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rence Weschler, Mr Wilson's Cabinet of Wonder

 

"예상 밖 지적 모험 세계로 동참 유도"

 

 

박물관 전문가들의 회의장에서 윌슨은 가장 진지한 발표자의 하나다. 현대세계에서 박물관의 의미, 그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그의 발표는 다른 참석자들을 긴장시킨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그의 경력을 따져보면 '전문가'로서 그의 자격이 조금 의심스럽기도 하다. 촬영기사로 일하던 그가 '주라기 기술박물관'을 세운 것은 1984년의 일이고, 로스앤젤레스의 서북쪽 부도심 컬버시티의 베니스 대로변에 40여 평의 상설전시관을 연 것은 1987년, 그가 41세 때의 일이었다.

 

이 박물관이 재미있는 곳이라는 소문을 뉴욕의 논픽션 작가 로렌스 웨슐러가 들은 것은 1990년께. 로스앤젤레스에 간 길에 들러 웨슐러는 겹겹이 싸인 의문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든다. 그후 로스앤젤레스에 갈 때마다 박물관을 찾아 윌슨을 만나며 웨슐러는 예상 못했던 지적 모험의 세계를 헤매게 됐고, <윌슨 씨의 요지경 박물관>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같은 모험에의 동참을 청한다.

 

한적한 위치에 평범한 건물. "Museum of Jurassic Technology"라는 소박한 간판에 다가서 보면 매주 세 차례, 몇 시간씩만 열리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방문객이 벨을 누르자 윌슨이 손수 문을 연다. 입장료는 없고 2달러50센트의 기부금은 안 내도 좋고, 내면 더 좋다는 안내. 윌슨은 책상으로 돌아가 읽던 책을 집어들고 방문객은 전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카메론의 어떤 개미가 뇌 속에 기생하는 식물 때문에 천성과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그 식물의 번식에 이용당한다는 얘기, 이과수폭포 옆의 휴양지에서 독일가요를 듣던 중 떠오른 영감으로 기억과 망각에 관한 획기적인 이론을 세운 어느 심리학자 얘기, 이런 희한한 이야기들이 시청각 기재를 두루 동원한 아주 모범적인 방법으로 전시되어 있다. 놀라운 전시 내용에 탄복하면서도 이것들이 과연 '주라기 기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의아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전시물들을 계속 구경해 나가면서 -250대 1의 축척으로 복원한 노아의 방주, 풍경화를 표면에 조각했다는 살구씨(볼록렌즈가 없다), 게다가 17세기의 어떤 영국 여자 뒤통수에서 잘라냈다는 뿔까지!- "아니, 설마..." 하는 생각이 두 갈래로 든다. "이게 설마 모두 사실일 수가..." "박물관이란 데서 설마 마구 지어낸 이야기를..."

 

결국 웨슐러는 윌슨에게 다가가 무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여기가 뭐 하는 덴가요?" 이 질문으로부터 두 사람 사이에 몇 년 간에 걸친 토론이 시작됐고, 그 내용을 웨슐러가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전시 내용에서 박물관의 정체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비유임을 이해하면서 웨슐러는 새로운 흥미가 솟구침을 느끼고, 그 비유의 뜻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윌슨을 더 깊이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웨슐러의 마음이 지르는 소리없는 탄성을 독자들은 거듭 듣는다. 가장 큰 탄성은 윌슨 소장품의 유래가 바로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 옥스퍼드 애시몰리언의 유래에 의탁한 것임을 알아차린 순간이었으리라! 수집품을 넘겨주기로 한 계약을 후회해 아들을 거쳐 며느리까지 취소를 위해 싸우다 결국 며느리의 의문사로 마무리된 수집가 일가의 비극. '주라기 기술박물관'의 번듯한 도록에까지 찍혀있는 이야기다.

 

이것이 300년 전의 영국 일을 짜깁기한 것이었다니, 과연 그 뜻은 무엇일까. 여기서 웨슐러는 합리주의에 억압당하기 전, 이 세상을 경탄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던 르네상스정신이 윌슨에게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렇다. 사실 여부를 합리적으로 따지기보다 주어진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경탄을 일으키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 모으던 전근대적 '요지경박물관', 이것이 자연과 신에게 겸손한 인간의 자세였다.

 

윌슨의 박물관은 포스트모던 기법을 써 전근대인의 정신을 위해 행하는 근대정신에 대한 복수다. 그 박물관은 박물관의 전통에 대한 반란이며, 동시에 박물관 정신의 완성을 위한 도전이다. (1995년 12월 10일)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