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韓信)은 유방(劉邦)의 천하 제패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장수였다. 그런데 유방이 천자 자리에 오른 후 반역의 죄목으로 숙청된 것은 대단히 억울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한신의 행적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齊)나라 정벌 때의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신은 유방에게 대장군으로 임명받은 후 대군을 이끌고 동북방을 원정, 조(趙)나라와 연(燕)나라를 평정했다. 그보다 동남쪽에 있던 제나라가 또 하나 중요한 대국이었는데, 유방은 제나라까지 군사력으로 정벌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 생각해서 역이기(酈食其)를 사신으로 보내 (실제로는 동맹 성격의) 투항을 권유했다.

 

역이기가 제나라 왕 설득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한신이 듣고 군대를 쉬게 하려 할 때 모사 괴통(蒯通)이 그를 부추겼다. 수만 군대를 끌고 힘든 전투로 조나라 50여 성을 겨우 얻었는데 일개 서생 역이기가 세 치 혀 운동만으로 제나라 70여 성을 얻는다니, 그 꼴을 어떻게 가만히 보고 앉았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 말에 넘어간 한신이 제나라를 향해 ‘닥치고 공격’에 나서자 제왕은 역이기를 솥에 삶아죽이고 도망쳐 항우의 원조를 청했다.

 

결과는 한신의 대성공이었다. 항우가 보낸 용저(龍且)의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제나라 확보에 성공했다. 그런 뒤에 한신은 유방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를 제왕에 봉해달라고 청했다. 제나라는 항우 세력과 직접 마주치는 곳인데 제나라 민심도 불안하기 때문에 임시 왕(假王)으로라도 세워줘야 통치가 안정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형양에서 항우군의 포위 아래 난처한 지경에 빠져 있던 유방은 한신의 요청에 발끈했다. “곤경에 처해 빨리 와 도와주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이놈은 왕 노릇 하고 있겠다니!” 욕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측근들이 유방의 발을 슬쩍 밟아 입을 막아놓고 귓속말을 했다. 지금 성질부릴 형편이 아니니까 해달라는 대로 해주라고. 상황을 깨달은 유방은 오히려 더 통 크게 나왔다. “임시 왕은 무슨 임시 왕이야! 진짜 왕 하라고 그래!”

 

그래서 한신은 제왕이 되기는 했는데, 십여 년 후 뒤집어쓴 죄목보다 이것이 진짜 ‘반역’이라면 반역이었다. 유방이 그를 제왕에 봉하면서 속으로 얼마나 이를 갈았을까.

 

한신의 제나라 ‘탈취’는 유방의 대외정책에서 군사노선이 외교노선을 물리친 사례라 할 수 있다. 한신이 지지한 유방이 결국 천하 평정에 성공했으므로 이 일의 득실에 대해 심각하게 따진 글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래도 생각할 문제가 있다.

 

제나라의 항복을 받는 대신 무력으로 정복한 것이 유방 진영에 이로운 일이었을까? 이로운 점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왕 전광(田廣)이 항복했을 경우 당장은 동맹관계가 성립되었겠지만 이후 상황에 따라 거취를 뒤집을 가능성이 남았을 텐데, 그 가능성을 없앴다는 점 같은 것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한신 역시 유방과의 관계에 동맹의 측면이 있었다. 한신이라 해서 상황에 따라 거취를 뒤집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보다 실질적인 문제는 유방의 외교노선이 약화되었다는 데 있다. 뛰어난 외교관 역이기가 개죽음을 당하니 유방의 외교관 노릇 하러 나설 인물이 없게 되었다. 다른 제후들도 유방이 외교관을 보낼 때 그 말을 믿기 어렵게 되었다. 외교노선이 군사노선보다 때에 따라 유용할 수 있는 것인데, 그 선택권을 유방은 잃어버린 것이다.

 

한신의 폭거 때문에 유방은 천하의 신의를 잃어버렸다. 관중(管仲)의 진언을 따랐던 제 환공(桓公)의 경우와 비교해 보자. 노(魯)나라와의 전쟁에 승리, 유리한 조약을 맺으러 갔을 때 노나라 장군 조말(曺沫)이 단상에 뛰어올라 비수로 환공을 위협, 제나라의 이득을 포기하는 약속을 강제로 시킨 일이 있었다. 환공은 이 일이 분해서 약속을 파기하려 했는데 관중이 약속을 그대로 지키라고 권했다. 그럼으로써 얻는 천하의 신의가 눈에 보이는 이득보다 크다는 것이었다. 이 진언에 따름으로써 얻은 신의가 환공 패업의 기반이 되었다.

 

신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다. 무력처럼 중시받지 못하기 쉽다. 그러나 신의를 가진 자에게는 누구도 맞서기를 꺼려하고, 협력할 일이 있을 때는 쉽게 응한다. 외교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당장 제나라를 확보하는 데는 한신의 군사노선이 유리한 것이었을까? 기록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역이기와의 협상 덕분에 제나라의 방비가 없었던 까닭으로 수도인 임치(臨淄) 함락까지는 수월했다. 그러나 그 후의 항전은 만만치 않았다. 항우가 파견한 용저가 전략만 잘 선택했더라도 쉽게 격파당하지 않았을 것으로 사마천은 적었다.

 

한신의 제나라 진격은 명목상 주군이던 유방에 대한 실질적 반란이었다. 유방은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한신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 유형무형의 큰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손실을 끌어안은 채 진력한 결과 천하를 제패했다. 어찌 보면 한신의 제거를 그는 천하 통일의 마지막 단계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유방은 천하의 이목을 꺼린 탓인지, 한신 제거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 황후인 여후(呂后)가 대신 나섰다. 한신은 죽음에 임해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아 결국 아녀자의 속임을 당했구나!” 탄식했다고 한다.

 

제나라 진격을 헌책했던 괴통은 그 후에도 유방으로부터 독립할 것을 한신에게 권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괴통은 한신의 ‘숨겨진 자아’(alter ego)로서, 서술을 위해 설정된 인물인지도 모른다. 한신은 애초부터 절제 없는 야심가였고, 1인자가 되는 길과 2인자가 되는 길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것으로 나는 본다. 그 줄타기를 위해 신의를 내던졌기 때문에 유방을 어렵게 만들고, 천하 백성들을 괴롭히고, 결국 자기 몸을 망쳤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력을 맡겨놓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갈수록 마음이 불안해진다. 다른 일도 잘해주면 물론 좋지만, 무엇보다 남북관계에 대해 국민에게 위임받은 역할을 잘해주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데, 앞선 정상회담의 대화 내용이 폭로되는 것을 방관하는 속셈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는 ‘신뢰프로세스’를 약속했다. 그런데 취임 후 몇 달 동안 신뢰를 조금이라도 늘려주는 조치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워낙 중요한 일인지라 쉽게 실망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 아주 큰 신뢰를 바라보는 거라서 시간이 좀 걸리나보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신뢰를 오히려 무너뜨리는 짓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신뢰를 무너뜨리는 정도가 아니다. 신뢰의 발판인 ‘언어’ 자체를 망가뜨리는 짓이다. 프로토콜 없이 어떻게 외교가 진행될 수 있는가? 외교 진행과정에서 오고간 대화를 몽땅 깨놓고 개나 소나 멋대로 씹어대게 하는 나라와 누가 진짜 외교다운 외교를 하려 하겠는가?

 

위키리크스 때문에 미국 외교가 곤경에 빠졌다고 하는데, 이건 더 심하다. 해커나 내부고발자에게 당한 것도 아니고 국가정보기관이 스스로 기밀을 공개하다니, 외교 대상으로 기본 자격이 안 된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한국과 상호 이득이 되지만 제3자에게 알려지지 않기 바라는 내용이 있을 때 한국 당국자에게 마음 놓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겠는가? 누구든 군사정보나 경제정보를 한국에 알려주려면 노출 위험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신에게 생각을 되돌려본다. 유방은 조나라와 연나라를 한신의 군사노선에 맡겼고, 제나라를 역이기의 외교노선에 맡겼다. 그런데 한신은 유방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제나라로 진격했고, 그로 인해 외교노선은 궤멸되고 말았다. 이것은 반란이었다. 유방은 이 반란을 당장 응징할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결국은 응징을 했다.

 

유방의 한신 응징에는 개인적 배신감도 곁들여졌을지 모르지만, 나는 공공적 기준에 합당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천하 통일은 전국시대 말기 평화에 대한 인민의 염원으로 빚어진 이념이었다. 실력을 갖춘 자들의 기회주의적 준동 위험을 없애는 것이 천하 통일의 목적이었다. 한신은 이 목적에 저촉되는 기회주의자였다.

 

사마천은 “회음후 열전”에 붙인 글에서 탄식했다. 한신이 도를 배워 스스로 겸양할 줄 알고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말았던들 그의 뛰어난 능력으로 한나라에 대한 공로가 주공, 소공, 태공의 반열에 들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보다도 열전 앞쪽에 붙인 일화 하나에서 한신에 대한 사마천의 시각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한신이 빈한할 때 어느 빨래하는 아낙네에게 밥을 얻어먹었다는 이야기다. 수십 일 밥을 얻어먹은 한신이 고마운 마음을 표하느라고 말했단다. “언제고 내가 이 은혜를 후하게 갚을 것이오.” 이에 아낙네가 발끈했다고 한다. “대장부가 제 밥을 벌지 못하니 멀쩡한 꼴이 가엾어서 밥을 주었을 뿐이지, 무슨 훗날의 보답을 바라겠소!” 한신은 결국 천하에 영웅으로 위세를 떨치게 되지만, 당장 제 구실 못하면서 엉뚱한 장래를 꿈꾸는 그는 선량한 아낙네의 경멸 대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마천이 이 아낙네에게 공감했다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대북관계에서 우호적 외교노선의 위임이었고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은 적대적 군사노선의 위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 사람은 위임받은 노선을 각자 나름대로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어떤 노선을 위임받았나? ‘신뢰프로세스’ 내세운 것은 군사노선보다 외교노선을 표방한 것이다. 그런데 군사노선에 치우치는 정도가 아니라 외교노선의 기반을 아예 초토화하다니! 새누리당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온 내 주변의 보수주의자들도 모두 아연실색이다.

 

유방이 한신의 반란을 즉각 응징하지 못한 것처럼 우리 국민도 이번 국정원을 둘러싼 반란행위를 바로 응징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응징의 날이 온다. 얼마나 큰 국익 침해가 있었는지 엄정하게 살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응징 대상의 범위가 더 넓어질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