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퍼-센테-지는 잊어버리었으나 昨年 한 해 동안의 통계로 보아 南朝鮮은 輸出보다도 輸入이 너무 많고 또 그 輸入 중에는 종이가 그중 큰 品目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면 빚을 저가면서까지 들여온 그 종이는 얼마나 有效하게 쓰여졌을까.
解放 後 많아진 것이 政黨이니 음식점이니 하지만 新聞도 그중에 한 목 끼일 수 있을 것이다. 인제 적당한 題號가 없어도 신문은 새로 더 나올 수 없으려니 여겨지는데도 모두들 용하게 좋은 제목들을 붙여가지고 나날이 늘어나느니 신문이다. 그러나 그렇듯 새로운 題號를 생각해내는 데 天才인 그들이 신문의 내용을 얽음에는 웨 그다지도 머리가 둔한지 박여내는 신문의 내용은 열이면 열이 전부가 똑같은 것이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으로선 도저이 한 신문사가 독특한 外報網을 펼칠 수 없으매 UP나 AP를 뒤늦게 번역한 몇몇 “通信”을 그대로 베껴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이를 베껴내어 타이틀을 붙이고 신문 면을 짜는 데도 어찌나 그리 유치하고 졸열한지 때로는 읽는 이쪽이 얼굴을 붉힐 지경이다. 그러나 이 역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이 땅에 신문의 경험을 갖인 사람이 얼마나 많기에 이렇듯 많은 신문에 골고루 有能한 경험자와 기술자가 配置될 것인가. 또 설사 경험자가 아니기로서니 신문 면 하나를 반듯하게 짜낼 만한 교양과 센스를 갖인 사람이 이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신문의 수에 正比例하여 늘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문제는 그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관절 그 많은 신문이 신문 자체의 存立에 필요한 最小限의 讀者를 갖일 수 있을 만치 南조선의 신문을 읽는 사람이 그처럼 많을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은 없는 줄을 내가 잘 안다. 없으니까 題目만 다르다 뿐이지 내용은 똑같은 신문을 한 집에서 몇 개식이고 보게 되는 것이다. 讀者칙으로써 본다면 그리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 많은 신문 값을 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덮어놓고 밀어 넣는 신문을 위해서 온 家族의 神經과 에너-지를 기우린 綜合作戰이 아니고선 자연히 그런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詩人 盧某와 같은 感傷이 아닐찌라도 나이 어린 중학생이 추운 겨울날에 외투도 장갑도 없이 收金하러 와서 “저이는 이걸로 고학합니다.” 하면 여간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선 승낙 없이 넣은 것이니 값을 못 내겠다던가 하는 말이 나지 않는 것이다. 배달꾼의 말을 들으면 그렇게 무리하게라도 해서 넣지 않으면 신문사나 판매소에서 억지로 떠매끼는 部數를 消化할 수 없고 어름어름하다간 애꾸진 배달꾼이 題號마저 똑같은 신문을 여나문 벌 보는 결과가 되어서 새벽마다 손발이 꽁꽁 얼어서 신문을 돌린 품값으로 신문 휴지뭉치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종이를 濫費하는 신문의 사태가 輸入超過해서 들여온 종이로 만들어짐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과연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한 社會의 생활이, 한 國家의 생활이 이처럼 無軌道的이고 無反省해서도 좋을 것인가. 이처럼 企劃性이 없고 이처럼 政策이 貧困하여도 總破綻으로 기우러지지 않고 백여낼 수 있을 것인가.
言論 自由는 民主主義의 基本 要請이고 또 신문은 言論 自由의 具現인 것을 모르는 배 아니고 그리고 서투른 신문의 制限과 拘束이 비저내는 바 惡影響이 지극히 甚刻한 것도 짐작 못하는 배 아니다. 그러나 言論의 自由라는 것도 반드시 放縱 無責任한 신문의 濫發에서만 올 수 있는 것일까. 內容엔 굴레를 씨워놓고 휴지만도 못한 신문의 濫發을 黙認, 助長함으로써 言論의 自由는 確保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처음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 일이 있었다. 신문의 氾濫은 一時的인 現象이고 결국은 自然淘汰로 말미암아 신문계가 바로 설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眞正한 自由主義 經濟社會의 올바른 歸結일 것이라 하여 (이것만을 우리가 希求하여야 할 것이고) 서뿔른 統制는 獨裁에로 通하는 길이니 삼가야 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正數만을 알고 負數와 分數를 모르는 산술임을 나중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 社會엔 經濟界에 있어서도 經濟外的인 制約이 너무나 크게 움직이기 때문에 素朴한 經濟理論으로선 律할 수 없는 것임과 마찬가지로 신문의 自然淘汰와 같음도 도저히 一片의 自由主義論으로써만 律할 수 없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과연 外國에 빚을 덜컥 지고 그 빚진 종이로 內容이 똑같은 신문을 濫發하여 讀者에게 購讀을 强勸하여야만 言論 自由는 確保될 수 있을 것인가. 自律的이던 他律的이던 간에 적당한 統制를 加하여 신문사의 濫立을 防止하고 有限한 能力과 資材를 效率的으로 利用함으로써 內容의 充實을 도모하는 한편 言論의 自由도 享有할 수 있는 그러한 方法은 과연 없을 것인가. 그건 반드시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그러한 不可能이 아니련만 우리의 良識으로 그러한 妙策을 세워 낼 수는 없을 것인가.
만일 세상에 천박한 自由를 아무런 節制와 反省 없이 追求하느라고 몸을 파는 女人이 있다면 우리는 그 賢明함을 찬양해야 할 것인가 그 無謀함을 가엾어 해야 할 것인가. 만일 또 세상에 來日의 破綻을 돌보지 않고 放종한 自由를 追求하는 蕩子가 있다면 우리는 그 自由를 귀하다 할 것인가 그 無知와 어리석음을 통탄하여야 할 것인가.
그러타고 나는 言論의 自由를 犧牲해도 좋으니 當局에서 가혹한 統制를 해야만 한다고 慫慂함은 아니다. 當局의 文化政策으로서나 또는 文化人들의 自律的인 協助로서나 우리나라의 貿易 面을 考慮하면서 言論의 自由를 享有할 수 있는 限界 안에서 신문의 濫發로 말미암은 종이의 浪費를 是正할 수 있는 어떠한 節制가 있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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