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지난 연초 강추위가 심할 때였다. 오랜만에 서울 나간 길에 무심코 들렀는데 박인규 대표가 내 얼굴을 보더니 회의실로 불러들이고는 목소리까지 낮춰서 <프레시안>의 ‘위기’를 얘기해 줬다. 공교로운 때 들르는 바람에 외부 필자로는 제일 먼저 그 얘기를 듣게 된 모양이다.
창간 7년 만에 ‘흑자’ 맛을 봤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얼굴을 본 것이 4년 전이다. 흑자 기조를 3년가량 겨우 지키다가 다시 지하로 내려가고, 재탈출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대선 이후 언론 환경의 악화까지 걱정하게 되자 주주들의 동요가 심각하게 되었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마침 어느 재력가가 인수 의사를 밝히자 경영권을 그리로 넘겨주자는 여론이 주주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영은 내가 모르는 영역이다. 나는 박 대표의 설명을 들은 뒤 딱 한 가지만 물었다. “그러면 <프레시안>이 ‘독립언론’ 아닌 것이 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다는 대답에 딱 한 마디만 더 했다. “그렇게 된다면 나랑은 남이 되는 거네요.”
군말 안 붙이고 직설적으로 나오니까 빤한 얘기인데도 충격을 받는 눈치였다. 제일 충실한 필자의 한 사람이 독립언론 아닌 <프레시안>과는 남 된다는 얘기를 말 세 마디도 필요 없이 던지다니! 그 후 외부 필자들 의견도 열심히 수렴했던 모양이다. 지난 주 들렀을 때 강양구 기자가 조합 전환 방침이 정해진 사실을 알려주며 그 결정에 외부 필자들의 의견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준다.
남 될 수도 있다는 현실 앞에서 <프레시안>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창간 때부터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진짜 심각한(아내가 걱정할 만한) 관계가 된 것은 5년 전 “뉴라이트 비판” 연재부터였다. 그 연재가 많은 독자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내 글쓰기 의욕이 촉발되어 집중적 저술활동에 뛰어들게 되었고, 그 후의 내 글은 대부분을 <프레시안>을 통해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3년째 진행 중인 “해방일기”처럼 미련한 작업까지 펼치게 되었다. 필자와 매체 사이의 신뢰가 웬만해서는 그렇게 피차 미련한 짓을 저지를 수 없다. 이 신뢰관계에 나는 더 없이 만족한다. 필자로서 내 정체성은 확고한 ‘프레시안 키드’다.
이제 돌아보면 내가 ‘프레시안 키드’가 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 이유가 <프레시안>이 마련해준 ‘독립언론’의 공간에 있었다. 내 글이 지닌 가치를 내가 바라는 대로 독자들이 음미해 줄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프레시안>이 누구보다 효과적인 도움을 주었다. 운영자 몇몇 사람이 나랑 가치관을 많이 공유해 준 덕분도 있지만, ‘독립언론’이라는 데 더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 사람들, <프레시안>이 정말 독립언론이기를 그만둔다면 그들 자신도 배겨내지 못할 것 같다.
거듭 말하지만 경영은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다. 협동조합 전환이 독립언론으로 남기 위한 방침이라는 ‘뜻’을 반가워하면서도 그것이 현실에서 성공을 바라볼 ‘힘’을 가진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성공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뜻과 힘이 모여야 한다는 사실만은 알기에 열심히 참여하고자 할 뿐이다.
직원들과 기존 주주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프레시안>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재력가에게 회사를 넘기는 것이 그들에게 금전적 이익이 더 크리라는 사실 정도는 나도 안다. 그들이 금전적 가치보다 독립언론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겨 줬기에 이번 전환이 가능하게 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들이 마련해준 출발점에서 이제부터 독립언론 <프레시안>을 지키고 키워나가는 일은 우리 조합원들의 몫이다.
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30505122630§ion=06&t1=n
강 기자가 '결의문' 초안을 보여주는데, 제목이 "주식회사 프레시안이 문을 닫습니다"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한 마디 참을 수 없었다. "낚시질 습성은 참 버려지지가 않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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