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2월 1일부터 20일까지의 일기를 올립니다. 책에 게재된 날자에는 "(발행)"으로 표시하고 넘어갑니다.

 

 

12월 1일 (발행)

 

12월 2일 5시 기상

개이다.

간밤엔 자리에 누어 잠이 들엇는데 누가 대문을 두들기기에 나가보니 이순형 씨와 고옥남 씨가 찾아왔다. 서울 차가 다섯 시간이나 연착해서 열 시에 닿엇다. 두 분 다 귀한 손님들이다. 戰塵 속에서 서로 헤여지고 피차에 구구한 목숨을 부지하기에 골몰해서 소식도 기연미연한 중에 여러 해를 지냇다. 이제 평화 회복되고 조국의 광복이 이루어지려는 이 때 옛 모습 그대로 다시 맛나니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저 방에선 밤새 도란도란 하는 이야기가 끝치지 않는다. 오래 막혔던 흉금을 헤치면 이야기의 실머리 끝이 없으리라. 가끔 기봉이가 한 목 끼어서 좋아하는 소리도 들린다.

 

12월 3, 4, 5, 6, 7일 (발행)

 

12월 8일 5시 기상

흐리고 치웁다.

첫 시간은 신반고사

둘쩨 시간은 명반고사

셋쩨 시간은 아이들 다리고 남산으로 가서 탑과 석불을 보고 거기 관련해서 불교의 이야기. 한편으론 일본 神社를 헐어내는 마치 소리 겨울 하늘에 반향하고 이 여러 가지가 어울려서 제절로 역사의 일대 파노라마를 펼처놓은 듯. 이중연 씨의 소개로 아이들에게 결별 인사를 하엿다.

한평생 옳고 바른 길로 찾아가라고.

아침 조회시간에는 판장과 개버들나무 이야기.

집에 오니 기봉이가 싱글벙글하고 좋아하였다.

 

12월 9, 10, 11일 (발행)

 

12월 12일 4시 기상

개이다. 흐렷다.

새벽엔 오랫동안 밀렷든 일기를 썻다.

정재륜의 遣閑錄 중에서 자미난 이야기 몇 가지. [인용 내용 나중에 보완하겠음]

오늘이 업무 인계.

아침에 新 이사 신락우 씨가 부임.

낮에는 역장 文씨의 招宴에 나갓더니 그 자리에서 학교 金 선생이 조선은 너무 예절만 숭상하다가 망했으니 이제부터는 예절을 버리고 과학에만 치중해야 한다는 걸 역설하기

“좋은 의견이긴 하나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예절이 나쁜 것이 아니고 번문욕례가 나쁜 것이다. 시대가 이렇게 변할 수록 더욱 예절이 필요한 것 같다. 과학도 예절과 도의, 즉 철학성을 기조로 해야만 하겠다.”

는 이야기를 들려주엇더니 만좌가 옳다 하였다.

저녁에는 조합장 댁에서 만찬 대접.

 

12월 13일 4시 기상

눈 오고 비 오다.

짐 묶어서 정거장에 내느라고 종일 고생.

낮 차로 가족부터 먼저 떠나보내다.

4-5시경에[?] 온다든 화차가 정작 오긴 왔으나 선금을 내라거니 낼 수 없다거니 하는 통에 역장이 잘 교섭해서 2천2백원으로[?] 낙착이 되엇다.

저녁 땐 박제훈 씨 댁에서 만찬 대접.

밤 늦게까지 화차에 짐 실리는 걸 끝내고 新 이사 이삿짐 날러온 차로 제천읍엘 나가서 청전리서 쉬다.

 

12월 14일 [발행에서 생략된 부분]

윤명원 씨의 명주 한 필, 조합 직원 일동 백원, 임순경 씨 30원, 기타의 전별이 있었다. 備忘으로 이걸 적는다. 김장수 씨 50원, 경희 60원 등 유재홍 150원.

 

12월 15일 (토)

개이다.

새벽에 청량리역으로 나가서 김태동 씨란 친절한 분을 만나서 화차 [?] 1904를 용이히 용산역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화물자동차를 구하다 못해서 오늘은 짐을 날르지 못하고 유흥상 씨 댁에 여러 가지 신세를 젓다.

밤에는 이재형 댁에서 술 먹다.

 

12월 16일

비 오다.

아침에 용산역엘 가서 ... 씨의 친절한 주선으로 화차를 구내로 돌려다 놓고 윤씨의 오-트바이로 종일 짐을 날럿다. 장작은 마차로 열두 차 날르고. 하룻동안 비오는 중을 맹활동하엿다. 내중에 유흥상 씨의 感想談이 그 날 일하는 걸 보면 무슨 일이라도 능히 해낼 수 있으리라고 해서 우섯다.

상해 갓다 온 처삼촌, 조합에서 온 직원들의 협력으로 일이 잘 되어나갓다. 특히 염병준 군에게 감사한다.

박 선생 댁에 장작을 한 바리 실어다 드렷다.

권태원 씨가 영사를 갖이고 일부러 찾어오시엇다.

 

12월 17일

날세가 밤 사이 몹시 치워젓다.

이사가 거진 끝나고 이런 혹한이 닥치는 것이 생각할 수록 고마운 일이다. 전에 어머님이 흔이 말슴하시든 천지신명님에게 감사한다.

아침에 출근햇다가 일직 도라와 보니 염병준, 이광[선?]호 양군이 인부들을 데리고 장작을 날러다 실느라고 큰 고생을 하는 중이엇다. 이 치위에 그 辛勤함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팔판정 某씨 댁에 갓더니 전날 주겟다는 옷장을 선금을 받지 않엇다고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 동안 물건 값이 올른 때문이리라. 盜척이의 심사도 이렇든 않었을 것이다.

 

12월 18일

혹한

서정하 씨가 취직으로 찾어왓기에 박원식 씨에게 소개하엿다. 낮에는 일직 나와서 짐 끌르다.

저녁엔 이웃 임흥식 씨 댁에서 과장회의 한다고 나오란 말이 있었으나 몸이 앞으다 핑개하고 나가질 않엇다. 내중에 드르니 議題는 연합회 중역진을 部內에서 속히 정비할 것과 본관의 1층만이라도 사용할 수 잇도록 해달라는 것과 그리고 不X한 직원의 징계처분이엇다고 한다. 하나도 신통한 수작이 없다. 모다 제 집 빼앗기고 셋방사리 하면서 징징거리는 못난이들의 잠고대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12월 19, 20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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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