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아마 이는 사실일 것이다. 민족이란 건 생각하기에 따라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오랫동안 핏줄기를 같이하여 온 한 겨레라는 사실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수얼치 않은 힘을 나타내는 일이 적지 아니 있다. 이에 비기면 정치적인 어떠한 힘은 그것이 아무리 강한 것일찌라도 허잘 것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가장 좋은 본보기를 우리들의 가까운 과거에서 찾아낼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륙으로 남양으로 침략의 손길을 뻗히고 그 발판을 다지기 위하여 조선과 조선민족을 아주 통으로 삼켜버릴려고 가진 간악한 짓을 다할 제 그 모라치는 정치적 힘은 회호리바람처럼 거쎄고 소낙비처럼 줄기찬 것이었다. 그러한 서슬에 민족의 넋이 바람바지에 선 등불처럼 하마 까무러칠 뻔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였다. 많은 조선사람은 겨레의 앞길에 대하여 암담한 생각을 지니었었다.

 

조선말을 쓰지 말라 하면 스스로 혀를 굽혔고 성을 갈라 하면 이름까지도 바꾸었었다. 어머니 무릎에서 배운 모국어를 버리는 것도 수얼치 않은 고통이려니와 조선사람의 감정으로 성을 간다는 건 진실로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일본사람 중에서도 설마 하고 어려워한 사람들이 많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 큰 파란을 겪지 않고 아주 보기좋게 이루워졌었다. 이에는 내남 없이 모두 놀랐다. '민족'이란 허망한 낱말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없지 않었다.

 

조선의 목덜미를 잡은 일본의 힘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들도 영영 그들의 손아귀에서 놓여날 길이 없을 것 같고 이대로 가면 조선민족도 아이누족처럼 이 지구 위에서 영영 살아저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었다. 그럴 수밖에 달리 길이 없을 것이라고 아주 단정해 버리는 사람도 없지 않었다. 민족을 배반하는 모든 행동은 이러한 近視眼的인 판단에서 울어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시 한 번 굴러서 제이차세계대전에 일본과 그 동맹국이 패하여 우리 땅으로부터 그들이 물러나게 되자 한 때 숨죽은가 하였든 민족의 넋이 얼마나 굳센 힘으로 다시 소생하였던가. 오랜 역사와 높은 문화를 가진 민족은 일시적인 외부의 힘으로 말미암아 쉽사리 시들어버리지 않음을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적확히 보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바이 허망한 말이 아님을 우리는 몸소 겪어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 뜻 아니한 三八선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조국은 두 동강으로 잘리었다. 민족의 삶의 기틀인 동맥은 끊어지고 겨레의 마음은 갈갈이 찢기었다. 우리는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삶의 지옥에서 헤어날려고 그 동안 여러 모로 발버둥질치고 몸부림처 보았으나 이에서 버서나기는 새로이 이제는 남북으로 두 개의 정부가 나뉘어 서서 이대로 가면 민족의 分裂이 아주 굳어저 버리는 것이(固定化) 아닐까 하는 이조차 생기게 되었다. 양심적인 청년일수록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의 이러한 사태에 조금도 비관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장내를 達觀하고저 한다. 민족의 분렬은 어듸까지든 일시적 현상이고 머지않아서 반드시 우리는 다시 한 덩이로 뭉처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이른바 希望的 觀測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를 공부하는 한낱 학도로써 깊은 確信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하면 오늘날 우리 국토의 양단과 민족의 분렬은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울어난 必然的 귀결도 아니고 또 우리 겨레가 이러한 사태를 처음부터 바라고 좋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외부의 힘으로 말미암은 本意 아닌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즉 三八선의 잘림은 어찌 생각하면 우리 국토의 슬픈 宿命일는지 몰으나 결코 민족 역사의 必然的 귀결이 아니다. 또 이러한 민족의 히생을 미끼로 사리사욕을 도모하는 무리나 일당일파의 정치적 야망을 획책하는 무리가 바이 없을 리는 없지만 이것은 어듸까지나 분렬의 결과이고 이러한 나뿐 결과만으로 미루어 짐작하여 우리 민족이 본시부터 분렬을 바라고 좋아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타면 우리의 本意가 아니요 우리의 역사에서 울어나지 않는 이러한 일시적인 어긋난 현상은 반드시 바루어지는 날이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씨워진 부자연스러운 굴레는 그것이 한 때 사람들의 눈에 아무리 강한 것으로 느껴지더레도 버껴지는 날은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며 그러므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진리임을 우리는 가까운 과거에 있어서 몸소 겪어왔기 때문에 美蘇 간의 세력 항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불행은 조만간 묵삭어질 것으로 믿는 바이다.

 

미국과 소련의 겨룸은 그것이 오늘날 세계를 억눌르는 너무도 거창한 潮流이긴 하나 이 숨막힐 듯한 회호리바람은 결코 오랜 세월을 두고 계속하여 우리 겨레의 불행을 아주 굳어져 버린 사실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미소 간의 이른바 冷戰은 그것이 너무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기 때문에 일정한 한도에 이르면 반드시 터처지고야 말 것이다. 그것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통하여설지 혹은 평화로운 타협을 통하여설지 혹은 그도저도 아니고 대규모의 혁명을 통하여설지 그는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만간 두 개의 세계는 그 균형을 잃을 것이다.

 

그리되는 날 조선은 갈러저 있으라 해도 갈러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억지로 휘어진 남ㄱ은 그를 억눌러서 휘어지게 한 힘이 풀려질 때 맹렬한 기헤로 本然의 자태에 돌아갈 것이다. 良識을 가진 겨레의 思惟와 行動은 일시적인 현상에 현혹되지 말고 우리 민족은 반드시 한 덩어리로 다시 합쳐진다는 信念의 토대 위에서 움지겨야 할 것이고 한 거름 더 나아가 겨레의 모든 힘을 그 길로 솔리게 해얄 것이다.

 

老子[?]의 말에 "회호리바람은 아무리 거쎄어도 한나절을 잇대어 부는 일이 없고 소낙비는 억수로 퍼부으면 퍼부을수록 진종일 계속하는 일이 없느니라"(颱風不終朝 聚雨不終日)한 말이 문듯 머리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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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