 감정"으로 발전하여 조선인의 자손에게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식민주의 역사관을 받아들여 세계사가 약육강식을 통한 '대국가주의' 흐름을 타고 있으므로 일본의 조선 합병을 거역할 수 없는 필연으로 본 것이다.
  
  자본주의화를 뜻하는 '문명화'를 지금의 세계사에서 거역할 수 없는 필연으로 보아 민족주의를 벗어던지고 고속성장에 매진할 것을 제창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은 70년 전 현영섭의 주장과 놀랄 만큼 틀을 같이 하는 것이다. 물론 현영섭만큼 센세이셔널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명색이 민족국가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정도면 따라갈 만큼 따라가는 것으로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현 정부의 인수위 책임을 맡은 어느 대학 총장이란 양반이 '오렌지'를 '어륀지'로 읽을 수 있는 영어교육의 필요를 주장해 눈길을 모은 일이 있다. 조그만 일이지만 이런 조그만 일에서 그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섬세한 발음 감각에서까지 동화 대상에 최대한 접근하려는 그 정성은 같은 시기에 태어났던들 현영섭의 동지로 훌륭한 자격이 있었을 것이다.
  
  (7)에서 현영섭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차별 철폐를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지혜와 용기와 자비심을 겸비한 현대의 영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뭇 사람들과 달리 현실을 직시할 줄 알고, 그러면서도 자기 한 몸보다 '조선인'이라는 더 큰 나를 구원하고자 애쓰고, 그 노력을 통해 일본의 영광을 향한 역사의 흐름에도 공헌하는 훌륭한 인간이며 좋은 일본인이라고.
  
▲ 친일의 의미를 제대로 알면서 배척할 수 있을 때 친일파의 부활을 막을 수 있다. 이승만은 '반일'을 외치면서도 친일의 의미를 밝힐 길을 막았다. <친일인명사전>은 친일파 단죄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뉴시스
 

  "개인의 감정과 주관적 편견에서 출발하여 객관세계를 일률적으로 규정"
  
  패전 후 고국으로 귀환하는 일본인 대열 속에서 현영섭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일본에 간 후 다른 곳도 아닌 주일 미국대사관에 그가 근무한 것은 호구지책이었을 뿐일까, 아니면 그의 출신과 경력에 적합한 어떤 역할을 맡기 위해서였을까? 완전한 일본인이 되려는 꿈을 이뤘다는 만족감 속에 이 세상을 떠났을까?
  
  조선을 부정한 현영섭의 신념이 애초에 헛된 망상이었을까, 아니면 일본의 패망이라는 잔인한 현실에 억울하게 짓밟힌 아름다운 꿈이었을까? 그와 같은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좌익에서 전향했던 인정식의 비판이 이승엽의 논문에 인용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현영섭씨의 소론이 자신의 말로는 리상주의라 하지만 사실은 리상주의도 아무 것도 아니다. 확실히 사고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옛날의 '아나-키즘'의 무체계적인 잔재를 많이 엿볼 수가 있다. 개인의 감정과 주관적 편견에서 출발하여 무엇이든지 되는대로 객관세계를 일률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이 과연 하나의 사상이라 할 수 있을가. 이것은 무의미한 '로-만티시즘'의 수음이 아니면 치인의 꿈에 떠러지기가 쉽다."
  
  인정식도 내선일체 이론가로 활약한 사람이지만, 일체화의 한 주체로서 조선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조선을 미리 부정해 버리는 현영섭의 주장을 그는 사상도 못 되는 것이라고 경멸했다. 세계화의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주체로서 한국인의 입장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 뉴라이트 이론가들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는 '친일'을 무조건 매도하기보다 그 실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노력이 아쉽다. 현영섭의 동화일체론만이 아니라 인정식의 평행제휴론에도 문제는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차원이 다르다. 이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70년이 지난 지금 동화일체론과 너무나 닮은꼴의 뉴라이트 역사관에게 횡행할 틈을 주는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