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지난 3년간 50회 가까이 선생님을 만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이 작업을 끝내면 그 동안처럼 자리 갖춰 선생님 모시는 일은 그만두겠지만 남겨주신 글을 통해 계속 배우겠습니다.

 

안재홍: “좋은 말씀”이라니, 당치도 않아요. 3년 동안 어두워지기만 해 온 내 마음을 털어놓은 것이 어떻게 “좋은 말씀”일 수 있겠습니까. 김 선생이 꾸준히 들어준 덕분에 답답한 심중을 스스로 한 차례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내게 고마운 일입니다.

 

김기협: 마지막으로 모시는 자리니까 지난 3년을 전체적으로 돌아보고 장래를 전망하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가장 간절한 염원이 늘 민족국가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 정부가 공포됨으로써 선생님의 염원이 이뤄진 면도 있고 그렇지 못한 면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안재홍: 사람의 일이 어떻게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 공부에서 제일 먼저 깨우쳐야 할 것이 역사는 하나의 흐름이라는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완성’이란 것이 있을 수 없어요. 이뤄지는 것과 이뤄지지 못하는 것 사이의 긴장관계로부터 흐름이 일어나는 거죠.

 

3년 전 일본의 패망을 맞을 때도 우리 민족사회의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에는 역시 현실의 엄혹함에 대한 인식이 많이 마비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하는 것을 말조차 못하던 오랜 상황이 풀리는 그 순간의 황홀함에 도취되어 버렸던 거죠.

 

김기협: 그 당시에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현실의 엄혹함을 그 동안 확인해 오면서 마음의 괴로움을 많이 겪으셨죠. 인식의 허점 중 어떤 것이 그중 심각한 것이었는가요?

 

안재홍: ‘해방’이란 것이 일본의 패망이라는 한 가지 조건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진정한 해방을 위한 조건이 안팎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어요.

 

외적인 문제부터 말하자면, 세계정세를 너무 몰랐어요. 카이로선언의 조선독립 약속이 어떤 뜻을 가진 건지 모른 채, 마치 불의의 시대가 가면 정의의 시대가 온다는, 무슨 유사종교 광신도 같은 믿음에 빠져 있었죠.

 

역사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런 믿음에 조금이라도 빠졌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 제국주의의 죄악이 너무나 극심한 것이었기 때문에 인류 전체가 어느 정도 반성을 할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희망을 나도 갖고 있었습니다.

 

김기협: 연합국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던 미국과 소련이 지금 서로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면, 지난 세계대전이 정의로운 연합국과 사악한 추축국 사이의 전쟁이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죠. 각자 자기네 국익을 추구하다가 추축국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는 연합했다가, 공동의 적이 사라진 뒤에는 조금의 양보도 없이 서로 싸우게 된 것일 뿐입니다.

 

세계대전의 성격을 그렇게 본다면 두 나라의 조선 점령도 조선 인민의 해방을 위한 것으로만 볼 수 없는 거죠. 결국 전쟁 때까지는 일본의 국익을 위한 일본 지배를 받다가 일본이 패망하자 미국과 소련의 국익을 위한 두 나라의 점령을 당하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두 나라의 조선 점령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남조선의 미군정은 총독부의 지배를 물려받아 일방적 통치로 일관한 반면 소련은 조선인의 자치 노력을 지원해 주며 최대한 서둘러 통치권을 넘겨주었죠. 덕분에 북조선에는 남조선에 비해 민족주의자들이 마음을 붙일 만한 정권이 세워지고 있지 않습니까? 토지개혁과 민생 안정, 친일파 척결과 자주독립 등 여러 중요한 과제에서 이북이 앞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누구보다 믿고 좋아하는 홍명희 선생, 이극로 선생 같은 분들이 넘어간 것 아닙니까?

 

선생님은 북조선이 민족국가 건설의 길을 잘 찾아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소련과 미국의 점령 방식 차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안재홍: 이남에서 잘 되지 않는 일이 이북에서라도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합니다. 그리고 저만큼이라도 되어 가는 것을 반갑게 생각하는 일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문제가 있어요.

 

이북에서 여러 일이 잘 풀리는 가장 큰 원인이 통일전선, 즉 좌우합작의 성공에 있습니다. 김두봉 씨가 상징하는 민족주의 진영과 김일성 씨가 대표하는 공산주의 진영 사이의 협력이 원만하게 이뤄져 왔어요. 그런데 겉보기로는 원만하지만, 합작의 원칙이 분명하지 못합니다. 나는 어디까지, 너는 어디까지 양보한다는 원칙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원만하게 보여도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거죠.

 

공산주의자들이 술수와 책략을 너무 좋아한다는 신간회 이래의 내 인상이 지나친 편견일지도 모르죠. 일제의 모진 탄압 아래서의 지하운동 성향을 이제는 벗어나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금년 들어 남북회담 과정을 봐도 그들의 책략지상주의는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홍명희, 이극로 선생 모두 이북 정부수립 앞에서 벌써 괴로운 입장에 빠져 있습니다.

 

소련과 미국의 점령 방식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소련이 자기 국익을 양보하는 착한 나라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저런 형편 때문에 그런 길을 택한 것일 뿐이죠. 흔히 ‘미-소 대결’이라 하지만 힘의 차이가 압도적입니다. 미국이 택하는 노선에 소련은 소극적으로 대응할 뿐이죠. 조선에서도 미국은 자기 힘으로 남조선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진 반면, 소련은 북조선 확보에 국운을 걸 생각 없이, 조선인들에게 맡겨놓고 자기편에 붙어주면 좋겠다는 정도의 소극적 입장입니다.

 

김기협: 진정한 해방을 위한 조건이 안팎으로 부족하다고 하신 뒤에 외적 문제를 먼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내적 문제를 말씀해 주시지요.

 

안재홍: 인간사회의 어떤 현상도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얽혀서 일어나는 거죠. 40년 전 조선 망국도 그렇습니다. 일본의 침략이 결정적인 외적 요인이었죠. 당시 조선인이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는 내적 요인은 그에 가려져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습니다.

 

식민통치의 피해로 쌀을 빼앗기고,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하는 식의 물질적 피해를 먼저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조선인으로 하여금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구상하지 못하게 한 정신적 피해가 더 크다고 봅니다. 어떤 사회든 자기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과거를 반성해야 미래의 구상을 빚어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그런 노력을 철저히 틀어막았습니다.

 

3년 전 해방 때 조선사회가 미래에 대한 구상을 키워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그 결과였습니다. 40년 전 망국의 원인도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고 있었고요. 나도 그제서야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를 열심히 썼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지금 분단건국이라는 서글픈 결과에 이르기까지, 나쁜 뜻을 가진 자들이 너무 많았다는 문제보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이 너무 적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기협: 분단건국은 민족 구성원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길입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민심에 역행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일단은 정부가 갈라져 세워지더라도 통일의 길을 앞으로 찾아 나갈 수 있을까요?

 

안재홍: “천도(天道)는 무심(無心)”하다는 말도 있어요. 인민이 원하는 일이라 해서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한 노력이 있지 않으면 천도는 그저 무심할 뿐입니다. 인민의 염원이 실천으로 나타날 때라야 민심이 천심일 수 있는 겁니다.

 

미국과 소련의 힘은 과거의 일본보다도 강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진다면, 두 나라가 일본보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본처럼 악착스럽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과, 두 나라의 힘이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세를 잘 잡기만 하면 그 힘에 휘둘리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분단건국을 향해 걸어온 자세는 좋지 못했습니다. 두 나라의 힘으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였어요. 오히려 두 나라의 대결을 더 격화시키는 역할을 조선인이 맡아 왔다고까지 할 수 있어요. 정부 수립 절차의 완결로 소소한 문제들이 정리된 뒤에는 자세를 바짝 가다듬으며 지금까지와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김기협: 민족사회의 득실을 앞세워 생각하는 민족주의자의 입장이 현실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이 이 사회의 자세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문제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그런데 단독정부 수립으로 민족주의자의 입장은 더욱 위축되지 않겠습니까? 이남의 경우 새 정부에서 반민족적 반동세력이 미군정 때보다도 더 큰 힘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정부 요인의 면면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시영 부통령 외에는 민족주의 지도자가 보이지 않아요. 김병로 대법원장이 민족주의자로 꼽을 만한 인물이지만 그보다 합리주의자의 면모가 더 큰 분이죠. 신익희 국회의장과 이범석 국무총리는 임정에 종사하기는 했어도 지도자보다 야심가로 평판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더구나 이승만 대통령이 이시영 부통령의 의견을 조각에 전혀 참고하지 않아 그 점잖은 분이 화가 나서 사임을 생각할 정도였다니...

 

안재홍: 고르고 골라 최악의 상황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족주의가 악용될 위험까지 있어요. 인민의 통일 염원을 권력자들이 대결정책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분단건국의 가능성이 떠오를 때부터 민족 간 내전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합쳐져 있어야 할 민족을 억지로 떼어놓았을 때, 그 합치려는 힘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전쟁 같은 형태로도 터져 나올 수 있는 거죠.

 

북쪽으로 간 분들은 그쪽 정부가 반민족적 노선으로 나가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할 것이고, 남쪽에 남은 우리는 이쪽 정부의 반동성을 견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쪽 사정도 만만치 않겠지만, 이쪽 사정이 참 난감해 보입니다.

 

민심이 정부에 비쳐지는 길이 너무 좁게 되어 버렸어요. 국회에서 무소속구락부가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추진하는 등 민심 반영에 나서고 있지만, 그 범위가 너무 좁습니다. 인민의 90퍼센트 이상이 바라는 일을 국회에서는 겨우 30퍼센트 의원들이 짊어지고 있으니... 남북협상에 나선 분들의 5-10선거 보이콧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선거의 정당성을 따지는 명분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라도 민심을 힘껏 받드는 성심도 중요한 것인데.

 

김기협: 마지막 질문을 드리기 전에 가상인터뷰의 규칙을 어기는 한 가지 고백을 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5년 후인 2013년 8월 15일까지도 민족통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차례 전쟁으로 많은 희생과 고통을 겪고도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고, 분단건국의 배경인 미-소 대결이 해소된 뒤로도 남북 간의 단절은 20년 이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관계의 돌파구로 겨우 만들어놓은 개성공단조차 폐쇄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의 분단건국이 앞으로 65년 이상 계속될 수 있으리라고 지금은 누구도 상상하기 어렵겠지요. 그러나 선생님은 역사를 공부한 분이니까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분단의 시작을 목격한 입장에서 그 긴 분단을 겪은 후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안재홍: 65년...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세월이군요. 그 세월의 의미를 잠깐 마음속으로 더듬어 보겠습니다. (잠시 침묵)

 

지금으로부터 65년 전이라면 1883년. 임오군란, 갑신정변 시절이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강산이 몇 번 변해 왔는데, 그와 같은 세월을 분단 상태로 지낸다니... (또 침묵)

 

65년 후의 세상에도 민족주의자들이 있겠죠. 통일이 안 되어 있다니 더더욱 마음이 뜨겁겠죠. 내가 65년 후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면 다른 사람보다 그들에게나 건네야겠습니다.

 

마음을 누그러뜨릴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통일’을 열망하겠죠. 그보다 ‘통합’ 정도를 생각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65년은 결코 만만한 세월이 아닙니다. 그 세월을 필요한 만큼 존중해 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이 분단 상태에 익숙해져 있을 것 아닙니까? ‘통일’을 불편해 하는 그들을 버리거나 맞설 생각을 한다면 ‘분단’ 위에 ‘분열’까지 겹쳐질 겁니다.

 

한 차례 전쟁을 겪는다고 했지요.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어요. 북쪽에서는 ‘국토 완정(完整)’을 말하기 시작했고, 이쪽 정부의 ‘남북통일’도 협상 아닌 무력에 의한 통일로 뉘앙스가 쏠리고 있습니다. 민족주의가 대결에 이용되는 거죠. “저쪽의 우리 동포들이 나쁜 정권 아래 신음하고 있으니 우리가 힘으로라도 풀어줘야 한다!”고. 단절이 계속되고 있다면 그런 식의 민족주의 이용도 틀림없이 계속되고 있을 겁니다.

 

지금의 민족주의자도 식민지시대와는 다른 민족주의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민족주의’ 얘기를 꺼낸 거죠. 제국주의시대 민족주의는 경쟁과 대결의 민족주의였고, 조선의 민족주의는 식민지 상태의 피해의식 때문에 그런 경향이 특히 심했습니다. 65년 후의 사람들은 민족 아끼는 마음을 우리보다는 조화와 협력을 중시하는 민족주의로 풀어내기 바랍니다.

 

김기협: 네, 저도 ‘21세기의 민족주의’를 열심히 생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