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욕에선 전임 시장, 현역 하원의원, 시의원들을 비롯해서 명사들이 줄줄이 연행되고 있다. 정태수 리스트도 이종기 리스트도 아니다. 난폭한 경찰을 싸고도는 시장과 경찰청장에 항의하는 불복종운동이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2월초 서아프리카에서 이민 온지 얼마 안된 청년 하나가 경찰에 사살당한 사건이다. 행상 일을 하는 디알로란 이름의 이 청년은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가 간식을 사러 나가는 길에 아파트 현관에서 경관 4명의 총탄세례를 받았다. 말이 서툰 것이 문제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흉기도 안 가진 시민에게 4명의 경관이 총알을 41발이나 쏟아 부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뉴욕시민은 경악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몇 년 전의 LA(로스앤젤레스) 폭동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나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몇 주일이 지나도록 쥴리아니 시장과 새피어 경찰청장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기는커녕 경찰의 사기저하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쥴리아니 시장은 문제의 지적을 오히려 정치적 공격이라고 비난함으로써 비판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기까지 했다.

 

참다못한 딘킨스 전임 시장 등 뉴욕 정치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지난 주 시민불복종운동을 시작했다. 경찰청 앞에 모여서는 정문의 출입을 가로막아 체포를 강요하는 것이다. 경찰은 법규와 복무지침에 따라 이들의 손에 수갑을 채우지 않을 수 없다.

 

주말까지 간간이 이어지던 연행자의 행렬이 이번 주 들어 부쩍 늘어났다. 월요일 아침 이 문제를 다루는 시의회 특위에 새피어 청장이 다른 일 때문에 참석 못한다고 했다가 결국 참석은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요일 오스카상 수상식에 다녀온 것이었다. 분통이 터진 시의원들이 오후부터 대거 경찰청 앞에 몰려들어 불복종운동에 참여했다.

 

60년대 민권운동 이후 흑인의 처지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문제가 많다. 역차별정책(Affirmative Action)의 혜택은 엘리트층에게만 돌아가고 하층민에게는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의 불심검문이 유색인종에만 쏠리기 때문에 음주운전(driving while drunk)’보다 흑면운전(driving while black)’ 이 단속대상 아니냐는 가시 돋친 농담까지 있다.

 

이민의 나라 미국에게 인종문제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원죄(原罪)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뉴욕의 불복종운동처럼 고통을 나눌 줄 아는 마음들이 있기에 그 사회가 그런 대로 버텨나가는 것이 아닐까싶다. 199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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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